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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대로 동행 Sep 29. 2022

우리 이렇게 같이 살면 좋겠다

부모님 집을 떠난 뒤

주말에 아빠를 뵈러 갔다. 한 주 내내 독한 약을 드시느라 장이 안 좋아 설사를 하셨다고 한다.

전보다 여윈 얼굴의 아빠가 평소 좋아하시던 월병, 만주, 마카롱, 갈비탕, 반찬 등을 내놓았다.

평소 같으면 환한 미소로 좋아하셨으련만 아직 속이 안 좋은  아빠는 무심한 표정으로 방 한편에 놓으라 하신다.


부쩍 몸이 안 좋아진 아빠를 돌보시느라 엄마의 얼굴도 수척해져 있었다. 밤마다 잠을 제대로 못 이루셔서인지 얼굴빛이 영 좋지 않으셨다.

아빠, 엄마와 돌아가면서 사는 얘기, 애들 얘기 등을 나눴다.


적막한 집안에 세 식구가 오붓하게 모인 게 참으로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트로 가서  부모님 드실 음식을 사는데 뒤늦게 나를 따라오신 엄마는 계산을 못하게 하신다.

 딸이 돈을 많이 쓰는 게 영 내키지 않으신가 보다. 예전의 엄마는 그러지 않으셨다. 딸이 사드리는 음식, 선물 등을 늘 기쁘게 받고 뿌듯해하셨다.


그러나 이제 한창 학원비, 식비 등이  많이 나갈 중고등학생 아들 셋을 뒷바라지하는 형편을 감안해서 내가 돈 쓰는 것을 늘 꺼려하신다.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미안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다.  나이 50이 되도록 부모님의 마음에 근심만 지워드리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괜찮다고, 이 정도는 쓸만하다고 해도 예전에 비해 엄마는 나의 씀씀이를 못마땅해하신다.  


집에 돌아와 모처럼 몸을 일으켜 앉으신 아빠와 함께 우리 셋은 두런두런 얘기를 나눈다.  

아이들과 남편의 안부도 전하고, 날씨나, 세상 돌아가는 얘기도 한다. 소소한 얘기들을 나누며 잔잔히 웃는다.


내내 조용했을 집에 오랜만에 가족이 부대끼고 대화하는 온기가 돌기 시작한다. 그 온기가 좋으셨는지 엄마가 조용히 한 마디 건네신다.

우리 예전처럼 이렇게 같이 살면 좋겠다. 그치?


엄마의 그 한 마디에 나는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세 명의 딸이 결혼하고 모두 집을 떠난 뒤 엄마, 아빠도 많이 외로우셨나 보다.

대화 없이 단 두 분이 남은 적막한 집안에서 딸들이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하셨겠지.    

떠난 우리는 이전의 추억을 까맣게 잊고 새로 꾸린 가정에서 단꿈에 젖어 있을 때, 단 둘이 남겨지셨던 부모님은 우리를 많이 그리워하셨나 보다.

나는 한 번도 내가 떠난 뒤 느꼈을 부모님의 외로움을 헤아려 본 적이 없었다.

모두 그렇게 살길래 그것이 당연한 줄만 알았다.


 그러나 나이 50이 되고, 공부하느라 늦은 밤에야  돌아오는 아이들을 기다리며 이제는 그때 느꼈을 부모님의 진한 외로움을 조금이나마 이해해 간다.


언젠가 나도 아이들이 모두 떠난 뒤, 적막해진 집에서 아이들이 떠난 뒷모습을 그리워할 날이 오겠지?   한 때 아이들이 썼던 빈방을 바라보며 체취를 떠올릴까?


사랑하는 건 함께 있어주는 것이라 했다.

이제 엄마가 돈을 못쓰게 하시더라도 좋아하시는 것들을 잔뜩 사서 최대한 자주 찾아뵈어야겠다. 지금까지 가슴에 사무쳤을 그 외로움들을 충분히 만회하시도록, 곁을 지켜드려야겠다.


'엄마, 저도 예전처럼 같이 살고 싶어요.

언젠가는 내가 엄마,아빠를  많이 그리 하겠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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