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 일기 - 소설이라 우기는 나의 이야기 2
단 한 번도 낮이 머문 적 없는 듯한 거리가 여기 있다. 애매한 외곽지역에 버려진 채 오랫동안 방치되어있는 극장처럼 일 년 삼백육십오일 어두운 이 거리는 일 년 삼백육십오일 같은 풍경이다. 단 여섯 대의 차만이 숨죽이고 있는 지상 주차장과 어둠을 충분히 밝혀주지 못하는 단 여섯 개의 침침한 가로등, 여섯 번째 가로등 아래 누런 빛을 받고 있는 낡은 철물점과 거리의 시작과 끝에 늘어선 폐공장까지 모두 정좌 자세로 가만히 앉아있다. 그리고 열한 시를 조금 넘긴 시각이 되면 아니나 다를까 야트막한 콘크리트 언덕으로부터 그녀가 나타난다. 정수리부터 시작하여 얼굴과 어깨, 그리고 전신의 실루엣이 순서대로 까맣게 드러난다. 숨소리도 발소리도 없어 홀로 떼어진 그림자인가 싶지만 그녀가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한 가지 단서가 있는데 그것은 표정이다. 그녀는 언제나 어딘가 불편한 사람처럼 눈 밑 지방이 불퉁해지도록 눈을 찌푸리고 오른쪽 눈썹 뼈에 움푹 힘을 주고 있다. 어금니를 물어서 턱 근육이 빳빳할 때도 있고 한쪽 윗입술에만 위쪽으로 불쑥 힘이 들어가 못된 입매를 하고 있는 때도 있다. 그녀는 항상 그 시간에 항상 그런 표정을 하고 거리에 나타난다. 그녀의 이름은 아무도 모르는 이름일 수도 있고 누구나 아는 이름일 수도 있다.
그녀는 사흘 전에 교복 치마 아래로 보이는 종아리를 신경 쓰느라 혼났다. 왜냐하면 모두가 교복 치마 아래로 보이는 종아리를 신경 쓰느라 혼났기 때문이다. 다들 텔레비전 속 그녀들과 너무 멀어져서는 안 될 일이었다. 그래서 운동장을 몇 바퀴 돌고 남은 시간이면 아이들은 하나같이 스탠드 계단에 주르륵 앉아 자신의 종아리를 찰흙마냥 주물럭거렸다. 그녀는 종아리가 하얗고 엷은 편이었지만 열심히 종아리를 주물럭거렸다. 그러면 옆에 있던 친구들 중 한 명이 니가 무슨 살이 쪘다고, 어디에 흉한 근육이 있다고 종아리를 주물럭거리느냐며 부러움 섞인 핀잔을 꼭 얹어준다. 그녀는 그런 핀잔을 듣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 핀잔은 자신이 텔레비전 속 그녀들과 너무 멀어지지 않고 있다는 증거였기 때문이다. 언젠가 그녀가 엷은 종아리와 미역 같은 머릿결, 여드름 따위로 절대 붉어지지 않는 하아얀 피부 같은 것들과 멀어졌던 과거의 어느 날 그녀는 이상한 소외감에 시달렸던 바 있다. 주변이 그녀를 부끄러워하는 것 같았다. 아니, 그녀를 보는 것 자체를 부끄러워하는 것 같았다. 덩달아 그녀도 거울을 보면서 얼굴을 붉혔었다. 그러므로 그녀는 사흘 전 그날 아마 집에 돌아가서 더 열심히 종아리를 주물럭거렸을 것이다.
