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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대로 동행 Oct 26. 2022

10월의 어느 멋진 날

아빠와 함께 한 가을날

아빠가 한의원에 가고 싶다고 하신다.

정형외과에 가서 통증주사 맞고, 물리, 도수치료 등을 하시는 게 버거우셨나 보다. 매번 앰뷸런스를 타고 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으니 이번에는 동네에 있는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겠다고 하신다.


 한의원에 가는 거리는 집에서 불과 500m 남짓 거리인데 문제는 아빠가 휠체어를 타실 수 있느냐이다.  평생 목발을 짚으시느라 어깨며 팔근육이 다 상한 아빠가 하반신 마비로 인해 순전히 상체 힘으로 휠체어를 타셔야 하는데 도와주는 사람이 없이는 영 불가능하다.

나는 아빠에게 가까운 거리지만 앰뷸런스를 이용하자고 했지만 아빠는 한사코 휠체어를 타고 가겠다고 하신다.


하는 수 없이 아빠가 휠체어에 앉으시도록 도와드린다. 물론 내 힘으로는 어림도 없어, 엄마까지 함께 낑낑댔지만  아빠를 휠체어에 앉혀 드리는 건 만만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30여 분간의 사투 끝에  아빠는 소파를 이용해서 가까스로 휠체어 위에 앉으셨다. 휠체어에 앉으시니 이미 겨드랑이 사이로 땀이 흥건하게 배어 있다.


예전의 아빠는 건장하고 힘도 세셨다.  활동적이고 늘 낙천적이셨다. 무거운 것도 번쩍 들어 올리시고, 목발에 의지해 선 채로 맛난 요리도 잘해 주셨다.


 나는 그때 아빠의 투박하고 강인한 팔과 손을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그러나 이제 아빠의 손은 기력이 없다.   어깨를 조금만 올리셔도 통증으로 고통스러워하신다.   그토록 강인했던 아빠가 세월 앞에 서서히 약해지신다.


아빠와 함께 모처럼 거리로 나왔다.

햇살은 찬연하고, 거리는 사람들로 넘친다.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며 거리를  지나는 10월의 한가로운 오후가 맘에 드시나 보다.

아빠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마냥 행복해하셨다.

눈부신 가을 햇살이 아빠의 어깨위로 살포시 내려 앉는다.  나는 그런 아빠가 마음껏 그 순간을 즐기시도록 휠체어를 최대한 천천히 끈다.

한의원에서 물리치료, 침, 부황을 뜬 뒤에 아빠는 표정이 한결 밝아지셨다.  집으로 오는 길에는 마트 가득 진열된 과일들을 보시더니 홍시를 좀 사자 하신다.  늘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거리, 사람들, 차들이지만 아빠와 함께 걸으니 모든 것이 특별해진다.


어쩌면 아주 먼 훗날 나는 이 거리를 걸으면서 오늘 보았던  아빠의 체취와 모습을  떠올릴 것이다. 아이처럼 천진한 웃음으로 가을 햇살을 즐기시던 아빠를 많이 그리워하겠지.


집으로 온 뒤 홍시를 3개나 드신 아빠는 긴 잠을 주무신 이후, 식사도 전보다 잘하셨다.

예전에 어린 꼬맹이였던 나에게 다정하게 고기쌈을 먹여주셨던 아빠께 이제는 그때의  아빠보다 훨씬 나이 든 딸이 고기쌈을 먹여 드린다.  시간은 이렇게 돌고 돌면서 우리의 사랑을 이어주나 보다. 



10월의 어느 멋진 날, 노래가 떠오른다. 아빠와 보낸 이 하루가 우리의 10월의 멋진 날이다.


이렇게 멋진 날들이 쌓여 삶은 경이로운 기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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