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 일기 - 변명뿐인 이야기
누군가에게 학창 시절이란 천진난만함과 아름다움과 향수로 가득 차 있는 것이어서 한 번쯤 돌아가고 싶은 때로 남아 있을지 모르지만 나는 아니다. 특히 중학교 시절이 그러하다. 나의 중학교 시절은 곁눈질과 자기혐오와 결핍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언제나 예쁜 아이들의 예쁜 종아리와 말끔한 피부와 부드러운 머릿결에 주눅 들어 여드름으로 붉은 거울 속 내 얼굴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했다. 유명 브랜드의 신발들로 가득 찬 신발장에서 유일한 보세 신발이었던 나의 신발이 무시당하는 장면을 우연히 마주했던 나는 그들을 미워하지 않고 되려 나를 미워했다.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는 몇몇 친구들과의 관계가 끊어질까 봐 전전긍긍하며 그들의 의견에 내 모든 것을 맞추었다. 사실 관계의 끊어짐을 두려워한 것이 아니라 교실에 혼자 남게 되는 것을 두려워했던 것이었다. 서로 함께하며 시끌시끌한 쉬는 시간에 덩그러니 남게 될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이들과의 진정한 관계를 바란 적은 없다. 어차피 이들도 뒤에서 나의 못난 사복 의상을 욕하고 있었음을 알고 있었기에. 상처받는 일과 스스로를 미워하는 일에 익숙해진 채 3학년이 되었을 때, 그 아이를 만났다. 그 아이는 첫 만남에도 이상하리만치 편안해서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 그 아이는 헤실헤실 웃는 눈에 나를 따뜻하게 담아주었다. 나는 자연스레 그 아이와 가까워졌다.
그 아이는 잘 살고 있을까. 잘 살고 있어야 한다. 나랑은 비교도 안 되게. 그 아이는 내가 그 당시까지 만났던 사람들 중 가장 좋은 사람이었다. 여전히 좋은 사람일 것이다. 나랑은 비교도 안 되게. 그 아이는 난생처음으로 나라는 사람을 제 바운더리 안으로 깊숙이 넣어준 사람이었다. 처음으로 상처 아닌 것만을 주는 친구였다. 그리하여 나는 나 자신을 미워하는 일이 줄어들었다. 그런데 나는 그 아이와 함께하면서도 그 아이를 알게 모르게 조금씩 밀어냈다. 궁색한 변명을 해보자면 그때의 나는 누군가와 깊게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 너무 부담스러웠다. 한 번도 그 정도의 우정을, 애정을, 받아 본 기억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유야 어쨌든 이기적이었던 나는 그저 학교에서 같이 밥을 먹을 사람, 쉬는 시간을 채워줄 사람 정도가 필요했을 뿐이었다. 학교 바깥에서까지 이어지는 관계는 부담스러웠다. 학교가 파하고 같이 독서실에 가는 일, 매일같이 연락을 주고받는 일, 가끔 주말에 맛있는 것을 먹으러 돌아다니는 일이 그렇게도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너랑은 오래 볼 것 같은 느낌이 들어’라고 말하는 그 아이의 편지를 보고 마냥 기쁘지 못했다. 이 아이는 나를 언제까지 볼 셈인 거지, 그런 의아함이 더 컸고 알게 모르게 졸업 후 그 아이와의 끝을 생각하는 내 마음이 뜨끔거렸다. 그 아이에게 너무도 고마워하면서도, 그 아이와 있을 때 가장 편안함을 느끼면서도 그 아이를 조금씩 피했다. 복에 겨운 줄도 모른 채. 결국 졸업 후에 내가 일방적으로 연락을 피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낯선 환경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여 우왕좌왕하던 차였고 죽어도 가기 싫은 교회를 피해 학교 운동장을 방황하던 차였다. 여전히 그 아이의 연락을 피하고 또 피하고 있었던 나는 어느 날 갑자기 그 아이에게 용기를 내어 전화를 걸었다. 연결음이 얼마 가지 않아 그 아이가 전화를 받았다. 왜인지 자꾸 눈물이 흘렀다. 죄책감인지 반가움인지 아니면 그냥 그 당시 나의 상황과 관련된 서러움인지 모를 눈물이 자꾸 흘렀다. 내가 다니는 고등학교에 찾아갈까 하는 생각까지 했었다고 말하는 그 아이의 목소리에는 그러나 따뜻함 뿐이었다. 원망을 해도 모자랄 판이었는데도. 눈물이 더 차올랐다. 이 눈물의 정체는 죄책감이자 반가움이자 서러움이었다. 서러울 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면 응석 부리듯이 괜히 더 서러워지는 법이다. 그러므로 이 눈물은 내가 이 아이를 생각보다도 더 많이 좋아하고 편안하게 느낀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애초에 내가 전화를 건 것도 외로움 가운데 그 아이의 목소리가 그리웠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당시의 나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그저 눈물만 흘리고 있었을 뿐이었다. 몰랐으니 이후 한동안 다시 이어졌던 연락을 또다시 피한 것이리라. 같이 수학 학원에 다니자는 메시지를 마지막으로 확인하고 나는 또다시 부담감을 느꼈다. 그놈의 복에 겨운 부담감이 뭐라고 나는 또 연락을 피했다. 그리고 얼마 뒤 그 아이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너도 참 그렇다, 등대야.’ 나는 그마저도 답장하지 않았고 그 이후는 없었다.
