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의 궤적

슬픔 일기 - 내 모든 무능함의 무대 2

by 권등대

드라마에서 보던 것처럼 사방이 새하얀 방은 아니었다. 선생님이 검은 뿔테 안경을 쓰고 있지도 않았다. 잔잔한 피아노 곡이 흘러나오고 은은한 커피 향이 나는 게 아늑한 카페에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검사지를 토대로 분석된 나의 상태에 대한 종이를 손에 쥐고 선생님을 마주하고 있으면서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 내가 여기 있어도 되는 게 맞나. 일상생활을 못 할 정도도 아닌데. 그러나 손에 쥐인 종이에 적힌 결론은 ‘높은 우울 및 불안 증세’였다. 선생님이 먼저 안부를 묻는 것으로 대화가 시작되었다. 내가 횡설수설했던 것만 기억하는 가운데 선생님의 한 마디는 다행히 기억에 남아 있었다. 나의 우울은 지금 당장 시작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 상담이 끝나고 병원을 나섰다. 퇴근 후에 부랴부랴 왔다 보니 어느새 늦은 저녁이었다. 입김이 서리는 것을 지켜보다 다시 의문이 들었다. 내가 어쩌다가 여기로 오게 되었을까.


내가 진지하게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을 계획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대학교 1학년 시절이다. 두 시기 다 봄이었다. 봄은 낯섦을 동반한다. 새 학기, 새 학교, 새 만남 같은 것들은 대부분 봄에 있다. 그래서 나는 봄마다 힘들었다. 나는 새 환경과 사람들에게 적응하기 힘들어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이유가 단순히 나의 내성적인 성격과 낯가림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건 사실 내가 남의 눈치를 너무 많이 보느라 형성된 특성이라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내가 먼저 말 걸기를 힘들어하는 이유는 낯을 가려서라기 보단 ‘내가 지금 말을 걸면 이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를 나도 모르게 심히 신경 쓰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내가 이런 행동을 하면 이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볼까. 내가 하려는 행동이 이 사람이 고개 끄덕일 만한 행동일까. 실수와 결점을 보이는 일을 극히 싫어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실수를 하거나 결점을 들키는 순간 이 사람은 나를 싫어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실수하지 않기 위해 작은 말 한마디가 조심스러워진다. 그러다 보니 말 한마디를 뱉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고 그러다 보면 타인과의 시간은 끝난 뒤다. 시간은 흐르고 나는 홀로 위축된다. 이제 이런 나를 다 알았겠지, 하는 생각에 위축되어 더욱 말 한 번 붙이는 데에 인색해진다. 그렇게 멀어지고 스스로를 소외시키기에 이른다. 그런 레퍼토리였던 것이다. 살면서 어딘가에 완전히 소속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거의 없는 나는 그래서 외로움을 잘 모르는 것이 아니라 누구보다 소속감을 원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결국 또 소외되고 그 소외감에 몸부림치게 되었ㄱ 결국 스스로 목숨 끊는 일을 계획하게 된 것이다. 구체적인 방법과 동선과 시간까지. 그러나 다행히도 기적적으로 손을 내밀어 준 이 덕분에 실행하지는 못했다.


어떤 날은 가을 저녁이었다. 독서실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와 씻고 다시 내 방 책상 앞에 앉았다. 책으로 어질러진 책상 위를 대충 정리하고 잠시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시야가 떨렸다. 시선을 한 곳에 두기가 힘들어졌는데 몸이 떨리는 탓이었다. 어느새 손금을 타고 땀이 흘렀다. 묘하게 숨이 차고 몸을 어찌하지 못했다. 엎드렸다가, 일어나서 방안을 서성이다가, 구부정하게 다시 앉아도 봤다가… 무언가에 집중을 하면 나아질까 하는 생각이 들던 그때 눈에 띈 것이 이상 작품집이었다. 떨리는 손으로 수필을 펼쳐 한 글자씩 천천히 읽어 보려고 했으나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그래서 소리 내어 읽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떨림이 잦아드는 것이 느껴졌고 한시름을 놓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날 저녁과 같은 일은 부정기적으로 반복되었다. 그럴 때마다 이상의 수필을 소리 내어 읽었다. 어느샌가 나는 그 수필의 첫 부분을 보지 않고도 읽을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증상이 나를 자주 찾아왔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증상을 그리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또 어떤 날은 여름 저녁이었다. 갑자기 답답해져서 독서실을 박차고 나왔다. 갈 곳을 정하지 않고 무작정 언덕 아래로 걸었다. 걷다 보니 도착한 곳은 공원이었다. 주말 저녁이라 그런지 삼삼오오 걷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공원 옆에는 수영강이 흐른다. 어두운 강물 위로 노란 불빛들이 일렁일렁 반사되었다. 고흐의 그림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귀에는 노킹 온 헤븐스 도어를 틀어 놓고 강물이 흐르는 대로 걸었다. 강물 비린내와 나뭇잎 냄새가 났다. 나는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우는 내 콧속에는 강물 비린내가 가득했고 그 강물 비린내를 잊지 못한 나는 이후로도 그 공원을 자주 찾게 되었고 찾은 만큼 울게 되었다. 울면서도 나는 의문이었다. 나는 대체 왜 우는 거지? 공시 공부는 분명 힘들었지만 울고 싶을 만큼은 아니었다. 하루에 열몇 시간씩 공부를 하는 다른 공시생들처럼 빡빡한 일정을 보내는 편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나에게 금전적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고 전혀 부담을 주시지도 않았다. 주변의 친구들도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나를 괴롭히는 다른 어떤 문제도 없었다. 그런데 왜 눈물이 멈추지 않는 건지 그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이제 와서야 나는 이유를 깨닫는다. 괜찮은 척을 너무 많이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고작 책 몇 권 읽고 영상 몇 개 보는 게 힘들다고 떼쓰는 건 사치라며 아주 작은 힘듦까지 방 안에 꾹꾹 눌러 담아 문을 잠그고 못 나오게 망치질까지 해놓았던 탓이다. 작은 힘듦들이 망치질까지 해놓은 방을 뚫고 나오려니 강력한 방법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불안과 우울과 합체하여 방문을 뚫고 나온 것이리라.


남의 시선을 과민하게 의식하는 버릇, 슬픔을 애써 억누르는 버릇, 불현듯 찾아오는 불안은 어디 가지 않았다. 어디 갔으면 좋으련만. 이 특성들은 내가 직장인이 되자 더욱 물 만난 물고기마냥 내 안을 뛰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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