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의 귀여운 막둥이, 올해 중학교에 들어간 주성이의 꿈은 어려서부터 일관되게 우주 비행사였다.
말을 할 수 있게 되자 주성이는 어디서 봤는지
"내 꿈은 우주 비행사예요."라고 되뇌면서 돌아다녔다.
그런 주성이의 모습이 기특해서 한 때 나는 장흥의 우주체험관을 데려갈까 고민도 했었다.
그러나 주성이의 꿈을 위해 온 가족 다섯 명이 그 먼 장흥까지 가기에는 일정이 여의치 않아 차일피일 미뤄 왔다.
그런 주성이의 꿈이 심각한 위기에 직면한 건 주성이가 8세 때 생애 처음 비행기를 타고 싱가포르로 가족여행을 갈 때였다.
가족여행 가는 길에 흔들리는 비행기 안에서 멀미를 하던 주성이가 “ 엄마, 나는 비행기를 타도 이렇게 멀미가 심하니 아무래도 우주선은 못 타겠어요.”라고 풀이 죽어 말했다.
그때 이후 자신의 꿈을 심각하게 고민하던 주성이는 결국 최종적으로 우주 비행사의 꿈을 접었다. 차를 오래 타도 멀미를 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아무래도 우주선을 타는 건 힘들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꿈을 정리하고 다른 꿈을 찾아 배회하던 주성이가 어느 날 눈을 반짝이면서 내게 다가와 말했다.
“엄마, 새로운 꿈이 생겼어요. 저 작가가 되고 싶어요.”
밤마다 소설을 쓴답시고 책상에 늦게까지 앉아서 공책에 연필로 끄적이던 주성이의 모습을 봐온 나로서는 푸훗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열심히 글을 쓰던 게 다 작가의 꿈을 위해서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주성이는 나름 추리소설이라고 여러 편의 재미있는 얘기들을 삐뚤빼뚤한 글씨로 노트 가득히 썼다.
게다가 매일 이야기를 구상한다면서 책을 뒤지거나 코난 같은 추리 만화를 주의 깊게 보곤 했다. 학교에서는 글쓰기 동아리에 들어가서 혼자 열심히 글을 쓴다고 자랑했다.
마침 명절을 맞아 친지들과 모인 자리에서 나는 자랑스럽게 주성이의 꿈을 얘기했다.
“우리 주성이는 장래에 작가가 되는 게 꿈이에요. “ 친지들은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주성이를 격려해줬다. 그런데 그 격려의 말들이 나에게는 의아하게 들렸다.
”주성아, 웹툰 작가 좋지, 요새 돈도 많이 번다더라. “ 웹소설 작가 말하는 거니? 그래 그거 앞으로 유망한 직업이래. “ 나는 갑자기 혼란이 왔다. 우리는 그저 작가라고 얘기했을 뿐인데 사람들은 벌써 웹툰, 웹소설 작가까지 상상했기 때문이다.
왜 우리 주성이가 그저 글을 쓰는 순수 작가를 희망한다는 생각은 안 할까?
머릿속이 복잡하게 돌아갔다. 친지들의 무성한 말들 속에서 주성이는 태연한 표정으로
”아니요. 나는 그냥 작가가 될 거예요.”라고 상황을 정리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주성이를 한껏 격려했다.
“ 주성아, 작가는 멋진 직업이야. 좋은 글은 다른 사람들의 마음뿐 아니라 이 세계를 움직이는 힘이 있어. 주성이는 좋은 작가가 될 거야.”
사람들이 무어라 생각하건, 요즘 시대에 어떤 직업이 인기 있건, 나는 주성이가 소위 시류에 상관없이 자신이 생각하는 꿈을 우직하게 밀어붙이는 행복을 맛보는 사람으로 자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렸을 적에 학교 교실에서 선생님이 장래희망을 물어보시면 아이들은 경쟁적으로 과학자, 대통령, 화가, 피아니스트 등의 자신의 장래희망을 줄줄이 대기에 바빴다. 그때는 원하면 무어라도 될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이 충만했다.
그런데 요새 아이들은 더 이상 꿈을 꾸지 않는다. 장래가 안정된, 사람들이 선망하는 직업이 어느새 아이들의 꿈을 대체해 간다. 나는 아이들만큼은 아무리 불가능해 보이는 꿈이라도 꿀 수 있는 자유가 주어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우리가 과학자, 대통령 등의 거창한 꿈을 꾸면서 뿌듯해했듯이, 우리 아이들도 자유롭게 자신만의 꿈을 꾸면서 행복하고 설레어 보는 경험이 필요하지 않을까?
꼭 어떤 직업이 아니어도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 내가 좋아하는 일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사는 사람, 세상에 도움이 되는 기술을 만드는 사람... 등의 꿈들은 어떨까? 명사로 지칭되는 직업이 아니더라도 ~한 사람이라는 목표를 추구하다 보면 아이들의 삶도 어느새 그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을까?
나의 꿈은 초등학교 때 피아니스트, 시인이었던 이후 청소년 시절에는 일관되게 작가였다가 막상 대학을 졸업한 이후 직장에 다니면서는 성공한 CEO로 변천했었다. 그러나 지금 나는 세 아들을 키우면서 아이들과 독서논술 수업을 하는 평범한 아줌마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꿈을 꾼다. 10대 시절 못 이뤘던 작가로서의 꿈, 낡은 사진첩에서 꺼낸 양 사뭇 낯설고, 어색한 단어이나 나는 이제 다시 그 단어를 내 삶에 끼워 맞춰보려 한다.
마침 작가가 꿈인 주성이는 엄마가 열심히 글을 쓰면서 작가 신청을 하겠다고 하자, 기대에 부푼 표정으로 말한다. "우와, 멋져요. 엄마의 첫 구독자는 꼭 내가 될 거예요. “ 해맑은 표정으로 주성이가 보내준 응원을 생각해서라도 나는 바쁜 일상에 치여 잊고 살던 꿈의 날개를 다시 펼쳐본다. 이제 다시 날개를 피고 오랜 시간 묻어두었던 꿈을 향해 비상하고 싶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에게도 전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