그녀는 그제 하루를 꼬박 뛰어다녔다. 전날에 뛰었던 운동장 달리기와는 다른 뜀박질이었다. 무엇을 위한, 어디를 향한 뜀박질인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그저 열심히 뛰고 또 뛰었다. 같이 뛰자고, 뛰어야 한다고 손을 건넨 사람이 있었다거나 도착해야 하는 구체적인 장소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옆을 돌아보니 자신과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이 열심히 뛰어다니길래 그녀도 덩달아 뛰어다녔을 뿐이었다. 그들의 웅장한 발소리와 흘깃 쳐다보고 지나가는 눈빛에서 어떤 불가항력을 느꼈을 뿐이었다. 그래서 그들이 가는 방향과 비슷한 방향으로 뛰기 시작한 그녀는 밤낮을 모르고 뛰어다니기에 이르렀다. 마치 밤낮을 알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그렇게 뛰어다녔다. 잠시 멈춰서 숨을 헐떡이는 사람을 지날 때면 괜히 더 힘찬 모양새로 뛰었다. 반대로 그녀가 잠시 멈춰서 숨을 헐떡일 때 싱싱한 모양새로 자신을 지나치는 사람이 있으면 그를 향해 뜨거운 눈빛을 쏘아댔다. 나도 얼른 그곳에 가야 한다, 하는 마음에 그녀는 숨 헐떡이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자고 결심하며 비척비척 다시 뛰어갔다. 그곳이 어디인지는 꾸준히 모르는 채였다.
그녀는 어제 열심히 낯설어했다. 주변을 둘러싼 물건들은 너무 낯설었다. 전화기의 매끈한 회색이,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사무적인 소리들이 낯설었다. 컴퓨터 모니터가 은은히 내뿜는 미열이, 모니터에 비치는 시시콜콜한 숫자들이, 옆 자리 여직원의 슬리퍼가 씩씩하고 끌리는 소리가 그녀를 어지럽게 했다. 뒷자리 남직원의 손에 들린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아이스가 달그락달그락거리는 소리 하며 따끈따끈한 종이를 뱉어내는 프린터기의 잔잔한 기계음 하며 창을 통해 들어온 햇살에 빛나는 먼지가 섞인 실내 공기까지 뭐 하나 그녀를 낯설게 하지 않는 것이 없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낯선 것은 사람들이었다. 그녀가 여태까지 봐온 사람들과는 다른 곳에 살고 있는 듯한 사람들.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그녀가 도대체 알아들을 수 없는 단어들의 합이었고 그들의 암묵적인 룰은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보다도 더 난해한 수어였다.
외계인. 그녀는 그들을 그렇게 정의했다. 그들은 그들만의 행성에서 그들만의 룰로 살아가는 외계의 존재들 같았다. 그들은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듯이 행동했고 당연히 그래야 하는 행동에 조금이라도 뒤쳐지면 차디찬 빔을 쏘아댔다. 그들은 아주 작은 먼지가 떠돌아다니면 저마다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 없는 언어를 첨가하고 또 첨가해 그것을 묵직하고 때 묻은 먼지 덩어리로 재탄생시켜 건물 방방곡곡 머물게 하는 능력이 있었다. 그녀는 미지의 그들이 무서웠고 그래서 자꾸 거리를 두었다. 당연히 그래야 하는 행동들을 어설프게 따라 하곤 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자꾸 실수가 생기고 그 실수는 그녀의 심장을 정조준하는 총알이 되어 날아와 박혔다. 이후 그녀는 더더욱 그들을 멀리하게 되었다. 저들은 이제 더더욱 나를 이방인으로 인식하겠거니, 지레짐작 겁을 먹고 거리를 두게 되었다. 결국 그녀의 입가에는 하얀 거미줄이 쳐졌고 단 한 마디도 먼저 뱉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들은 그녀의 입가에 쳐진 거미줄을 이상스레 여기며 거리를 두었다. 그녀는 그렇게 혼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런 그녀의 머릿속에는 항상 이상이 가득하다. 그 사람과 손을 잡는 상상, 이름도 얼굴도 없는 그 사람과 다른 모든 조건을 내려두고 서로를 크게 안아주는 상상이 계속된다. 한편 그런 상상도 이어진다. 우뚝 서는 상상, 교복 치마 아래로 보이는 종아리를 타고난, 미역 같은 머릿결도 하아얀 피부도 타고난, 하고 싶은 것도, 그에 필요한 모든 것도 타고난 그런 사람이 되어 우뚝 서는 상상. 그녀는 외계인들을 뒤로하고 잠시 화장실에서 손을 씻으며 그런 상상을 했다. 그러다가 눈앞의 유리에 불쑥 비친 희미하고 못난 자신의 얼굴을 마주하고 그녀는 허탈해졌다. 어제도 그녀는 그 거리의 야트막한 콘크리트 언덕으로부터 나타났다. 어딘가 불편한 사람처럼 눈 밑 지방이 불퉁해지도록 눈을 찌푸리고 오른쪽 눈썹 뼈에 움푹, 하고 힘을 주고 있었다. 따뜻한 늦봄 날씨인데도 그녀는 몸을 한껏 웅크려 팔짱을 끼곤 빠른 걸음으로 거리를 지나쳤다. 거리는 단 한 번도 낮이 머문 적 없는 듯 캄캄했고 그녀는 언제나처럼 어떤 남자가 뒤에서 그녀의 머리통을 와장창 깨뜨릴까 두려워했다. 어둠을 충분히 밝혀주지 못하는 가로등 밑을 지나며 그녀는 길고양이의 인기척도 의심하며 거리를 걸어갔고 어김없이 그를 만났다. 여섯 번째 가로등의 누런 불빛을 받고 있는 철물점과 함께 누런 불빛을 받으며 담배를 피우던 그는 언제나 그녀에게 말을 건다.
