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 일기 - 내 모든 무능함의 무대 3
특정할 만한 일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직장 내 괴롭힘이라던가, 과중한 업무라던가, 엄청난 진상 민원인에 시달리는 일이라던가 그런 일들 말이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응급처치실이었다. 나는 왼 손목을 의사에게 내어준 채 반대쪽 벽으로 고개를 돌린 채 조용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꿰매어지는 살이 아파서는 아니었다. 생리적 현상처럼 자연스럽게 흐르는 것이었다. 처치가 끝나고 차로 돌아가는 길, 겨울 새벽 공기가 꽤 찼을 테지만 그저 멍한 상태였던 나는 느낄 수 없었다. 패딩을 더 여며라는 아빠의 말에 괜찮다고 말했다. 그러자 아빠는 뭐가 괜찮냐면서 패딩 지퍼를 끝까지 채워주었다. 멍한 상태가 깨어지고 울컥 눈물이 찼다.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른 것일까. 나 자신한테가 아니라 이 사람들한테 해선 안 될 짓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았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녀는 열심히 낯설어했다. 주변을 둘러싼 물건들은 너무 낯설었다. 전화기의 매끈한 회색이,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사무적인 소리들이 낯설었다. 컴퓨터 모니터가 은은히 내뿜는 미열이, 모니터에 비치는 시시콜콜한 숫자들이, 옆 자리 여직원의 슬리퍼가 씨익씩하고 끌리는 소리가 그녀를 어지럽게 했다. 뒷자리 남직원의 손에 들린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아이스가 달그락달그락거리는 소리 하며 따끈따끈한 종이를 뱉어내는 프린터기의 잔잔한 기계음 하며 창가로 비치는 햇살에 빛나는 먼지와 텁텁한 실내 공기까지 뭐 하나 그녀를 낯설게 하지 않는 것이 없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낯선 것은 사람들이었다. 그녀가 여태까지 봐온 사람들과는 다른 곳에 살고 있는 듯한 사람들.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그녀가 도대체 알아들을 수 없는 단어들의 합이었고 그들의 암묵적인 룰은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보다도 더 난해한 수어였다.
외계인. 그녀는 그들을 이렇게 정의했다. 그들만의 행성에서 그들만의 룰로 살아가는 외계의 사람들 같았다. 그들은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듯이 행동했고 당연히 그래야 하는 행동에 조금이라도 뒤쳐지면 뒤에서 차디찬 빔을 쏘아댔다. 그들은 작은 먼지가 떠돌아다니면 저마다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 없는 언어를 첨가하고 또 첨가해 그것을 묵직한 먼지 덩어리로 재탄생시켜 건물 곳곳에 머물게 하는 능력도 있었다. 그녀는 미지의 그들이 무서웠고 그래서 자꾸 거리를 두고 낯을 가렸다. 어설프게 당연히 그래야 하는 행동들을 따라 하곤 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자꾸 실수가 생기고 그 실수는 그녀의 심장을 정조준하는 총알이 되어 날아와 박혔다. 이후 그녀는 더더욱 그들과 낯을 가리게 되었다. 저들은 이제 더더욱 나를 이방인으로 인식하겠거니, 지레짐작 겁을 먹고 낯을 가리게 되었다. 결국 그녀의 입에는 하얀 거미줄이 쳐지고 한 마디도 먼저 뱉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들은 그녀의 입에 하얗게 쳐진 거미줄을 이상하게 여기며 적당히 거리를 두게 되었다. 그녀는 그렇게 또다시 혼자가 되었다.’
