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 엄마를 미워해

내 평생의 애증의 대상인 당신

by 권등대

우리 엄마를 한 단어로 정의하면 ‘불안’ 일 것이다. 우리 엄마는 보통의 사람들에 비해 큰 폭의 불안을 안고 사는 사람이다. 특히 소리에 예민한 엄마는 아주 오래전부터 사이렌 소리, 헬리콥터나 비행기가 날아가는 소리, 안내방송 소리 등에 지나치게 큰 반응을 보여왔다. 특히 엄마는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면 그 출처가 어디인지 정확히 알고 난 뒤에야 조금 진정할 수 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사이렌 소리를 효과음으로 사용할 때마저 크게 놀라면서 왜 저런 소리를 사용하느냐며 툴툴댄다. 언젠가부터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면 나 역시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엄마가 불안 해할 텐데, 하는 무의식적인 생각 때문이다. 엄마는 소리에만 예민한 것이 아니다. 엄마는 전쟁과 자연재해에 대한 막연한 불안도 안고 산다. 북한과 관련된 뉴스를 극도로 무서워하는데 들릴 듯 말듯한 크기로 북한 관련 뉴스를 흘려보내는 택시 라디오 소리에도 양 귀를 틀어막곤 했다. 아주 미약한 지진에도 화장실 구석이나 현관에 쭈그리고 앉아 몇 시간 동안이나 불안에 떨곤 했다. 천둥번개가 치는 날은 물론이고 바람이 조금 많이 부는 날도 마찬가지다. 또한 집에 홀로 있는 일에 익숙하지 못하고 아무리 이른 저녁이라도 해가 없으면 절대 혼자 걷지 못한다. 내가 옆에 있어도 어두운 거리가 너무 무섭다며 얼른 집으로 들어가자고 보채기도 한다.


엄마의 불안은 나에게도 어김없이 적용된다. 그래서 나는 평소와 조금이라도 다른 모습을 보일 수가 없다. 그러면 곧바로 엄마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찾아오기 때문이다. 보통은 내가 밤에 화장실을 한 번 가는데 어느 날 밤은 두 번을 갔었다. 다음날 아침, 엄마는 왜 어젯밤에는 화장실을 두 번이나 갔느냐고 걱정스럽게 물었다. 얼마 전엔 주무시다가 갑자기 내 방으로 와서 탁자에 있는 생리통 약을 가리키며 이 약은 무슨 약이냐고 물었다. 아침에 갓 일어난 탓에 목소리가 가라앉아 있으면 오늘 기분이 안 좋으냐고 또 걱정하신다. 본래 걱정이 많은 성격인 데다가 특정한 일까지 있었으니 걱정이 더 많이 되는 건 알겠지만 그 걱정이 가끔 나를 숨 막히게 만드는 때가 있다. 엄마 입으로 그랬었다. 사람이 어떻게 내내 기분이 좋을 수가 있냐고. 어느 날은 기분이 좋다가도 어느 날은 나쁘다가도 하는 거라고. 그러나 엄마는 그 이야기를 나에게는 적용하지 못한다. 엄마는 나에게 평생 완벽을 강요한 적이 없다. 시험 성적을 몇 점 맞아라, 어느 대학에 가라, 무조건 1등을 해라, 그런 말은 일절 한 적이 없다. 나에게 자율을 주는 분이었다. 하지만 엄마는 다른 의미에서 완벽주의자가 맞다. 내가 조금이라도 불행한 모습을 보지 못하는 류의 완벽주의자. 엄마는 아주 티끌만 한 불행도 용납하지 못하고 끙끙 불안해한다. 그러므로 불행의 최댓값인 지옥에 간다는 말이 무서워 꼬박꼬박 다니는 교회를 나는 그만 가겠다고 했을 때 얼마나 불안했을지.


얼마나 불안했을지, 같은 생각은 이제와서야 할 수 있는 생각이다. 당시에는 나의 고통이 너무나 컸기 때문에 엄마의 고통까지 헤아릴 여유가 없었다. 학창 시절의 매주 일요일과 교회를 그만두었던 열아홉의 끝자락에서 스물의 초반은 나의 삶에 있어서 유독 어두웠던 시간에 속하는데 그 시간을 주름잡았던 사람이 다름 아닌 엄마라는 점에서 엄마에 대한 나의 애증은 배가 된다. 신앙도 없는 데다가 교회 사람들로부터 은근히 따돌림을 받으면서도 꾸역꾸역 교회에 가야 했던 이유는 엄마의 강제 때문이었고 거식증과 스트레스와 침묵의 콜라보는 내가 교회를 그만두겠다고 선언한 이후 나타난 증상이었다. 열아홉의 끝자락에서 스물의 초반, 가장 설레어야 할 그 시기에 나는 선언을 했고 선언 이후 바싹 말라만 갔다. 엄마를 마주하기 힘들어 피하던 식사, 더 나아가 눈조차 마주치기 힘들어 자꾸만 방으로만 숨던 내 모습만이 선명한 그 시기, 우리 사이를 가득 채운 건 침묵뿐이었다. 그 침묵은 뜻밖에도 약 5년간 지속되었고 집은 나에게 도저히 집이 아니었다. 내 방은 따로 떼어진 섬이었다. 침묵이 깨어지고 집이 ‘우리’ 집이 되고 섬과 같았던 내 방이 다른 방들과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직장을 그만두고 우울과 불안의 병을 얻은 이후였다.


