수업을 하는데 늦게 온 은이의 표정이 예사롭지 않다. 계속 침울한 표정으로 말수가 적다. 아이들 속에서 섬처럼 고립되어 보이는 은이에게 조용히 말을 건넨다.
"은이야, 어디 아프니?"
커다란 눈망울을 굴리며 은이는 조심스레 말한다. "선생님,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픈데.... 수업하기 힘들어요."
힘들게 내뱉는 은이의 말에 한숨이 난다. 척추측만증 치료를 위해 새벽 일찍 일어나서 수영하고, 학교 갔다가, 하교하자 마다 나의 수업을 오고... 돌아가서는 또 학원을 가고....
바쁜 하루 일과로 아이에게 과부하가 왔나 보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물으니 은이는 집에 가겠다는 말은 안 하고 (보강 수업을 해야 하니까..) 버텨 보겠다고 한다.
"두통약 좀 줄까?"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는 은이에게 진통제 한 알을 먹인다. 플라세보 효과인지 아이는 금세 생기를 찾았고, 끝날 때쯤에는 글도 잘 쓰고 갔다.
그러면서 내게 남기는 한 마디
"선생님, 약이 효과가 있는지 머리가 안 아파요."
저녁 8시에는 중 3 학생들 수업이 있다. 학원 스케줄이 많은 아이들이라 일정을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밤 8시가 되어서 저녁도 못 먹고 앞의 학원을 마친 뒤, 숨을 헉헉 거리며 모인 아이들. 달려오느라 헝클어진 아이들의 머리만 봐도 마음이 안쓰럽다.
10시에 수업이 끝나고 돌아가서도 이 아이들은 거의 잠자리에 들지 못한다. 오늘 하루 끝내야 할 숙제를 하고서야 고단한 몸을 뉘이겠지.
수업 중 한 명이 고개를 숙이고 존다.
나는 졸고 있는 재영이를 조용히 바라보다가 "재영이 많이 피곤한가 보구나."하고 한 마디 건넨다.
"시험이 코 앞이라 머리가 좀 아프네요. 요새 스트레스를 많이 받거든요."
고작 중학교 3학년인데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기에 아이가 머리가 아플 정도인가?
"재영이, 오늘 집에 일찍 가서 쉴까?" 하니 아이는 고개를 내젓는다.
대신 나는 아이에게 진통제 한 알을 쥐어준다. 놀랍게도 진통제를 먹고 정신을 차린 재영이는 무사히 수업을 마치고 갔다.
진통제를 찾는 아이들. 국영수 등의 학원을 다니고, 시험이 임박해서는 학업 스트레스 등으로 두통을 일상으로 달고 다니며 약을 찾는 아이들....
마냥 밝고 생기 있어야 될 이제 10대 초반의 나이.
무거운 책가방을 들고 학원들을 오가고, 밤늦게까지 숙제를 하느라 피곤에 절은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내 마음도 무겁다. 쉬엄쉬엄 하면서 몸을 챙기라는 말을 건네지만 그런 말들이 아이들에게 별 효과가 없음을 안다.
공부는 고등학교 때 잘하는 것이다. 중학교는 워밍업이니 선행한다고 생각하고 편안하게 하자고 하지만 그 말조차 공허함을 안다.
가정, 학교 등에서 늘 달려야 된다고.. 뒤처지면 안 된다는 말을 들으며 내몰리는 아이들에게 그 말이 무슨 효과가 있겠는가.
나 역시 아이들이 직면하게 될 현실을 너무나
잘 알기에 마냥 쉬어 가면서 하라고 말하기 조심스럽다.
다음에 아이들이 진통제를 또 찾는다면 그때는 비타민 약을 줘야겠다. 약을 먹었다는 사실 만으로도 아이들이 스스로 효과를 느끼니까... 그리고 너무 애쓰지 말아라.
너는 충분히 잘 가고 있다고 격려를 해줘야겠다.
너희의 10대가 더 행복하길 바란다고 말해주고 싶다. 어른으로서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지 못하고, 진통제뿐이 줄 수 없어 미안하다는 말은 속으로만 삭이고ᆢ 그저 다독여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