‘그녀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썼던 짧은 이야기 중 일부다. 나의 직장생활을 정리한 단 두 문단이다. 정말 특정할 만한 일이 없다. 그저 낯선 공간을 열심히 낯설어했고 시간이 지나도 도무지 익숙해지지 못해 매일 무능했다는 것, 나와는 달리 능숙한 이들 사이에서 버둥대다가 다시 혼자가 되었다는 것, 그게 전부다. 그러나 나는 부단히도 고통스러워했다. 고통은 머리를 마비시켜 실수만 주야장천 반복하게 했고 나는 나 자신을 더더욱 나를 무능한 인간으로 취급했다. 직장 내의 다른 이들 역시 이런 나를 눈치챘을 거라고 지레짐작했다. 몸은 피곤의 끝을 달리는데 어느샌가부터 매일 밤 불면에 시달렸다. 자의에 의한 불면이었다. 깨어 있는 시간이 고통이면서도 아득바득 잠들지 않으려 애썼다. 눈 감았다 뜨면 바로 아침이 와있는 것이 무서웠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갑자기 칼에 찔리는 듯한 느낌이기 때문이다. 잠든 사이에는 시간이 나도 모르게 훌쩍 지나가버리니 잠들지 않고 시간이 더디게 가는 것을 느끼고 싶었다. 이불속에 웅크려 다가올 아침을 두려워하면서 깨어 있었다. 천천히 피를 흘리는 느낌이었다. 멍청한 짓이고 모순된 짓인 것을 알면서도 불안과 두려움에 숨이 막힌 채 덜덜 떨면서 깨어 있었다.
불면으로 피곤한 몸을 달래는 것은 음식이었다. 틈만 나면 음식을 입에 욱여넣었다. 여전히 진행 중이었던 엄마와의 침묵으로 인해 집은 나의 안식처가 되지 못했다. 나의 입은 대화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목구멍으로 들이닥치는 음식물만을 위한 것이었다. 집에 돌아오면 문을 꾹 닫고 의자 위에 섬처럼 앉아 바리바리 사들고 온 과자와 술을 목구멍에 퍼부었다. 불면으로 피곤한 몸을 이렇게나마 달래기 위해, 공허한 마음을 위장으로 대신 채우기 위해. 어느 날은 토하기 직전까지 먹었다. 어느 날은 책상 위에 널브러진 지우개 가루를 먹기도 했다. 그러고는 퇴근길에 갑자기 백화점 화장실로 달려가 억지로 구토를 유도하기도 했다. 점점 내가 아닌 내가 되어가고 있었으나 그것을 체감하기에는 내가 너무 고통 한가운데 있는 상태였다. 그 고통을 어떻게든 분출해야겠다고 생각했는지 언젠가부터 살에 상처가 하나둘씩 생기기 시작했다. 아픔은 무뎌지고 상처는 하루 일과가 되어갔다. 그러던 어느 새벽, 하루 일과라고 취급하기에는 조금 큰 상처가 생겨버렸고 그렇게 나는 왼 손목을 의사에게 내어준 채 조용히 눈물을 흘리는 내 자신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공부한 시간이 무색하게도 면직서는 너무 쉽게 쓰였다. 휴직을 권하는 목소리가 여럿이었으나 나는 면직을 고집했다. 절차는 까다롭지 않았다. 팀장님과의 면담과 담당 부서와의 전화 면담이 끝이었다. 내 소식을 들은 선생님들은 나를 많이 걱정해주었다. 그런 그들을 보며 나는 더더욱 나 자신을 혐오하게 되었다. 외계인이라는 단어는 이들한테 붙일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붙여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정상에서 먼 사람이라 이들과 환경을 삐딱하게 바라본 것이고 혼자 상처받은 것인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공식적으로 면직이 되는 날, 선생님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짐을 챙겨 나왔다. 그렇게 나의 첫 직장생활은 실패로 끝이 났다. 남의 시선을 과민하게 의식하는 버릇, 슬픔을 이상하게 억누르는 버릇, 불현듯 찾아오는 불안이 덩어리로 합쳐진 결과였다. 나는 한 마디로 ‘겁쟁이 직장인’이었다. 아무것도 아닌 것에 지레짐작 겁먹고 혼자 상처를 받고 스스로를 소외시키는 일을 반복하는 무능한 겁쟁이일 뿐이었고 직장은 내 모든 무능함의 무대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