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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대로 동행 Feb 04. 2023

노화가 온다

스스로에게 기분 좋은 삶

 노화가 온다. 누군가 나이는 조금씩 드는 게 아니라 어느 날 급작스럽게 오는 거라 했는데 내게 그렇다. 어느 날 노화가 예기치 않던 손님처럼 나를 찾아왔다.


주름, 노안, 체력저하, 탈모는 순전히 남의 일인 줄만 알았다. 볼이 꺼지고, 살이 늘어지고, 잔주름이 깊어지는 것이 나에게는 영 일어나지 않는 일인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날 이 모든 것이 불시에 셋트로 찾아왔다.


40세, 이제 큰애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나이에 불과한데 나는 스멀스멀 내 몸 안에서 피어나는 노화의 기운을 감지했다. 전에 비해 부쩍 많이 빠지는 머리카락. 33,35,38세에  아들 셋을  낳고 키우며,  재택으로 회사일을 하느라 한창 바쁠땐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울 정도로  분주해서 나를 가꿀 시간조차 없었다.


 큰 애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조금씩 초조해졌다. 아이의 학교와 유치원 등에 가면 나는 비교적 나이 든 엄마 축에 속했다. 젊고 윤기 있고 생기 넘치는 엄마들 사이에서 늘 '언니' 소리를 들으며 마음이 위축됐다. 나이 든 엄마로 보여 행여 아들의 자존감에 상처라도 줄까 노심초사했다.


그런데 50을 지나면서는 노화의 속도가 걷잡을 수 없이 빨라졌다. 예전에는 여름철 스킨 하나만으로도 너끈했던 피부가 이제는 사막처럼 건조해져 덕지덕지 좋다는 크림들을 발라야 그나마 숨을 쉰다.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 생긴 얼굴 주름은 물론이고, 한 달이 다르게 머리 뿌리부터 쏟아져 나오는 눈부신 흰머리. 급기야 파마는 포기하더라도 염색을 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가장 결정적인 노화는 큰애가 수험생인 때에 왔다.

그 1년 동안 10년 치의 노화가 한꺼번에 온 것 같다. 기존의 탈모는 물론이고, 무릎과 고관절 통증, 밤에는 안경 없이 돌아다닐 수 없는 노안, 차츰 숙여지는 허리, 체력이 떨어져 미리 잡은 약속도 취소할 때 불시에 찾아온 노화의 쓰나미를 깊이 절감했다.


요새는 아침에 엄마의 푸석한 얼굴을 보고

 "엄마, 늙어 보이면 안 돼. 내 친구 엄마들  중에 엄마가 나이 제일 많은 거 알지?" 하면서 엄포를 놓는 막내.

아, 나는 50이 넘었지만 너는 이제 중 2 올라가는 파릇파릇 10 대지.

어느 날 tv에서 윤여정선생님이 나오는 광고를 보았다. AI로 재생한 그녀의 눈부신 젊은 시절 모습이 나오고 뒤이어 오늘의 윤여정선생님이 그윽한 흰머리의 위엄을 뽐내며  '라이프를 나답게'라고 힘주어 말씀하신다.


광고를 보면서 문득 든 생각은 젊은 시절의 그녀도 부시게 아름답지만, 흰머리에 잔잔한 미소를 짓는 그녀의 주름진 얼굴도 이전 못지않게 아름답다는 것이었다. 삶의 연륜과  경험의 터널을 지나온 사람만이 지닐 법한 넉넉한 여유와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나이에 걸맞지 않는 탱탱한 얼굴과 볼륨 있는 몸매, 젊은 패션을 자랑하는 그 숱한 연예인들의 모습을 보며 주눅들었었다.   그러다 그녀를 보고 자신감 있고 자연스러운 모습이 더 눈부신 후광으로 빛나고 있음을 깨달았다.  

연휴 때 막내아들과 아바타 2를 보고 와서 내가 받았던 충격은 영화 내용과 CG , 세계관보다 74세에 (우리 엄마와 불과 3세 차이이다) 10대 소녀 키리를 연기한 시그니 위버, 역시 70세로 악당 쿼리치 대령 역을 맡은 스티븐 랭의 탄탄하고 빛나는 연기력이었다.

심지어 감독 제임스 카메론도 70대인데 아바타3,4까지 제작 중이란다.


일본 영화음악의 거장으로 올해 70세가 되는  사카모토 류이치는 암 투병 중에도 신보를 발매했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몇 가지 예외를 제외하고, 내 음악으로 사람들에게 사회적, 정치적 영향을 주고 싶다 생각한 적이 없다. 음악(예술)을 만든다는 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신경 쓰는 게 아니다. 스스로에게 기분 좋은 소리, 음악을 만들 뿐

이라고 했다.


삶도  예술처럼 결국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신경 쓰는 게 아니리라.   예술도 삶도 고유한 단 하나 뿐이니ᆢ

더 이상 나이 듦과 노화에  연연하고 조급하지 말자. 나는 아직 위에 언급된 분들에 비하면 훨씬 젊지 않은가.  


체적 노화를 거스를 수는 없지만 정신적 노화는 그나마 통제할 수 있지 않을까.  사유와 호기심, 꿈과 열정이 사그라들지 않도록 매일 나를 도닥여줘야겠다.

경험치와 주름이 쌓이는 만큼 세상과 타인을 이해하는 마음도 넓어지겠지.



마침 송골매가 성황리에 콘서트를 마쳤다는 기사를 보았다.  70대에도 여전한 성량과 연주, 청바지 핏이라니ᆢ. 기분좋은 그들의 웃음을 보며  사카모토 류이치의 말을  떠올린다.

  스스로가 기분 좋은 삶을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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