지금이었다면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라는 하나마나인 변명을 묻어버린다. 그때의 내가 너무 어렸다, 인연의 소중함을 몰랐다, 애정을 주고받는 방법을 몰랐다, 아니 사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라 그렇다,라고 불쌍하게 포장하고 싶지 않다. 그 아이가 받았을 상처를 생각하면 그래서는 안 된다. 그에 반해 내가 그 아이에게 받은 거라곤 아름다운 것들 뿐이다. 내가 난생처음으로 장래희망이라는 것을 갖게 된 건 순전히 그 아이 덕분이었다. 나의 글쓰기 솜씨를 이야기하면서 작가 쪽은 어떻냐고 넌지시 말해주었던 것이 그 아이였다. 그 말 한마디에 내 첫 꿈이자 마지막 꿈이 시작된 것이었다. 작가란 여전히 나의 이루지 못할, 그래서 소중한 꿈이 되어 있다. 그리고 그 아이는 나에게 많은 것을 공유했다. 아픈 가족사도, 자신의 꿈도, 자신의 일상도. 나중에 커서 나는 꼭 코디네이터가 되고 너는 꼭 작가가 되어서 둘이 같이 방송국 근처 국밥집에서 국밥을 먹자면서 미래까지 나누었다. 반면에 나는 그 아이에게 아무것도 공유하지 않았다. 나를 이야기했던 적이 없었다. 그 아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좋아했다. 내가 착한 사람이라면서, 남의 말을 잘 듣는 사람이라면서. 내 속도 모르고 과분한 애정을 주었다. 나는 그런 애정에게서 등을 돌리다 못해 비수를 꽂았다. 일 년이 채 못 되는 인연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따금씩 죄책감이 찾아온다. 그것은 그 아이가 받았을 상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가끔 신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너무 아플 때면 이건 그 아이가 나에게 내리는 벌이라고 생각해서 달게 고통받으려 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아파도 괜찮았다. 더 아파도 될 것 같았다. 불면으로 고통받을 때면 이건 그 아이가 내 잠을 들고 가서 잘 자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한참을 못 자도 괜찮았다. 그런 식으로 그 아이를 이용했다. 그러나 그 아이는 나를 완전히 잊었을 것이고 그래야 마땅하다. 아름다운 사람들 사이에서 아름답게 살고 있을 것이다. 그래야만 한다. 언젠가 우연히 마주치더라도 내 털끝 하나 기억하지 못해야 한다. 그래야만 한다. 그 아이의 인생에 나라는 오점을 남겨두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너의 아름다움만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데 너에게는 추한 모습을 남겨 두어서 미안하다. 미안하다는 말이 너무 쉽게 나오는 것도 미안하다. 미안하다는 말로는 너무 부족해서 미안하다. 이후에 만나게 된 인연에게 너에게 저질렀던 잘못을 반복하지 않는 나의 모습마저 미안하다. 너를 연습 삼은 것 같아서 미안하다. 고백이란 아무리 고통스러운 고백이라 해도 허영심에서 비롯된 행위일 때가 많다는 진리에 따라 나의 이 고백도 그저 나의 허영심에 의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글을 쓰는 건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내가 부끄러워야 할 것 같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