“이제 퇴근해?”
“아뇨.”
“고생했네.”
그와의 대화는 항상 이런 식이다.
“오늘도 얘기 한 번 못 붙이고 끝난 거지?”
“…”
“눈은 또 왜 그렇게 충혈된 거야. 보나 마나 고데기 한답시고 일찍 일어나서 그렇지. 그것 좀 그만해. 그래 봤자 눈에 띄게 달라지는 것도 없어.”
“… 갈게요.”
“네 주제에 그런 꿈이 가당키나 하냐. 이상한 망상할 시간에 잠이나 더 자.”
언제나 비슷한 말들을 뱉어내는 그를 뒤로하고 그녀는 다시 몸을 웅크린 채 걸어가기 시작한다. 매번 그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이유는 그녀 자신도 잘 모르는 듯하다. 잔뜩 웅크린 그녀의 그림자가 거리를 빠져나갔다.
*
그녀는 오늘도 밤 열한 시경 그 거리의 야트막한 콘크리트 언덕에서부터 나타났다. 발걸음 소리 하나 내지 않고 바쁜 걸음으로 거리를 지나치는 그녀의 얼굴엔 오늘따라 유독 무언가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듯하다. 오늘도 어떤 남자가 뒤에서 자신의 머리통을 깨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인 채로 거리를 빠른 속도로 지나치는 그녀는 갑자기 세 번째 가로등 밑에서 멈춰 선다. 그녀는 몸을 부르르 떨며 한숨처럼 한 마디를 뱉어낸다.
“지긋지긋해….”
떨리는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연거푸 그 말을 뱉어내던 그녀는 더 이상 몸을 웅크리지 않고 상체를 곧게 편 채 천천한 걸음으로 폐공장 옆을 죽 지나가기 시작했다. 갑자기 자신의 머리통을 깨버릴지도 모를 그 남자에 대한 공포가 지긋지긋해진 것이다. 왜 거시기가 달리지 않은 죄로 거시기 달린 놈들을 무서워해야만 하는 거야, 하는 엉뚱한 반발심이 그녀를 가득 채웠다. 허리를 꼿꼿이 펴고 당당하게 걷는 그녀는 그러나 자신도 모르게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고 그것을 알아챘을 때 그녀는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새 여섯 번째 가로등 밑 철물점에 도착한 절망의 그녀는 오늘도 역시나 철물점의 그와 마주했다. 그는 오늘도 몇 꽁초 째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이제 퇴근해?”
“…”
“고생했네.”
“…”
“뭘 그렇게 애쓰면서 살아, 무슨 세상 모든 짐이 지꺼인 양.”
그는 피우던 담배를 땅바닥에 툭 던진 후 발로 비벼 껐다. 그의 말을 잠자코 듣는 그녀의 얼굴 근육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니면 신경 쓰지 않는 것인지 그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사람이 왜 그렇게 미련해 터졌어. 불퉁한 얼굴 하며 안절부절 못 하는 걸음걸이 하며. 하긴 뭐 나가서 뭘 해봤어야 알지, 맨날 사람들 무섭다고 머릿속으로 쪼르르 숨으니 뭐. 몽상가라는 말도 너한텐 사치야.”
