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무도 죽이지 않았다. 적에 대해 진지하게 증오를 느낄 기회도 없었다. 내가 군복을 입기도 전에 전쟁이 끝나버렸기 때문이다. 내가 진정으로 복무한 것은 학교에서였다. 그곳에서 나는 나의 적을 죽였다’
우리는 누구나 자기만의 전쟁을 치르며 산다.
분리된 평화는 세계 2차 대전의 참호 속에서 불안정한 평화를 유지하는 미국 뉴햄프셔 명문 사립학교의 10대 소년 , 진의 전쟁을 보여준다.
그것은 진짜 전쟁처럼 각종 무기와 군사전략이 난무하는 대신 각종 시기와 질투, 슬픔과 보복 등이 난무하다.
이 책은 바로 고통스러운 성장통을 통해 자기만의 전쟁을 아프게 치른 소년들의 이야기이다.
작가 존 놀스는 필립스 엑시터 아카데미에 재학했던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10대 소년들의치열한 전쟁과 그 안의 위험한 평화에 대해서 덤덤히 서술하고 있다.
작품의 배경은 1943년 2차 대전이 한창인 때로 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전쟁의 화염 속에 휩싸이지는 않지만 전쟁에 차출되어 나가는 상급생들, 선생님들, 그리고 학교 시설의 곳곳이 감시감독을 잃고 비어있어 음산하다.
작가는 이런 배경을 통해서 이들도 역시 그 전쟁의 한 복판을 지나고 있음을 암시한다. 밖에서는 세계 강국들의 세계 2차 대전이 펼쳐지고 학교 안에서는 소년들이 각자의 자아와 친구들을 향한 전쟁을 치른다.
작가는 진과 피니어스의 묘한 우정과 질시의 관계를 통해 이 나이 또래의 아이들이 겪을 법한 성장의 아픔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작품은 지금으로부터 70년 전의 전쟁 시대를 배경으로 하나 바로 그 가감 없는 솔직함으로 인해 우리는 이 작품이 지금 이 시대에도 적용되는 보편성을 느끼고 공감할 수 있다.
진과 피니어스는 기숙사 룸메이트이자 둘도 없는 단짝이나 미국의 최고의 명문 사립학교에서 있을 법한 경쟁도 서로 감내해야 하는 경쟁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진의 입장에서 그렇고 피니어스에게 진은 그 자체로 소중한 우정의 대상이다. 진도 한 때는 피니어스의 우정을 경쟁이라는 개념을 배제한 채 순수하게 받아들일 뻔했다. 그러나 운동과 리더십, 상대를 끄는 매력 등 다방면에서 자신보다 훨씬 우월한 피니어스 앞에서 어느새 순수한 우정은 경쟁과 질시의 대상으로 퇴색된다.
공부 이외 운동 등의 분야에서 진에 비해 압도적으로 우월한 피니어스는 진을 데리고 다니면서 우정이라는 미명 하에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늘 함께할 것을 권한다.
그리고 진은 차마 그것을 거절하지 못하면서 내심 불만이 쌓인다. 진에게 피니는 ‘너는 너무 완벽해서 실제 같지 않은' 상대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시험 전날 피니의 간청으로 진은 내키지 않는 바닷가 여행을 떠난다. 순전히 피니가 바닷가에서 수영을 하고 싶다는 이유로 간 것인데 교칙을 어기면서 간 뒤 꼬박 하룻밤을 같이 보낸다.
그리고 피니는 진에게 속삭인다.
‘여기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길 바라. 내가 널 억지로 끌고 왔다는 걸 알아. 하지만 말이야, 바닷가에 아무하고 올 수는 없는 거잖아. 너도 혼자서 올 생각을 못했을 것이고. 인생에서 지금 같은 십 대 시절에 함께 하기 가장 좋은 상대는 역시 단짝 친구니까..... 내겐 네가 그런 친구야 “
그러나 피니는 이성보다는 그의 마음속 더 깊이 숨겨진 지나치게 진실된 감정으로 인해 차마 그의 말에 대답하지 못한다.
결국 그 일 이후나무에 올라가 강으로 떨어지기로 하고 모인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진은 피니가 앉아있는 나뭇가지를 흔들어서 그를 떨어지게 하고 피니는 심각한 다리 부상을 입는다.
진은 아픈 피니를 찾아가서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지만 피니는 그런 진의 모습을 인정하지 않고 끝까지 진의 우정을 신뢰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어쩌면 이들의 모습은 누구나 지나온 10대 시절 우리의 자화상이 아닐까? 경쟁과 질시 속에서 우정이란 미명 하에 서로 어울리지만 언젠가는 우월한 상대에 대해 누적된 불만이 터져 우정의 관계를 끊거나 상대에게 치명타를 입히기도 한다.
작가는 소년들의 관계와 삶을 섬세하게 묘사함으로써 이들의 불완전하고 미숙한 우정이 어떻게 이들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지 보여준다.
결국 피니는 목발을 짚고 학교로 돌아오고 진은 그와 다시 어울린다.
' "이것 봐 친구. 내가 운동을 할 수 없으니 네가 나를 위해 해 줘야지." 순간 나는 자신의 일부를 그에게 넘겨주는 기분이 들었고, 샘솟는 해방감 속에서 애초에 그것이 내 목적이었음을 깨달았다. 피니어스의 일부가 되는 것이.‘
이들의 불완전한 우정은 가까스로 회복되기 시작하고 진은 이제 전과 다른 진실된 마음으로 피니어스를 대하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그들의 전쟁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밖으로는 세계 2차 대전이 한창이고, 이들의 학교에서는 10대 소년들 간의 경쟁과 질시, 우정, 성장통으로 인한 전쟁이 한창이다.
어느 날, 피니 사고의 진실을 아는 친구들은 피니와 진을 강당으로 불러내고 거기서 일어난 말다툼으로 인해 먼저 일어나 나가던 피니는 결국 계단에서 구르는 큰 사고를 겪는다. 그리고 수술 중 피니는 결국 죽음을 맞는다.
진은 장례식 내내 울지 않는다. 그리고 고백한다.
’ 그것이 나 자신의 장례식이라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의 장례식에서는 누구도 울지 않는 법이다 ‘
진은 자신의 전쟁에서 나의 적을 죽였다고 했지만 정작 그는 자기 자신을 죽인 셈이다. 왜냐하면 이 둘은 결국 서로의 분신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피니의 용서를 통해서도 더 이상 회복될 수 없는 마지막이기도 했다.
우리는 누구나 살면서 자기만의 전쟁을 치른다. 작가는 이 소년들의 전쟁과 결국 맞이하는 평화를 세계 2차 대전과 대비시키면서 이들의 삶이 나름 치열한 관문을 통과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진은 적을 죽였다고 했지만 , 결국 친구의 죽음을 대면하고서야 자신이 친구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깨닫는다. 그러고 보면 자신을 죽음으로까지 내몬 친구를 끝까지 우정의 이름으로 용서한 피니만이 이 전쟁의 진정한 승자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 나는 피니어스를 보고 싶었다. 피니어스만을. 그와 함께 있으면 싸움이라곤 운동선수들 간의 경쟁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
이제 진은 그토록 사랑했던 피니를 잃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우정을 자신의 질투로 인해 잃은 그의 모습을 통해 나의 10대 시절 아픔도 떠올려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