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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대로 동행 Sep 02. 2022

우리도 언제든 부서질 수 있다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를 읽고

넓게 퍼져가는
소용돌이 속을 돌고 돌아
매는 주인의 말을 들을 수 없고
모든 것은 산산이 부서지고
– 예이츠 ‘ 재림’ 중


아일랜드의 대표시인, 예이츠의 시 '재림(The second coming)'에서 제목을 인용한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는 아프리카 탈식민주의 문학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책으로, 나이지리아의 작가 치누아 아체베가 28세였던 1958년도에 발표한 작품이다.


1930년 나이지리아 동부 이보족 마을인 오기디에서 태어나 영국 성공회의 선교사들에 의해 개종한 기독교 집안에서 성장한 치누아 아체베는 19세기 영국 제국주의 체제의 침입과 이로 인해 전통사회가 붕괴되는 과정을 영어로  그리고 있다.

작품은 침략자 영국에 의해 부서지는 아프리카 전통부족과 한 개인의 모습을 통해 거대한 역사적 풍랑 속에  국가와 개인이 받는 영향을 적나라하게 그려내고 해석한다.    

 

작품의 주인공 오콩코는 나이지리아 이보족 출신으로 무능하고 유약한 아버지 밑에서 가난과 빚만 대물림받는다.   그는 아버지를 극복하기 위해 힘을 신봉하는 강인한 사람으로 성장해 결국 많은 부를 일구고 세 명의 아내와 부족의 유력인으로 성장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부족 여인을 살해한 대가로 타부족에서  인질로 데려와 아들처럼 키운 아이 이케네푸나를 약하다는 비아냥을 들을까  두려워 부족의 전통에 따라 자기 손으로 직접 살해한다.       그리고 그의 맏아들 은워예는 자신과 함께 자라온 소년을 서슴없이 살해하는 아버지에게 강력한 마음의 원한을 품는다.


오콩코는 부족장의 장례식에서 총알을 잘못 쏴서 살인을 하고 7년간 가족들을 이끌고 외삼촌의 마을로 가서 쓸쓸하고 비참한 유배생활을 한다.

고통스러운 유배생활이 끝나고 다시 부족의 유력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돌아온 그는 그가 속한 부족이 이제 영국의 침입으로 영국 교회와 정부에 의해 지배받고, 부족원들 중 소외된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로 개종한 모습을 발견한다.


심지어 오콩코의 큰아들 은워예마저도 아버지에게 등을 돌리고 개독교로 개종한다.  

이제 그의 부족은 더 이상 그가 알던 옛날의 부족이 아니다. 자신들의 법과 종교로 무장한 영국인들은 부족원들을 자신들의 법에 따라 다스리고, 오콩코는 이에 대한 저항을 꿈꾸지만 이미 영국인을 따르는 사람들이 많아져 부족은 분열되고 그의 꿈은 좌절된다.


 결국 그는 제국주의 침입자에 대한 저항으로 교회를 불태우지만 이로 인해 가혹한 형벌을 받고, 풀려난 뒤  영국인 전령살해하고 스스로 목매 자살한다.     

소설에서 제국주의 침입으로 인해 아프리카의 부족사회와 그  개인의 삶은 철저히 부서진다.


작가는 이 두 가지 서사를 씨줄, 날줄처럼 엮어서 최대한 객관적인 관점에서 서구 열강에 의해 무너지는 아프리카 부족사회와 개인의 서사를 담담하게 그려낸다.


그의 작품 속에는 단순한 선과 악의 대립이 없다. 작가는 자신의 사회와 문화가 갖는  약점, 개인적으로 오콩코가 지닌 한계도 원인이 됨을 보여준다.


이런 그의 균형감각을 통해 대영제국과 서구세력에게 책임을 물으면서 아프리카도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반성 촉구한다.


그의 관점을 통해 이 작품은 지리적, 문화적 경계를 넘어 문학이 갖는 보편적 특성을 가진 작품으로 세계적 문학의 반열에 아프리카 작품을 올리는 성취를 이룬다.      

이 책은 작품 자체로 아프리카의 소멸된 부족 전통문화와 풍습, 삶을 보여주는 인류학적 보고서이다. 지금은 사라진 19세기 아프리카 부족사회가 우리가 생각하는 미개하고 원시적인 형태가 아니라 나름의 질서와 신분 체계와 문화를  갖춘 사회임을 알게 해 준다.   

   


대항해 시대로 촉발된 제국주의는 서구 열강들과 일본이  아프리카 , 아시아 대부분의 나라를 식민지화해서 다스리는 비극을 낳고 20세기 근대시기가 되어서야 끝났다. 대부분의 나라들이 해방되어 독립 국가를 이뤘지만 과연 그것이 완전한 독립인지 자문해 봤다.


아직도 세계 도처는 대륙별로 여전한 불평등과  착취의 구조로 고통받고 있다. 아프리카 대부분의 나라들은 식민시 체제에서 구축된 약탈적인 시스템, 후진적인 정치체제로 여전히 고통받고 있다.


책 속에서 산산이 부서지는 이보족과 주인공 오콩코의 비극은 아직도 우리 삶에서 진행되고 있는 국가와 개인의 모습을 투영한다.     


우리 삶과 지금의 세계도  언제든 부서질 수 있는 유약한 존재이다. 그것이 파국이 될지, 새로운 전환이 될지는 결국 각자의 선택과 운명 달려있다.   

  

오콩코는 깊은 슬픔에 잠겼다. 그리고 그것은 단지 개인적인 슬픔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눈앞에서 부서지고 산산이 조각나는 부족의 처지를 한탄했고, 우무오피아의 도전적인 남자들이 여자처럼 그렇게 영문을 알 수 없이 유약해져 버린 것을 애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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