그만…. 그녀는 고통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중얼거렸다. 강추위 가운데 있는 사람처럼 그녀는 턱을 딱딱 부딪쳐가며 떨고 있었고 꽉 진 주먹 안의 손톱자국이 손바닥에 배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아랑곳 않고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너, 아직도 그 사람들이 외계인이라고 생각하지? 그 사람들이 외계인이 아니라 니가 외계인이야. 왜 자꾸 그 사람들 탓을 해. 그냥 지가 지레짐작 겁먹은 거면서.”
“그만…”
“너 스스로 올가미 만들어놓고 살려달라고 외치지 좀 마, 이 낙오자야.”
낙오자, 라는 말에 그녀의 아슬아슬했던 고삐가 완전히 풀려버렸다. 그녀는 참지 못하고 뱃속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듯한 외침을 그에게 뱉어냈다. 제발 그만하라고, 다 안다고, 그녀는 고래고래 소리지르기 시작했다. 한 번도 그녀의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없었던 그는 당황하여 말을 그치고 그런 그녀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그녀는 주먹으로 그의 가슴팍을 퍽퍽 치기 시작했다. 그만하라고, 그만하라고 소리 지르는 것을 멈추지 않은 채였다. 연거푸 그의 가슴팍을 때리는 그녀의 주먹이 힘을 잃어갈 때쯤 그녀의 목소리에 물기가 어려왔다. 난 당신이 너무 미워, 옳은 말만 해서 너무 싫어… 그녀는 흐느끼며 말했다. 그녀는 결국 그에게 오열하는 뒷모습을 보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난 당신이 너무 미워, 옳은 말만 해서 너무 싫어, 그 말을 계속해서 반복하면서 그녀는 무너져 내렸다. 그는 몹시 당황한 모습으로 그런 그녀의 등을 조금씩 토닥였다. 그녀의 울음이 잦을 때까지 그는 묵묵히 그녀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의 울음이 훌쩍임 정도로 잦아들었을 때, 그가 말했다. 영화 보러 갈래?
*
도착한 상영관 안에는 그들뿐이었다. 늦은 시각이기도 했고 ‘비틀거리는 사내’라는 이름의 이 영화는 요즘 한창 유행하는 히어로 영화에 밀려 상영관이 적었고 인기도 그닥이었기 때문이다. 영화는 주변 시야가 중심시력보다 지나치게 발달한 사내에 대한 이야기다. 그녀의 손에 쥐어진 영화 포스터의 홍보 문구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곁눈질에 익숙한 모든 젊은이들의 이야기’. 그녀는 영화를 보면서 많이 울었다. 주인공의 행복을 간절히 빌면서 많이 울었다. 그녀는 원래 영화를 보고 잘 우는 편이다. 그러나 정작 자기 자신을 위해서 그렇게 울어 본 적은 없다. 자기 자신의 행복을 그렇게 간절히 빌어본 적은 없다. 그녀는 주변 시야가 중심시력보다 발달한 사내의 모습에 자신을 투영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지금 그녀가 ‘비틀거리는 사내’를 보며 쏟아대는 눈물은 그녀를 전혀 바꾸지 못할 것이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의 그녀와 끝난 후의 그녀는 똑같을 것이다. 물론 약간 붓고 붉어진 눈가가 눈에 띄겠지만 약간 붓고 붉어진 눈가는 저를 투영하지 못한 일개 영화 캐릭터를 위한 것이므로, 그녀의 인생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므로, 영화 상영 후의 그녀를 바꾸지 못한다. 그녀는 내일 오후 열한 시경이면 여느 때와 같이 얕은 콘크리트 언덕을 올라올 것이다. 그림자처럼 스멀스멀 올라오다 첫 번째 가로등 아래 자신이 못난 것을 알고 있다는 듯한 얼굴을 비추일 것이다. 그녀의 이름은 아무도 모르는 이름일 수도 있고 누구나 아는 이름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