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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대로 동행 Jul 04. 2022

동심으로 돌아간 것 같아요

아이들이 어릴 때는 물놀이를 좋아해서 놀 거리가 없으면 욕조에 물을 가득 담아 물속에서 놀게 하면 그만이었다. 올망졸망 조그만 삼 형제는 고무로 된 물놀이 장난감부터 시작해서 각자 좋아하는 공룡, 인형, 물총 등을 구비해서 욕실에서 신나게 놀다가 씻고  잠이 들곤 했다.    

 

교회  친한 권사님이 선물로 샤워볼 세트를 주셨다. 알록달록 빛깔도 곱고 향도 은은하다.

마침 주말에 집에서 빈둥거리는 막내 주성이에게 샤워볼을 넣어 줄 테니 욕조에서 씻겠냐 물었다. 올해 중1이 된, 아담한 키에 동글한 얼굴을 지닌 막내 주성이는 갑자기 게임을 하던 얼굴을 들어 눈을 빛내더니 좋다고 방방 뜬다.  

   

참으로 오랜만에 아이를 위해 욕조에 물을 받는다. 욕조 가득 물을 받아 아이가 고른 샤워볼을 띄워준다. 주성이는 욕조 물에 몸을 담그며 지그시 눈을 감고 탄성을 지른다.

“ 엄마, 참 좋아요. 동심으로 돌아간 것 같아요.”  

   

아이의 뜻하지 않은 말에 나는 그만 푸훗 웃음보가 터졌다. 아직 얼굴에 솜털이 보송보송, 아침에 뻗친 머리도 아랑곳하지 않고 등굣길에 오르는 꼬맹이 같은 주성이가 동심으로 돌아간 것 같다니....

내가 보기엔 아직도 명탐정 코난 만화영화를 즐겨보고, 흔한 남매 , 꾹이의 유튜브를 사랑하는 동심이 충만한 아이인데 자신이 꽤 크다고 생각한 듯하다.     


그러고 보니, 미처 자세히 보지 못했는데 주성이 코 밑이 좀  거뭇거뭇해진 것 같기도 하다.

요새는 전보다  말대꾸도 많아졌다.

왜 이렇게 엄마한테 말대꾸를 하냐고 물으면

 “ 응, 나도 사춘기가 오나 봐.”라고 한다.   

  

주성이의 표정이 사뭇 심각해 보여 웃음이 났는데, 벌써 동심을 그리워하는 소년이 되어간다.


 아이들은 참 금방 자란다.

욕조에 가득 물 담고 놀게 하면 까르르 웃음소리가 온 집안을 진동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커서 공부하느라 얼굴 보기 힘들고 , 자기 방에 한 번 들어가면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아이들이 동심으로 가득 찼을 때 , 혼자 삼 형제를 보느라 힘들어서 울먹이던 기억이 새롭다.

그때는 아이들을 돌보느라 항상 숨차고 바빴다. 집안은 늘 장난감으로 어질러졌고, 등 돌리면 자기들끼리 투덕이다 울고, 엄마 몰래 장난치다 다치거나 가구들을 망가뜨리는 날도 부지기수였다.


지금 생각하면 아이들이 참 예쁘고 눈부셨는데 왜 그때는  몰랐을까?


 아침마다 잠이 덜 깬 얼굴로 머리는 산발이 되어 엄마 품에 얼굴을 비비던 귀염둥이들, 저녁마다 나란히 앉아 엄마가 읽어주는 책을 함께 보며 재잘거리던 아이들이 이제 훌쩍 커서 알아서 자기 할 일들을 한다.      


이렇게 시간이 빨리 지날 줄 알았더라면 그때 더 많이  볼을 비비고, 가슴이 으스러지도록 안아주고, 여행을 더 자주 하고 , 더 많은 책들을 함께 읽으며 웃어줄 걸....     



초원의 빛
꽃의 영광이여
이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 하여도
- 초원의 빛 중-

지금 이 시간도 언젠가는 그리워하는 시간이 되겠지?

 막내 빼고는 엄마보다 키도 덩치도 훌쩍 커버린 아들들.


 오늘 밤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환,호, 성

삼 형제를  한 명씩  꼭 안아주면서 축복해 주고 싶다.


언젠가 또 그리워할 이 시간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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