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 친구와 통화를 하는데 친구가 급작스런 이사 얘기를 꺼낸다.
이유를 물으니 " 우리 엄마가 지금 80이 넘어서도 식당을 운영하시잖아. 곧 90대가 되실 텐데, 앞으로 어찌 될지 몰라 우리 가족이 엄마 가까이 가서 사는 게 좋을 것 같아."
친구의 얘기를 들으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우리 엄마도 70대 후반이시지만, 몸이 불편한 아빠를 요양보호사님과 함께 돌보시면서 여전히 사무실로 출근하며 일하시기 때문이다.
일하는 80대가 온다.
'정년 없는 시대, 일하는 80대가 온다' 기사에 따르면 81세에도 역대 최고령 대통령으로 직무를 수행하는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 89세의 나이에도 세계를 누비며 활동하는 동물학자 제인구달, 81세의 나이에 인디애나존스 5편으로 돌아온 해리슨 포드 등으로 알 수 있듯이 미국에서는 42년 새 80대 일하는 인구가 6배 늘었다고 한다.
69만 명의 노익장들 중 주로 두뇌를 쓰는 전문직 종사자가 약 15만 명이라니 가히 80대 일꾼의 전성기라 할만하다. 역시 평균 수명이 84.3세에 이르는 일본도 75세 이상 취업률이 2012년 8.4%에서 지난해에는 11%로 올랐다고 한다.
그럼, 우리나라는 어떤가? 우리나라 역시 80대 5명 중 1명이 일을 하는 중이다. 노인용 일자리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80대 근로자들은 앞으로도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80대 근로자가 증가하는 주요 원인은 인간의 수명이 늘어난 것이 가장 주효하고, 다음으로는 고령에도 정신건강 등을 위해 일을 놓지 않는 사람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반면, 이렇게 '일하는 은퇴'를 선택한 사람들도 있지만,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일을 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
80대가 되어서도 일한다는 건 그만큼 건강하다는 뜻이기 때문에 나는 일종의 축복이라고 본다.
물론 경제적으로 부득이하게 일하는 상황은 안타깝지만, 그럼에도 일할 수 있다는 건 80대에도 건강이 전제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80대 초반에 자리에 누워 계시는 우리 아빠가 계시기에, 여전한 체력으로 일하시는 80대를 보면 부러움을 느낀다.
그러나 나는 70대 후반에도 사무실에 나가 일하시는 엄마께 늘 이제는 쉬실 때가 되었다고 얘기하곤 했다. 그런 때마다 엄마는 나에게
"나는 집에만 있으면 더 갑갑해서 죽을 것 같다."라고 말씀하셨다.
일생 가족을 부양하느라 생업 전선에서 일해 오신 엄마이기에 몸이 불편한 아빠를 돌보느라 집에만 계시다면 아마 더 우울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부근에 사는 시어머님도 83세이신데, 집에만 계실 때는 얼굴이 수척하고 기운이 영 없어 보이셨는데, 노인 복지관을 다니며 외부 활동을 하시더니 이전보다 더 생기 있고, 외모가 화사해지셨다. 그래서 나는 노년기에도 집에만 머무르는 것보다 외부 활동을 하는 게 더 긍정적이고, 건강한 삶이라고 본다.
만일 내가 80대까지 일할 수 있다면?
개인적으로 내가 하는 일은 은퇴가 없는 일이기에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한 계속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만, 나중에 할머니 모습의 나를 부담스러워하면 일을 그만두지 않을까? 그래서 요즘은 그 이후에는 어떤 일을 할지 혼자 탐색을 한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 어쩌면 머지않아 우리는 80대가 쓴 직업 에세이 책이나, 입, 퇴사의 얘기를 읽게 될 날이 오지 않을까?
영화 '인턴'에서 로버트 드니로는 70대의 은퇴자가 젊은 경영인의 회사에 들어가 인턴 생활을 시작하는 것을 보여준다. 그는 자신의 자녀, 손주뻘인 사람들을 늘 존중하고 따뜻하게 배려하는 모습으로 매혹적인 노년의 모습을 보여준다. 나도 그처럼 타인을 존중하고, 예의를 지키며 따뜻하게 동행해 주는 할머니로 늙어가고 싶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 로버트 드 니로가 했던 말 중에 '경험은 늙지 않으니까(Experience never getys old)'라는 말이 특히 내 가슴에 긴 여운을 남겼다.
세월의 풍파를 지나온 흔적은 나의 몸과 마음에 선명히 남겠지만, 그의 말대로 경험은 늙지 않으니 누군가에게 힘이 닿는 한 손 내밀어 주는 웃음 가득 머금은 어른이 되고 싶다.
온 마음 다해 생을 살아낸 훈훈한 온기 한점 남기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