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그냥 사랑하게 해 주세요
10대의 이성교제
아이들과 수업을 할 때 장난기 가득한 10대 중학생 애들이 서로 놀리는 말 중 가장 흔한 말은 ' 00 이는 **를 좋아한대요' 이다.
한두 명씩 그 말에 키득거리다 이내 수업 분위기가 어수선해지곤 한다. 아이들은 누가 누구를 사귀는지 혹은 좋아하는지 서로 놀리는 게 마냥 재미있는 표정이다.
수업을 하다가 간혹 실제로 사귀는 이성친구 이름이 입에 오르내리곤 한다.
이번에도 철이에게 여자 친구가 생겼다고 아이들이 보고를 한다. 안 그래도 철이가 요새 부쩍 외모에 신경 쓰는 것 같다고 느끼던 차였다.
나는 철이에게 짐짓 장난끼 가득한 표정으로
“ 여자 친구 사귀니까 좋아?” 하고 물었다.
그러자 철이는 얼굴이 발그레해져 고개를 숙인다. 대답은 안 하지만 속으로는 마냥 좋은 눈치이다.
며칠 전에는 중1 현아가 남자 친구가 생겼다고 한다. 현아는 같이 수업받는 친구들이
“ 너 남자 친구 생겼지? ” 하고 묻자 두 눈이 한껏 동그레 져서 “ 어떻게 알았어?” 하고 묻는다.
그러자 짓궂은 표정으로 다른 남학생이
“ 너 말고 다 알아. 너는 우리가 모르는 줄 알았지?”하면서 놀린다.
나는 동그란 눈을 추리하느라고 열심히 굴리는 현아 표정을 보며 웃음을 참고 물었다.
“ 현아 남자 친구 멋있어?”
그러자 남자아이들이 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키 크고 운동, 공부 다 잘해요. 현아를 왜 좋아하냐니까 현아가 자기보다 축구를 잘해서래요.”
아이들이 열띠게 설명하는데 참았던 웃음보가 터졌다. 현아는 여자아이지만 운동을 제법 잘해서 축구선수 제안까지 받았던 걸 익히 알기 때문이다. 축구를 못하게 엄마가 반대해서 실의에 빠졌었는데 그 덕에 남자 친구가 생겼다니 다행이다.
지난 주말에는 중3 그룹을 보강하기로 했다. 그런데 유독 빈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선생님 저는 오후 1시에 절대 수업 안돼요.”
하지 않는가? 평소 온순했던 빈이가 수업 시간을 바꿔 달라길래 이유를 물으니
“여자 친구와 영화보기로 했거든요.”하면서 씨익 웃는다.
“오, 그래? 그렇다면 바꿔 줘야지. 빈이 영화 보러 가게 오전 11시에 수업 하자.”
다른 아이들은 주말에 일찍 나오는 게 마뜩지 않았지만 친구의 데이트를 위해 풀 죽은 목소리로 기꺼이 동의한다. “예. 그래야지요.”
수업 날 빈이는 머리에 파마를 하고 한껏 멋을 부린 모습으로 왔다. 끝나고 영화를 보러 갈 생각에 수업도 전에 비해 열심히 했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부리나케 몸을 돌려 나가는 빈이를 보며
“참 좋은 때구나...” 하는 부러움 섞인 감탄이 내 입에서 절로 나왔다.
요새 아이들은 어른 세대에 비해서 이성교제를 일찍 한다.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이성친구를 사귀는 경우를 간혹 본다. 중학생이 되면 그보다 더 많은 아이들이 이성교제를 한다. 물론 대부분은 그리 오래가지 않고 끝나는데, 그중에는 간혹 오래가서 부모가 근심하는 경우도 있다.
10대와 함께 하는 선생님이 되니, 아이들의 이성교제나 친구 얘기를 의도치 않게 알게 되는 경우가 흔하다. 보통 이성교제를 하면 아이들의 표정도 달라지고, 때로는 외모에도 변화가 생긴다.
내 눈에는 아직 마냥 어린아이들일 뿐인데 자신이 사귀는 이성 친구에게 잘 보이려고 어설프지만 예쁘게 꾸미려는 아이들의 모습이 참 귀엽다.
때로는 교제가 끝나서 시무룩한 표정으로 수업에 오기도 한다. 그렇지만 나는 아이들의 그런 모습을 모른 척하고 넘어간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비밀스러운 슬픔을 들키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다.
어른들이 아이들의 이성교제에 대해 염려하거나, 반대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이성교제는 이제 자연스런 것이고 예전에 비해 그리 심각하게 몰두하지 않는다. 쉽게 사귀고 헤어지는 경우를 종종 본다.
아이들의 선생님으로서 나는 최대한 그들만의 비밀을 지키고 존중하려 노력한다.
교제와 이별 모두 이 아이들을 성장시키는 독서만큼 유용한 경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아이들이 10대 시절의 가슴을 휘감으며 설레게 하는 달콤한 사랑의 순간들을 통해서 자신과 타인을 더 사랑하는 법을 배우면 좋겠다.
때로는 그 소중한 사랑을 잃고 아플 때도 있지만 그 과정을 통해서 더 건강한 어른으로 성장하길 소망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바른 교제에 대해서 어른들이 알려줄 필요도 있다고 본다.
우리도 한 때는 그렇게 순수한 사랑을 열망하던, 혹은 그 사랑에 빠져 허우덕 거리던 찬연한 10대이지 않았던가?
10대들 앞에 글쓰기 교사로 서는 건 마음 놓아도 되는 어른이 되는 연습 같다. 아이들이 비밀감과 죄책감을 쌓으며 어른이 되어갈 때 정서적으로 비빌 언덕 중 하나일 수 있도록 말이다.
이슬아 '부지런한 사랑'중-
오늘도 나는 아이들의 비빌 언덕이 되어 각자 사랑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힘껏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