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에서 깨어나 깨달았어요. 이 고통은 내가 살면서 겪는 해프닝일 뿐이고,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헤쳐나가느냐에 따라 내 인생도, 가족들 인생도 달라질 거라는 걸."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의 저자로 유명한 정신분석학자 김혜남은 42세 때 발명한 파킨슨병으로 투병 중이다. 그녀는 출판계에 '힐링' 열풍을 불러일으키며 60만 부 팔린 '서른 살이...'를 낸 후로 14년째 후속작도 베스트셀러에 오른 작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여전히 병의 한가운데에 있다.
그녀는 고등학교 때 겪은 언니의 죽음, 직장 내 괴롭힘 경험, 고된 시집살이, 파킨슨병 등을 겪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버티지 않고 어느 순간 포기해 버렸다면 삶이 쉬웠을지는 모르겠지만 참 많이 후회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녀에게 있어 '버틴다'는 것은 기다림이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참아내는 것이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오늘 부단한 노력을 하는 것이다.
버티기 위한 일환으로 책을 썼고, 그 특별한 이야기는 사람들의 고단한 삶을 향한 위로가 되어 꾸준히 읽혔다. 인터뷰 기사 사진 속의 그녀는 지극히 평안하고 덤덤한 표정으로 정면을 주시하지만, 한창 성취를 향해 달릴 40대 이른 나이에 시작된 투병을 23년째 이어온 그녀의 고통은 우리가 가늠조차 할 수 없다.
그녀는 자신의 글의 힘은 '병'에서 나온다고 단언한다. 누군가에게는 삶의 고통만 안겨주는 존재인 병이 그녀에게는 글을 쓰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서 위로의 언어로 재탄생해 많은 이들이 삶의 희망을 얻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힐링이라는 단어가 붙은 에세이들을 반기지 않았다. 솜사탕처럼 달콤한 언어의 유희로 사람들이 현실을 망각하고 위로받는다는 게 과연 진짜 위로인가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식으로 아픔을 그만치 겪어보지 않았을 법한 사람이 쓰는 글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게 속으로 불만이었다. 그래서 힐링이 붙은 책들을 거의 보지 않고 살았다. 인생이 그런 언어유희로 위로받을 정도로 녹록지 않다는 것을 체험해 온 나만의 냉소주의가 발동했던 건지도 모른다.
대신, 신랄하게 비판하고, 힐난하고, 잔소리하는 책들을 즐겨 읽었다. '똑바로 살아라'는 엄중한 회초리를 맞으면 그나마 정신이 돌아온 듯한 쾌감을 느꼈다. 그러나 그녀의 인터뷰를 보면서, 나의 고정관념이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무턱대고 위로하기보다 따끔한 조언도 서슴지 않는다. 그녀가 겪은 말들은 자신의 체험에서 직접 우러나온 것들이다. 그래서 그녀는 환자들 마음이 약해져 있기 때문에 일부러 강한 말을 피하고 이야기하듯 말한다고 한다. 그녀가 위로하는 언어는 직접 처절한 삶의 시련을 관통한 사람만이 갖는 배려로 빚어진 언어다. ' 라며 인터뷰는 끝난다.
세 아들과 부대끼고,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의 고비들을 숱하게 넘기면서 그녀의 말대로 삶은 '버틴다'의 다른 말이라는 생각을 늘 해왔다.
가장 믿었던 사람의 배반, 사회에서 당했던 모멸과 좌절의 순간, 자식이 내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지는 순간, 예기치 않았던 고통의 순간들마다 버틴다는 생각으로 지내왔다. 그 순간 무언가를 하려 하면 할수록 더 힘들고 숨이 막혀 종국에는 꼼짝할 힘조차 낼 수 없었다. 그래서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 버티는 일이었기에 그녀가 포기하지 않고 버텨 냈다는 말이
더 엄중하게 들렸다.
그녀가 자신의 체험을 통해 녹여낸 그 빛나는 언어들로 빚어낸 책이 100만 부 가까이 팔렸다는 게 이제는 반갑다. 누군가는 병마와 고통을 그저 직면하면서 버티고, 누군가는 그것을 자기만의 언어로 승화시킨다. 그래도 모두 힘겹게 버티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녀는 '병이 스승이다'라고 말했다. 병을 앓으면서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폭이 넓어졌다는 뜻이다.
비록 고통스러운 투병생활이지만,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나름 값진 삶을 살고 있노라 그녀에게 따뜻한 인사를 전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