병을 얻은 이후 문 밖에 재앙이 와있는 것 같은 기분, 문을 열고 한 발짝 나가면 다 내려앉을 것 같은 기분이 계속되었다. 눈을 뜨면 갑자기 나의 일상이 다 무너져있고 평소와 같은 아침을 더 이상 맞을 수 없게 되어있을 것 같은 느낌 같은 것. 사람이 걸릴 수 있는 병은 수천수만 가지가 넘고 매일 오르내리는 계단에서 발 한 번 삐끗하면, 매일 오가던 도로에서 핸들 한 번 잘못 꺾으면, 창문 밖으로 딱 한 발짝만 더 내딛으면 모든 것은 한순간에 끝난다는 것을 자꾸만 새삼스레 깨달았다. 불안은 어떻게 해야 덜 찾아올까, 생각하지만 내 의지로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 언제나 속수무책이다. 이때 갑자기 엄마의 불안도 그러하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엄마의 불안에 보통 짜증으로 대답해왔다. 답답할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내가 이유 없이 찾아오는 불안을 겪어보니 사실 제일 답답한 건 엄마 당신일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불안은 내 의지로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네가 내 불안만은 닮지 않기를 바랐는데…’ 응급실을 갔다 와 십여 년 만에 엄마와 함께 잠들었던 그날, 엄마가 자책하듯 뱉은 말이었다. 내가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이유 중에 하나는 나의 부정적인 면을 아이가 그대로 닮는 것이 싫어서다. 절대 닮지 않았으면 하는 모습을 아이가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장면을 보는 건 상상만으로도 절망스럽다. 나는 상상만으로도 절망스러운 일을 직접 겪은 엄마는 얼마만큼이나 절망했을까. 엄마의 불안을 조금씩 이해해 가는 나였다.


“너무 열심히 하면 무서워져.” 공부든, 글쓰기든, 사랑이든, 그 무엇이든 너무 열심히 하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운 생각이 든다고 원영은 말했다.

(임솔아, ‘초파리 돌보기’ 작가노트 43쪽)​

그러던 중 읽었던 작품에서의 한 대목에서 엄마 생각이 많이 났다. 우리 엄마도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다. 다만 원영보다 걱정이 훨씬 더 잦은 사람이다. 걱정을 넘어 불안을 안고 사는 사람이다. 아까도 말했듯이 그런 엄마가 답답할 때가 종종 있다. 답답함을 넘어 화가 날 때도 있다. 그런데 이 작품과 작가 노트를 읽고 나는 문득 엄마가 삶을 너무 사랑해서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의 불안은 거기서 시작된 게 아닐까. 유독 삶을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라 그 반대되는 죽음을 유독 두려워하는 것이고 그래서 엄마에게는 불안과 걱정이 유독 많은 것이 아닐까. 그 순간 엄마의 불안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엄마는 왜 그렇게 삶을 사랑할까,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내가 할 수 없지만 엄마의 삶에 내가 있다는 점이 그 답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칠 것임은 안다.


오늘은 엄마랑 공원을 걷고 카페에 갔다가 집에 와서 같이 티비를 보며 웃다가 돈가스를 먹었다. 엄마표 돈가스는 언제 먹어도 맛있다. 이 돈가스를 더 이상 못 먹게 되는 날이 오겠지, 이 밥상을 그리워하게 될 날이 언젠가 반드시 오겠지, 라는 생각이 갑작스러운 생각에 입맛이 떨어질 뻔했지만 어쨌든 맛있게 먹었다. 기어코 엄마 접시에 있는 돈가스를 하나 더 집어 먹었다. 누군가는 엄마란 세상에서 가장 큰 단어이자 존재라고 정의한다. 나에게 엄마란 가장 모순적인 존재다. 이렇게 벌써 그리워하는 존재이자 결코 온 마음을 터놓을 수 없는 존재이자 원망스러운 존재이자 내 가장 헐벗은 몸이 기댈 수 있는 존재이다. 작년과 올해, 나는 엄마와 많이 친해지는 중이지만 엄마에 대한 양가감정은 어떻게 할 수 없다. 과거는 과거일 뿐, 이라는 말을 나는 믿지 않는다. 현재란 과거의 퇴적물이다. 그래서 엄마와의 지난한 과거사를 다 털어버릴 수는 없다. 하지만 엄마에 대한 오래되고 당연한 사랑도 어찌할 수는 없다. 어렸을 때는 너무 커서 눈에 다 안 담기던 엄마가 이제는 너무 작아져 속속들이 다 보인다는 게, 세월의 흔적과 엄마의 약점이 너무 잘 보인다는 게 조금 슬픈 것도 어찌할 수 없다. 그리하여 엄마는 내 유일한 평생의 애증의 대상이다. 엄마를 사랑하지만 미워한다고 말해야 할지, 미워하지만 사랑한다고 말해야 할지 아직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것도 사랑일 것이다. 엄마를 사랑하는 일은 아직 조금 힘들지만 세상에 쉬운 사랑이란 없는 법이니까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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