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 일기 - 피부 묘기증을 겪으며 떠오른 상념들
열여덟 언저리 즈음해서 이따금씩 몸이 이유 없이 가렵기 시작했다. 가려운 부분을 벅벅 긁고 나면 긁은 모양 그대로 피부가 붉게 부어올랐고 그 상태는 몇 시간 동안이나 그대로 지속되었다. 피부과에서 진단해 준 이 증상의 이름은 ‘피부 묘기증’이었다. 여전히 간간이 나를 괴롭히는 중인 피부 묘기증의 정의와 설명을 문득 찾아보았다. ‘피부 묘기증은 두드러기의 일종으로, 물리적인 원인에 의한 두드러기로 분류된다. 피부를 어느 정도 이상의 압력을 주어 긁거나 누르면, 그 부위에 국한되어 두드러기와 유사하게 가렵고 붉게 변하면서 부어오른다. 약한 자극에 의해서도 온몸의 피부 어느 곳에서나 발생할 수 있고, 가려워서 긁으면 더욱 심하게 두드러기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피부 묘기증의 원인은 아직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며 완전한 예방 및 근본적인 치료법도 없어 대개 만성적인 경과를 보인다.’ 설명이 띄워진 화면에서 한참을 눈을 떼지 못했다. 설명의 구구절절이 표현하는 것이 묘기증이 아니라 나인 것만 같았다. 바깥의 어떤 자극이, 그것이 비록 아주 약한 자극이라 할지라도, 마음을 긁으면 그 부분이 붉게 부어오른 채 오래도록 없어지지 않는 현상, 그 현상은 원인도 확실치 않고 예방법도 치료법도 없어 만성적이다. 아무리 읽어도 이 설명에서 내가 읽혔다.
초등학교 6학년 시절 내 별명은 딸기였다. 얼굴에 오돌토돌 돋은 좁쌀여드름이 딸기에 박힌 씨와 비슷해 보였고 그로 인해 붉어진 피부는 딸기의 붉은색과 비슷해 보였나 보다. 친구들은 내가 상처받을까 봐 그냥 딸기라고만 부르고 굳이 그 이유를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딱히 상처를 입지는 않았다. 심지어 자기소개 그림 그리기 난에 나는 스스로 딸기를 그려 넣기도 했다. 그것도 씨가 잔뜩 박힌 딸기를. 하지만 어딜 가나 눈치 없는 아이는 꼭 한 명씩 존재하는 법이다. ‘난 네 별명이 왜 딸기인지 알아. 너 얼굴에 여드름 많잖아 ㅋㅋ’ 아무도 시원하게 하지 못했던 말을 그 아이는 시원하게 내뱉었다. 짤막하고 장난기 서린 편지글이었지만 꽤 와닿았었나 보다. 이렇게 세월이 흘렀는데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을 보니. 글을 읽고 6학년의 나는 아마 멈칫했던 것도 같다. 내 약점을 스스로 알고 있는 것과 그 약점을 말로 확인 사살당하는 것은 마음의 동요에 있어서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그날 나는 경험으로 알았다. 그리고 그러한 마음의 동요는 마음속에서 꽤 오래도록 울렁거린다는 것을 나는 이후의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중학교 시절, 선생님의 주도하에 반의 모든 아이들이 돌아가며 서로에게 롤링페이퍼를 썼다. 내게 할 말이 많이 없었던 아이들이 애써 말을 늘려 놓은 흔적이 역력한 글들을 보면서도 별 감흥이 없었던 나는 한 아이의 글에서 멈칫했다. ‘여드름에는 크레오신티가 좋대.’ 아, 아까 그 애들이 좋은 말 쓰라니까 왜 애를 까냐면서 낄낄대던 게 이 글 때문이었구나. 여전히 별 감흥 없는 표정으로 롤링페이퍼를 반의 반 크기로 접어 가방에 넣던 나의 머릿속은 ‘크레오신티’라는 여드름 약으로 가득 찼다. 그리고 며칠 뒤 나는 결국 그 약을 손에 얻었다. 알코올 냄새가 나는 투명하고 묽은 용액의 그것은 여드름이 난 부분에 가볍게 톡톡 두드려 쓰는 것이었다. 여드름엔 톡톡-이라며 발랄하게 말하던 광고 속 목소리를 기억하며 아침저녁으로 그 약을 톡톡 두드렸다. 그러나 꽤 시간이 지나도록 효과는 전무했고 거울 속 내 얼굴은 여전히 좁쌀여드름으로 가득히 붉어진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나는 언젠가부터 그 약을 톡톡 두드려 쓰지 않고 얼굴에 쏟아붓듯이 했다. 얼굴은 용액으로 번들거렸고 불쾌한 알코올 향이 코를 찔렀고 용액이 흐르지 않도록 고개를 뒤로 젖히자 용액은 귀 안으로 들이 찼다. 용액이 마를 때까지 나는 고개를 젖히고 눈을 감은 채 가만히 서있었다. 그렇게 깨끗하지 못한 피부는 나의 콤플렉스가 되었다.
