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참 별나고 이상한 사이야

드라마 ‘한니발’ 속 두 사람을 보며

by 권등대

1. in somebody’s shoes


FBI 요원과 식인 살인마. 신분만 놓고 보면 극과 극에 서 있는 둘이지만 둘을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있다. 바로 윌의 뛰어난 공감능력이다. 윌은 범죄 현장을 보면 머릿속에서 사건을 벌인 살인자가 될 수 있다. 살인자가 되어 살인의 순간을 몸소 체험하고 그를 통해 살인자의 심리와 수법 등을 이해하게 된다. 그 경험은 실제처럼 생생하다. 한니발은 그런 윌에게 끌린다. 윌은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한니발의 마음을 완벽하게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또한 윌은 범죄 현장에서 공감능력을 발휘하고 난 후면 매번 고통에 시달린다. 자신이 살인을 저지른 것만 같은 죄책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그 죄책감의 근본적 원인은 따로 있는데 그것은 윌이 공감의 순간에 저도 모르게 살인을 즐긴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윌은 약간의 광기를 안고 사는 사람이고 그것을 부단히 부정하고 수치스러워하는 사람이다. 한니발은 윌의 안에 있는 그 광기를 알아보았고 그 점에 역시 끌린다. 자신의 안에도 있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한니발은 윌의 안에 있는 광기의 불씨가 활활 불타오르도록 만들고자 한다. 윌은 한니발의 속셈을 뒤늦게 알아채고 그를 경멸하게 되지만 어째서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경멸의 한 편에 긍정적인 감정이 싹튼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아이러니하게도 한니발은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 자신조차 수치스럽게 여기는 자신의 내면(광기)을 유일하게 이해해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런 둘을 보면 ‘in somebody’s shoes’라는 영어 관용 표현이 떠오른다. ‘~의 입장이 되어’라는 의미를 ‘~의 신발을 신어 보다’라고 표현한 관용어인데 진정한 공감이란 상대방의 신발을 신는 것, 그를 통해 상대방의 시선과 같은 시선을 갖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이 표현이 이 둘에게 참 알맞은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윌은 직접 그 사람이 되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보통의 공감을 뛰어넘은 영역의 공감이 가능한 사람이다. 그리하여 윌은 한니발의 남모를 서늘한 신발을 신어 볼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 된다. 한니발은 저 자신이 살인의 기쁨을 누리는 자이므로 윌이 공감 능력을 발휘하는 도중에 느끼는 살인의 기쁨에 누구보다도 공감할 수 있다. 한니발은 윌의 남모를 뜨거운 신발을 신을 수 있다. 공감의 힘이란 원래도 대단한 것인데 둘은 말 그대로 서로의 신발을 신을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기에 그 힘은 더욱 극대화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둘은 서로의 유일한 상대가 되어버린다.



2. Can’t live with him, Can’t live without him


한니발과 윌은 서로를 긍정하는 동시에 서로를 죽이려 든다. 윌은 자꾸 한니발과 자신의 경계가 모호해진다고, 한니발의 죄가 곧 자신의 죄인 것만 같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한니발을 죽이려 한다. 자꾸만 자신의 몸을 비집고 들어오는 한니발 때문에 자신을 잃을 것 같기 때문이다. 이대로라면 정말 자신이 한니발이 되어버릴까 봐 두려운 것이다. 그리하여 생각해낸 것이 ‘한니발 밀어내기’이고 이는 곧 ‘한니발 죽이기’가 되어버린다. 한편 한니발은 특히나 일생토록 누군가에게 휘둘려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사람을 죽이고 요리하고 먹으면서도 아무런 감정의 동요가 없으며 오랜 기간 동안 아무렇지도 않게 주변인에게 깨끗한 얼굴만을 보여온 사람이다. 그랬던 한니발의 머릿속은 어느샌가부터 윌로 가득 차 있고 그 깨끗했던 얼굴은 윌로 인해 눈물로 얼룩지기에까지 이른다. 그래서 한니발은 윌을 죽이려 한다. 자신이 아닌 것만 같은 모습으로 자꾸 휘둘리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그러니까 둘은 어느새 자신의 안에 상대방을 깊이 들여버렸고 그런 상대방으로 인해 달라지는 자신의 모습이 버거워 밀어내려 하는 것이다. 살해야 말로 밀어냄의 가장 극단적이고 확실한 방법이므로 둘은 서로를 죽이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러나 둘은 서로를 죽이는 일을 어려워한다. 자신을 잃는 일이 도저히 힘든 일인 만큼 상대방을 잃는 일 역시 도저히 힘든 일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3.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둘은 끝끝내 서로를 죽이지 못한다. 그리고 둘의 사이는 서로가 서로를 파괴하는 사이인 동시에 서로가 서로를 구원하는 사이에 이른다. 결말에 이르면 윌은 위태롭게 붙들어 왔던 도덕성을 내다 버리는 동시에 죄책감과 완전히 작별하고 광기를 받아들이게 된다. 처음으로 머릿속에서의 살인이 아니라 실제의 살인을 벌인 후 달빛 아래 검게 보이는 피를 만끽하면서 아름답다고 말하기에 이른다. 이 도덕성과 죄책감의 파괴와 광기로의 구원은 한니발 덕분이다. 자신이 아닌 누군가를 ‘위한다’는 단어를 몰랐기에 편했고 언제나 죽이기에 바빴던 한니발은 이제 한 사람을 위하여 죽을 수도 있는 사람이 되었다. 자기중심적 세계의 파괴와 애정으로의 구원은 윌 덕분이다. 둘은 어떻게 이렇게 강력한 사이가 될 수 있었는가. 영화 ‘렛미인’의 대사 중 ‘날 초대해 줘, 단 한 번만 내가 되어 줘’라는 대사가 있다. 이 대사에는 간절함이 있는데 그것은 ‘단 한 번만’이라는 단어에서 온다. 진정한 의미로서의 공감은 ‘단 한 번’조차 실현되기 힘듦을 새삼 깨닫게끔 하는 대사다. 그런데 한니발과 윌은 단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이나 서로가 되어 준다. 그런 서로를 보며 속절없이 감동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또한 뱀파이어라는 특수한 정체성 때문에 유독 외로웠던 ‘렛미인’의 이엘리처럼 남몰래 지닌 광기로 인해 남들과는 좀 달랐던 둘 역시 사실 유독 외로웠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상대방의 신발을 신을 줄 아는 서로를 보며 유례없이 무너졌던 것일지도 모른다.



