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눈질에 익숙한 백수

슬픔 일기 - 시선의 노예

by 권등대

‘그들은 존엄보단 쓸모의 증명을 강요받아왔다.’

『시설 사회』에서는 중증장애인, 정신적·육체적 질환자 등 시설에 수용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을 이렇게 설명한다. 사회는 사람을 존재 자체로 존엄한 존재라고 생각하기 이전에 그 사람이 경제적·사회적으로 이익을 낼 수 있는가의 여부를 먼저 따진다. 이익을 낼 수 없는 사람이라는 판단이 서면 쓸모없는 존재로 간주하고 시설에 가둔다. 사회가 사람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는가를 꼬집은 문장이다. 사회는 언제나 ‘쓸모의 여부’라는 렌즈를 끼고 사람을 바라보는 것이다. 시선은 강력하다. 사회의 시선은 곧 사람 마다마다 영향을 끼치고 사람은 사회의 시선을 체화해 버린다. 저 사람 밥벌이가 어떻고 사는 집이 어떻고 어느 대학을 나왔느니 하는 대화가 어느새 기본 반찬이 된다. 심지어는 자기 자신마저 그러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얼마나 좋은 대학을 가야 취업에 쓸모가 있을까,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열심히 취업 준비를 해야 쓸모 있는 사람이겠지, 그리고 정말 취업을 해야 정말 쓸모 있는 사람이겠지, 회사에 가면 이 정도 성과를 내고 이 정도 나이가 되면 이 정도 가격대의 옷과 가방을 걸쳐야겠지. 끊임없이 되뇐다.


요즘 나의 일상은 완벽한 백수의 일상이다. 사람들이 하루를 준비를 하는 이른 아침이면 누워있고 바쁜 점심시간이면 누워있고 일을 마치고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는 시간이면 누워있다. 누워서 앨범을 하나 틀고 카카오톡이나 인스타그램을 켠다. 오래전에 연락이 끊긴 친구들의 소식이 사진으로 간간이 들려온다. 열심히 사는 것 같은 친구의 사진이 올라오면 괜히 뜨끔거린다. 그러다 갑자기 그 친구들을 만나는 상상이 머릿속을 채운다. 어, 등대야 요즘 어떻게 지내니, 나는 누워서 지내, 아, 그렇구나,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올라가는 입꼬리, 한심하다는 듯한 눈빛, 답이 없다는 듯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친구와 그 앞에서 작아지는 나에 대한 상상이 자연스레 펼쳐지곤 한다. 잠깐이나마 직장을 다니던 시절에는 당연히 이런 상상을 하지 않았다. 나는 어엿한 직장이 있는 상태였으니까. 그보다 먼저 그런 상상을 할 마음의 여유 따위 없는 상태였으니까. 과거에 알게 모르게 나를 무시했던 친구들을 머릿속에 초대해 조용하고 잘난 거 없던 나 같은 애가 이렇게 어린 나이에 공무원이 되었을 줄 너희들은 몰랐겠지, 나 이렇게 잘 살아, 하며 뽐내는 일은 가끔 있었다.


직장을 나오고 다시 백수가 된 지금, 나는 더 이상 알게 모르게 나를 무시했던 친구들을 머릿속에 초대할 수 없다. 직장을 다니고 있었을 때 그들을 마음껏 초대해서 콧대를 마구 눌러줬어야 했는데, 하면서 아쉬워한다. 지금의 나는 아무것도 없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그런 생각이 드는 찰나 나는 내가 조금 무서워졌다. 사람은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이지 돈이 있고 직장이 있고 집이 있기 때문에 사람인 것이 아니다. 그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존엄보다 쓸모’를 강조하는 사회를 그토록 싫어하면서도 나는 돈과 직장과 집이 없는 나를 부끄러워하고 있다. 돈과 직장과 집이 있는 사람에게서 열등감을 느끼곤 한다. 나 역시 사회의 시선을 체화하고 있는 것이다. 굶어 죽기 싫어서 돈 벌 궁리를 한다기보다는 주변의 시선 때문에 돈 벌 궁리를 한다. 가족들이, 친척들이, 친구들이, 알게 모르게 나를 무시했던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싶은 생각에. 정상적인 사고방식이 아닌 걸 알지만 안다고 해서 단박에 고쳐지는 건 아니다. 사르트르가 말했듯이 지옥은 바로 타인의 시선에 있고 지옥은 내 의지로 벗어나기는 힘든 곳이다.


나는 항상 내 뒤통수 깊은 곳에 ‘제3의 눈’이 뿌리내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눈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나와 함께 자라온 눈이다. 제3의 눈은 두 눈이 보는 것 이상을 본다. 본능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자연스럽고 기민하게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쓴다. 방금 저 사람은 오늘 내가 입은 옷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을까? 방금 내 곁에 따뜻한 향수 냄새를 풍기며 지나간 남자는 나를 매력적인 여성이라고 생각했을까? 이 백화점 직원은 내가 오랜만에 밖에 나온다고 나름대로 꾸민 백수라는 걸 눈치채서 이렇게나 나에게 불친절한 걸까? 남들이 보는 내 얼굴은 얼마나 이상할지 사진을 찍어봐야겠다. 누가 봐도 그다지 예쁘지도 재밌지도 않고 직장도 없이 뒹굴거리는 어정쩡한 나이의 나를 누가 좋아할 사람이 있을까… 제3의 눈은 이렇게 작동한다. 남들이 보면 참 피곤하게 산다고 하겠지만 나는 너무 옛날부터 함께 해온 일이라 피곤한 줄도 모른다. 자동 로그인 시스템과 비슷한 것이다. 자동 로그인을 설정해 놓으면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자동으로 입력되어 로그인되듯이 제3의 눈은 자동으로 온갖 시선을 수집한다.


‘사랑은 좀 빠른가요 / 반했단 말론 모자라 / 나를 좀 더 좀 더 바라봐 보아요 / 스친 시선 한 번에 결국 이 밤을 택하려 해’

가인의 ‘시선’이라는 곡은 단 한 번 마주한 시선에 그와의 밤을 택하겠다고 노래한다. 한 번의 시선만으로 그것이 가능할까. 가능하다고 이 곡은 말한다. 사랑이라고 하기에는 좀 빠를지라도 그저 반했다는 말로는 부족한 감정이 시선 한 번으로도 가능하다고. 나 역시 가능하다고 믿는다. 이러한 경험은 없지만 단언하는 이유는 시선의 강력함을 알기 때문이다. 내 뒤통수에 뿌리내린 ‘제3의 눈’이 또르르 굴리는 눈알 소리가 지금도 머릿속을 가득 울리고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으로 나를 보는 일 말고 오로지 나의 시선으로 나를 인정하는 순간이 과연 올까. 제3의 눈을 찔러 없앨 수 있는 날이 올까. 나는 그 순간이 태초에 인간이 맨몸으로 돌아다니던 그때, 적나라하게 덜렁거리는 살과 수북한 털을 보여주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던 그 순간과 같다고 생각한다. 아직은 너무도 아득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방금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아저씨의 날카로운 눈빛 한 번에도 쪼그라들던 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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