몇 살 때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충분히 어렸던 한 시절에 집 가까이에 있는 슈퍼마켓으로 우유 심부름을 갔던 나는 그날따라 손이 야무지지 못했다. 우유가 담긴 봉투를 한 번에 건네받지 못했고 거스름돈으로 주신 동전들을 요란하게 바닥에 흘려서 줍느라 시간이 좀 걸렸다. 그런 나를 보고 슈퍼마켓 아저씨가 약간 짜증 난 듯이 말했다. “애가 와 이래 엉성하노.” 당시의 나에게 충격적이었던 그 말이 긁고 간 자리는 여전히 붉게 부어올라있다. 그 말은 여전히 나에게 유효하게 작용한다.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능숙하지 못하고 버벅댈 때, 다른 사람들은 쉽게 쉽게 처리하는 과제들이 나는 너무도 어려워서 하루 종일 붙잡고 끙끙댈 때, 그리고 그 결과는 또 어설픈 모양새일 때, 도대체 여태껏 사는 동안 해 놓은 게 아무것도 없고 아는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을 체감할 때, 여전히 모든 것에 너무 서투른 나를 마주할 때, 나는 슈퍼마켓 아저씨의 말이 떠오른다. 심지어 그 말이 어쩌면 나라는 사람을 가장 잘 파악한 말일지도 모른다며 그의 통찰력에 차라리 박수를 친다. 이렇게나 말이 주는 상처를 없애지 못하고 꾸역꾸역 간직하는 나다. 심지어 이렇게 그 상처가 타당한 것일지도 모른다고까지 생각할 때가 있다.
깨끗하지 못한 얼굴 피부와 모든 것에 엉성한 나의 작태는 나의 오랜 콤플렉스다. 이 둘이 나의 오랜 콤플렉스가 된 데에는 나의 ‘묘기증적’ 성격이 큰 몫을 했다. 주변에서 가볍게 던진 말들을 나는 너무 무겁게 받아들여서 그것을 상처화했다. 붉고 오래가는 두드러기로 만들었다. 이 두드러기는 치료법도 없어서 내내 홀로 고통받았을 뿐이었다. 그냥 좀 긁은 건데 이렇게까지 부어오를 일이니, 뭐가 문제니, 라며 여상하게 나를 다그치고 있던 어느 날 나는 그런 내가 좀 무서워졌다. 어쨌든 긁은 사람이 가해자고 긁힌 사람이 피해자인데 나는 자꾸 피해자 탓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 피해자가 다름 아닌 나임에도 불구하고. 묘기증에 대한 설명에는 분명히 이렇게 적혀있다. 묘기증은 ‘물리적인 원인에 의한 두드러기’라고. 이 말은 곧 묘기증은 외부의 어떤 물질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지 내부에 그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붉게 부어오르는 상처와 그 상처가 수반하는 아픔은 내가 연약한 탓이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자꾸 내 탓을 하고 있었다. 그제야 나는 나의 나무람의 방향이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 조금 알게 되었다.
내 나무람의 방향이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 알게 된 것과는 별개로 나의 묘기증은 멈추지 않는다. 앞서 밝혔듯 묘기증은 만성적인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남이 주는 작은 자극에도 민감하게 부풀어 오른 채 오래도록 붉게 남아있곤 한다. 세상 모든 말이 무겁고 뜨겁게 느껴진다. 이것의 원인은 없다. 그냥 내 타고난 성정이 그런 것일 뿐이다. 그래서 내 타고난 성정을 탓하게 될 때면 묘기증의 속성을 계속해서 상기시켜야 한다. ‘이것은 내부의 원인에 의한 것이 아니다, 외부의 물리적인 원인에 의한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피곤하게 살아야 하는 내 모습이 한탄스러운 것까지는 어떻게 막을 수가 없다. 또한 아름답지 못한 내 얼굴과 완벽하지 못한 내 행동들을 심히 부끄러워하는 일을 완전히 끝내지는 못하는 것도 어찌할 수는 없다. 그래서 여전히 절망스럽지만 그래도 이제는 조금이나마 남 탓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을 긍정하려 한다. 왜 이렇게 태어나선, 같은 말은 이제 좀 덜 하게 되었다는 점을 긍정하려 한다. 사실 이런 거라도 긍정하지 않으면 이 글이 슬픈 결말로 끝맺음할 것 같아서 애써 그렇게 긍정하려는 것도 있다. 그렇지만 긍정이 또 다른 긍정을 낳을지도 모른다며 또 긍정해보려 노력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