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것들의 리스트

슬픔 일기 - 한 우울증 환자가 까슬거림을 느끼는 것들에 대하여

by 권등대

1. 택배 - 택배가 올 때마다 내 방에 커터칼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내가 커터칼을 쓰는 것은 우리 집에서 암묵적 금기에 해당한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를 맞닥뜨리는 순간 역시 택배가 올 때다.


2. 엄마의 노트 - 어릴 적, 우연히 엄마의 휴대폰 노트에서 우울을 발견했다. 엄마는 사실 남몰래 우울증을 겪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가 쓴 우울의 문장들은 내게 너무 버거웠다. 처음 문장들을 읽었을 때 온몸이 쭈뼛 서는 듯했던 그 느낌은 이후에도 전혀 줄지 않았다. 제발 오늘은 새 노트가 추가되지 않았기를 바라면서 틈나는 대로 엄마의 휴대폰을 몰래 확인하곤 했다. ‘엄마가 휴대폰 노트에 더 이상 아무것도 쓰지 않는 것’이 그 당시 나의 거의 유일한 소원이었던 것도 같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소원은 이루어졌다. 엄마의 노트는 깨끗해졌고 엄마는 눈에 띄게 나아졌다. 그리고 오늘, 엄마의 휴대폰 노트에 무언가 쓰여 있는 것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어떤 내용인지까지는 알 수 없었다. 별 거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왠지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이겼다. 엄마의 우울의 문장이 다시 시작된 것일까. 그렇다면 무조건 나 때문일 것이다. 어린 시절의 내가 엄마의 우울을 덜어주지 못하고 그저 몰래 휴대폰 들여보는 일밖엔 하지 않았다는 죄책감이 있다. 이번에는 다른 죄책감이 온다. 나의 우울이 엄마를 다시 전염시킨 것일지도 모른다는 죄책감.


3. 평온해야 하는 것 - 평소와 조금이라도 다른 모습을 보일 수가 없다. 그러면 곧바로 엄마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찾아오기 때문이다. 보통은 내가 밤에 화장실을 한 번 가는데 어느 날 밤은 두 번을 갔었다. 다음날 아침, 엄마는 왜 어젯밤에는 화장실을 두 번이나 갔느냐고 걱정스럽게 물었다. 얼마 전엔 주무시다가 갑자기 내 방으로 와서 탁자에 있는 생리통 약을 가리키며 이 약은 무슨 약이냐고 물었다. 본래 걱정이 많은 성격인 데다가 그런 일까지 있었으니 걱정이 더 많이 되는 건 알겠지만 그 걱정이 나를 숨 막히게 만드는 때가 있다. 초반에 병원을 다니던 때에는 거의 매일 지금은 괜찮으냐고 물어왔었다. 의무적으로 티비를 보러 거실에 두 어 번씩 나가야 할 것 같고 기분이 안 좋을 때도 너무 티를 내서는 안 될 것 같다. 하지만 엄마 입으로 그랬었다. 사람이 어떻게 내내 기분이 좋을 수가 있냐고. 어느 날은 기분이 좋다가도 어느 날은 나쁘다가도 하는 거라고. 그러나 엄마는 그 이야기를 나에게는 적용하지 못한다. 엄마는 나에게 평생 완벽을 강요한 적이 없다. 엄마는 나에게 시험 성적을 몇 점 맞아라, 어느 대학에 가라, 무조건 1등을 해라, 그런 말은 일절 하신 적이 없다. 나에게 자율을 주시는 분이었다. 하지만 엄마는 다른 의미에서 완벽주의자가 맞다. 내가 조금이라도 불행한 모습을 보지 못하는 류의 완벽주의자. 아주 티끌만 한 불안도 불행한 우연도 용납하지 못하고 끙끙 불안해한다. 그러므로 불행의 최댓값인 지옥에 간다는 말이 무서워 꼬박꼬박 다니는 교회를 내가 그만 다니겠다고 하니 절대 용납하지 않으셨던 것이다. 그런 엄마에게 사실 상처를 내는 일이 이어지고 있어서 약을 하나 더 추가해서 먹고 있다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어 계속 거짓말을 해야만 한다. 이 단락은 불효하게도 엄마에 대한 원망의 단락이다.


