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널 사랑할 수밖에 없는 여러 가지 이유

내 친구 니안에 대한 애정 어린 기록

by 권등대

니안에 관한 첫 번째 기억은 6년 전 초봄에 있다. 겨울 공기가 채 가시지 않아 쌀쌀한 와중에 하늘도 흐린 날이었다. 캠퍼스 바닥 위, 낯선 스무 살들 속에 멀뚱히 섞여 있던 스무 살의 나는 어색하게 미소만 짓고 있었을 것이다. 오티 내내 니트를 거꾸로 입고 있었다는 걸 깨닫고 급히 화장실에서 바르게 갈아입고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던 그때 지금 내 앞머리는 괜찮은지, 립은 괜찮은지 따위가 더욱 신경 쓰이고 있었을 것이다. 어색한 미소를 띠면서 한 귀로 들어와 한 귀로 빠져나가는 낯선 스무 살들의 목소리에 애써 집중하다 지친 나는 잠시 고개를 돌렸다. 검게 마른나무들이 듬성듬성 자리한 캠퍼스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던 그때 니안을 처음 보았다. 니안은 회색 빛으로 워싱된 재킷을 입고 있었다. 무엇보다 눈에 띄었던 것은 단정한 숏컷 머리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놀랐던 점은 내가 여태껏 봤던 여성들 중에 숏컷이 가장 잘 어울리는 여성이라는 점이었다. 겨우 19년 하고 3개월을 살았던 그 시기의 나는 그렇게 확신했다. 그리고 곧 니안을 한 마디로 정의했다. 저 애 참 예쁘다. 곧이어 어색한 학식 시간이 이어졌고 어쩌다 한 번씩 내 시야에 들어오던 니안은 한 스무 살과 마주 앉아 천천히 이야기를 나누면서 국을 떠먹고 있었고 그 모습마저 예쁘다고 생각했다.


니안과 나는 같이 화내고 같이 웃는다. 그래서 니안과 만나면 ‘그러니까’와 ‘내 말이’에 도돌임표가 걸린다. 그래서 니안을 만나는 날이면 절대 못 부는 휘파람도 휘휘 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니안의 글씨는 전체적인 형상이 모서리가 둥근 네모를 닮았다. 니안은 말투가 오물오물하고 둥글둥글하다. 니안은 길고 동그란 영양제에 대해서 잘 안다. 니안은 동글동글한 청포도를 가장 좋아한다. 니안은 뒤통수와 볼살이 동글동글하다. 언젠가 니안이 술에 취해 헤실헤실 웃으며 젓가락을 입에 물고 죽어도 놓지 않던 밤, 니안의 볼이 동그랗다고 생각했다. 어, 저거 뭐야, 하고 시선을 돌려 겨우 젓가락을 빼냈던 그때를 생각하면 여전히 재밌다. 술 얘기를 하니 문득 내 술버릇은 뭐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아니지만 한때 나의 술버릇은 주변 인물들의 이름을 대면서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자꾸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그 이름들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이름이 니안이었다.


니안은 밥을 아주 천천히 조용하게 먹는다. 국자로 음식을 덜어가는 일도, 면발을 들이켜는 일도 느릿느릿하다. 이러한 니안의 식사 버릇은 니안의 성격과 똑 닮았다. 니안은 호들갑을 떨지 않는다. 뭐든지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호들갑 떨지 않는 것은 니안만의 위로법이기도 하다. 그녀의 위로는 내가 겪은 일이 인생에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도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한창 힘든 시기에 있었을 때 니안은 그렇게도 쓰기 힘들어하는 편지를 두 장이나 써서 나에게 넌지시 건네었다. 니안은 내가 어른스럽고 가볍지 않고 잘난 체하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로 내가 좋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더 이상 어른스럽지 않고 가볍고 잘난 체를 한다고 해도 그대로 좋아할 거라고 덧붙였다. 이미 좋아진 걸 어떡하냐고. 내가 어떤 모습이든지, 심지어 망가진 모습이어도 나를 좋아할 거라는 말은 내가 정말 듣고 싶은 말이었다. 그래서 그날 하루 종일 기뻤지만 와중에 나에게 너무 과분한 말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뭐라고. 난 사실 집으로 오는 지하철에서 갑자기 욱하는 마음에 네 편지를 지하철에 버리고 싶다고 생각한 사람인데. 이런 나를 알고도 너는 나를 좋아할 수 있을까. 아닐 것 같지만 니안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좋아해 줬으면 하는 욕심을 잠깐 부렸다. 니안은 욕심나는 사람이다.


니안은 끊고 싶은 관계가 있어도 잘 끊지 못한다. 그 관계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관계를 끊지 못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연을 끊는 것이 힘들다는 이유였다. 이제와 고백하건대 나는 나 스스로 매몰차게 끊은 인연이 있다. 그 친구가 나쁜 사람이어서도, 잘못을 저질러서도 아니었다. 그 친구는 내가 그 시기까지 살면서 만났던 사람들 중에 가장 좋은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인연을 끊었던 이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귀찮아서였다. 그래 놓고 이 일로 스스로 고통받을 때가 있다. 난 사실 정말 나쁜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히려 나는 니안을 이해한다. 하지만 니안은 이런 나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악은 선을 알지만 선은 악을 모른다고 카프카가 그랬나. 그래서 나는 ‘끼리끼리’라는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때가 있다. 내가 자주 하는 생각 중에 하나는 ‘도대체 왜 내 주위엔 좋은 사람이 많을까’라는 제목의 생각이다. 네가 좋은 사람이니까 주위에 좋은 사람이 모이는 것이라는 말을, 나는 의심할 줄 밖에 모른다. 그래서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악은 선을 알지만 선은 악을 모른다. 너라는 선은 악을 모르니 나라는 악도 알아보지 못할 테고 그래서 내 곁에 머무른다. 알았으면 도망갔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결론을 내리면 혹시나 이 글을 볼 니안이 마음 아파할 테니 이런 생각은 되도록 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야겠다.

뜬금없고 재미없는 내 이야기로 잠깐 길이 샜다. 다시 니안의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니안은 언제나 살아있었다. 그럼 죽어있었을까. 당연한 얘기지만 그냥 니안을 보면 참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왜인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그런데 요즘 따라 또 왜인지 그런 느낌이 많이 적어졌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쯤 니안이 나에게 정신과 병원비를 물어왔다. 그날 저녁에는 엄마가 해준 닭볶음탕을 먹었는데 입에 붙지를 않았다. 참고로 엄마표 닭볶음탕은 내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먹을 음식 3위 안에 드는 음식이다. 니안에게는 여름이라서 입맛이 없다고 했다. - 이 정도가 니안과 관련하여 하고 싶었던 말들이다. 그러고 보니 회색빛 재킷의 니안과 구체적으로 어떻게 가까워졌는지에 대한 과정은 쓰지 않았다. 사실 그때의 기억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그것은 오늘 먹었던 점심 밥상이 2주 뒤면 기억나지 않는 것과 같은 원리가 아닌가 싶다. 니안과의 가까워짐은 그만큼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었나 보다. 또한 이 글에는 니안에 대한 오역이 많을 수도 있다.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나는 니안이 아니니까. 그리고 니안은 사람이니까. 원래 사람은 어떠한 글로도 말로도 정의될 수 없는 존재인 법이다. 다만 니안이라는 사람에 대한 나의 오역은 오직 나의 애정에서 비롯된 것임을 밝힌다. 나의 눈에 비친 니안은 이렇게 아름답다는 것이 이 글의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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