4. 아마도 사랑의 순간들


그래서 이 둘이 나눈 감정은 어떤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참 별나고 이상하지만 어찌 되었든 사랑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사랑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감히 대답하기는 어렵지만-내 나름의 답을 찾아가기 위해 ‘Spectrum Of Love’라는 제목 아래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이야기들을 모아 보고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보통의 공감의 영역을 넘은 공감, 내가 아닌 것만 같은 모습들, 고집해왔던 것과의 작별, 어떤 의미에서의 구원, 이 모든 것의 합을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그리고 자잘하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은 둘의 대사와 행위에서도 사랑이 아닌 것을 느끼기는 힘들었는데 몇몇 상황들만 아래에 옮긴다.


- “I want you to know exactly where I am and where you can always find me.” (당신이 내가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어디서 항상 나를 찾을 수 있는지 알았으면 해요.)

윌로부터 더는 보고 싶지도 만나고 싶지도 않다는 통보를 받은 후, 공개수배 중인 이 식인 살인마가 한 일은 스스로 경찰에 붙잡히는 일이었다. 위 대사는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한니발은 제 발로 감옥에 수감됨으로써 윌에게 자신이 어디에 있을지를 정확히 알려준 것이다. 이것으로 한니발은 영영 한니발을 보지 않겠다던 윌의 발언을 무력화시킨다. 정말로 영영 볼 수 없는 상황은 서로가 서로의 위치를 모를 때다. 그러나 한니발은 윌에게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알림으로써 정말로 영영 볼 수 없는 상황을 차단했다. 또한 이 장면의 로맨틱함은 한니발의 순순한 모습으로 인해 극대화된다. 눈발 날리는 추운 겨울, 손을 머리 뒤로 깍지 낀 채 무릎 꿇고 있는 한니발의 모습은 저를 둘러싼 경찰들을 향한 것이 아니라 윌을 향한 것이다. 한니발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이 올 때까지 항상 같은 자리에서 이렇게 순순히 기다릴게요, 그러니까 언제든 절 보러 와요.’


- 경찰이 한니발을 잡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자 한니발이 경찰로부터 도망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겹쳤을 때, 정의감과 한니발에 대한 끌림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윌은 결정적인 순간에 한니발에게 전화를 걸어 경찰이 찾아오고 있음을 알렸다. 결국 한니발의 편에 선 것이다. 이후 잭이 윌에게 묻는다. 언제 한니발의 편에 서기로 결심하게 되었던 거냐고. 윌은 답한다. 어떤 결심을 하고 그 전화를 걸었던 게 아니라 그냥 걸었을 뿐이고 그의 목소리를 들은 순간 결심하게 되었다고. 그러니까 갈팡질팡하던 윌의 마음은 한니발의 짧은 목소리 한 번에 굳어졌던 것이다. 어쩌면 그보다도 이전에 윌의 무의식은 이미 한니발의 편에 서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윌은 그 급박한 상황에서도 ‘그냥’ 한니발에게 전화를 걸지 않았는가. 심지어 윌은 오늘 밤 같이 떠나자던 한니발의 말에 얼굴을 찌푸리지도, 부정의 대답을 하지도 않았다. 그는 적어도 흔들렸던 것이다.


- “If I saw you everyday forever, Will, I would remember this time.” (윌, 내가 당신을 매일, 평생 보게 된다 해도 이 순간은 꼭 기억할 거예요.)

이탈리아의 한 미술관에 한니발이 앉아 있고, 윌이 그의 옆에 앉는다. 꽤 오랜 시간 끝에 둘이 다시 마주하게 된 장면이다. 그때 한니발이 위와 같이 말한다. 앞으로 윌의 얼굴을 매일 보게 된대도 오늘의 윌의 얼굴은 절대 잊지 않을 거라고 다짐할 만큼 그 순간의 윌이 아름다웠나 보다. 또한 이 대사는 윌에 대한 영원을 약속하는 대사이기도 하다. 윌과 영원히 함께하겠다는 약속이 아니라 윌을 영원히 잊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매일 당신의 얼굴을 볼 수 있어도 오늘의 당신의 얼굴을 잊지 않을 것이라는 말은, 반대로 당신의 얼굴을 볼 수 없게 된 때에도 오늘의 당신의 얼굴을 잊지 않을 거라는 말을 당연히 포함한다. 즉 앞으로 당신을 만날 수 있든 없든 나는 오늘의 당신을 잊지 않을 거라는 말이다. 인간의 유한함을 두 눈으로, 두 손으로 알고 있을 한니발이 할 법한 말은 도무지 아닌 것 같으나 이 대사를 할 때의 한니발의 눈빛을 보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그 순간 한니발의 눈빛은 도저히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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