4. 저녁 뉴스 - 가족들과 같이 저녁 뉴스를 보기가 힘들다. 한 번은 같이 뉴스를 보다가 기숙사에서 몇 번의 자살기도 후에 결국 자살한 학생에 대한 뉴스가 나와서 다들 당황했던 적이 있다. 다들 겉으론 별 티를 내지 않았지만 분명히 당황했다. 자살기도라는 단어에서 분명히 내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 이후로 같이 뉴스를 보기가 힘들다. 또 그런 소식을 방송할지도 모르니까. 저녁 뉴스 시간이면 나는 알아서 방으로 들어간다.


5. 약 - 밤에 약을 먹으러 부엌으로 향할 때면 마음이 무겁다. 약을 먹은 지 벌써 일 년이 넘었는데도 그렇다. 내 병을 확인사살당하는 시간이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건 그렇다 치고 왜 눈치를 보게 되는지를 모르겠다. 거실에서 티비를 보고 있는 아빠, 방 안에서 잠들어있는 엄마에게까지 눈치를 보며 약봉지를 뜯는다. 내가 약봉지를 뜯는 소리도 들리지 않을 텐데 나는 약봉지를 최대한 조심스레 뜯고 얼른 물과 함께 마셔버린다.


6. 동기 언니 - 짧게나마 직장에 다니던 시절에 나를 많이 챙겨주었던 동기 언니가 있다. 모든 것이 고통과 실패 투성이었던 직장 생활이 나에게 남긴 유일한 감사는 언니를 만났다는 것이다. 언니가 아니었다면 나는 나 자신을 어디까지 밑으로 끌어내렸을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내가 직장을 그만둔 후에도 연락을 주고받고 만나서 맛있는 것을 먹기도 하고 서로의 생일을 챙겼다. 얼마 전, 언니는 내가 좋아하는 배우가 오는 영화 시사회 티켓이 두 장 생겼다며 같이 가자고 연락을 해왔다. 죽기 전에 실물을 봐야겠다며 입버릇처럼 말할 정도로 내가 오래도록 좋아해 오고 있는 배우를 볼 수 있는 기회였는데도 나는 선약이 있다고 거짓말을 해버렸다. 나는 언니를 오래 보고 싶다. 그런데 왜인지 시간이 갈수록 언니를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사실 그 이유를 잘 알고 있다. 언니를 만나면 분명히 언니가 요즘은 어떻게 지내느냐, 앞으로 어떤 일을 할 것이냐고 물어올 텐데 나는 그 질문이 너무 두려운 것이다. 내가 도망쳐온 그곳에서 언니는 꿋꿋이 버티고 있다는 사실도 나에게 수치심으로 다가온다. 뭐가 그리 힘들다고 뛰쳐나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혹시 언니도 나를 조금은 한심하게 생각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니까 내가 겁쟁이고 이기주의자라서 언니를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는 것이다.


7. 부모님의 머리칼 - 어느새 뒷머리가 휑해진 아빠를 보면서, 염색한 지 며칠 만에 속엣머리가 하얗게 세는 엄마를 보면서 마음이 무거워진다. 평생의 반 이상을 그렇게도 열심히 사셨다. 그런데 나는 무얼 했나. 지금도 속만 썩이고 있지 대체 무얼 했나. 아무것도 해드리는 것도 없으면서 자꾸 슬픔과 책임감만 얹어주는 것 같아서 죄스럽다. 언제까지고 나를 지켜줄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닌데 내가 자꾸 지켜달라고 징징거리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이분들께 대체 무얼 드렸나. 무얼 드릴 수 있나. 내 앞날조차 그리지 못하고 있는데 이분들에게 무엇을 그려줄 수가 있나. 내 선택을 후회한 적 없지만 부모님을 생각하면 가끔 후회가 찾아들 수 있는 작은 구멍이 생기곤 한다.


8. 우울이라는 단어 - 그 사람 우울증이래, 그 영화 내용이 좀 우울해, 라는 말을 들을 때 ‘우울’이라는 단어에 예민하게 반응하게 된다. 나뿐만 아니라 그 얘기를 꺼낸 사람마저 나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우울’이라는 단어 자체가 까슬거리는 것이다. ‘아, 우울증 걸릴 것 같아’라는 말에는 더더욱 예민하게 반응하게 된다. 그렇게 쉬운 말이 아닌데, 하는 생각에. 네가 우울을 아느냐는 식의 말도 안 되는 시비가 곁들여진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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