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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은 담배 연기처럼 매캐하고 의미 없고

영화 ‘저수지의 개들’(쿠엔틴 타란티노, 1996)

by 권등대

(영화 리뷰에는 항상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 리뷰어는 저수지의 개들을 ‘농담으로 시작해서 진담으로 끝나는 이야기’라고 평했다. 대부분의 영화는 오프닝에 힘을 많이 준다.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에 대해 암시하거나 이 영화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보여주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그에 반해 저수지의 개들의 오프닝은 시답잖다. 음식점 테이블 위에서 영화와 전혀 상관없는 저급한 농담들만 오간다. 마돈나 노래에 대한 엉터리 해석과 담배 연기와 팁을 내니 마니 하는 설전뿐이다. 그렇게 영화는 농담처럼 시작된다. 하지만 이는 사실 관객들이 부담 없이 영화 속으로 발 디딜 수 있게 하는 전략이다. 강렬한 오프닝으로 관객을 이야기 속으로 훅 이끄는 영화와는 정반대의 전략인 것이다. 그렇게 이 영화에 가볍게 발 담그고 나면 저도 모르게 발이 점점 깊숙이 빠지게 된다. 그리 특별한 이야기도 아니고 대단한 메시지 같은 것도 없는 영화인데도 불구하고. 그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그 답을 맥베스의 문장에서 찾았다. ‘인생은, 소음과 분노가 가득하지만 아무런 의미도 없는, 백치가 들려주는 이야기.’ 나는 아직까지는, 생은 시끄럽고 비극으로 가득하지만 결국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라 말하는 이 문장이야말로 인생에 대한 가장 아프고 정확한 문장이라 생각하고 이 영화는 이 문장에 충실한 영화다.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갱들이 계획대로 은행에서 보석을 훔치다 갑작스러운 경찰의 출동으로 혼비백산하다가 가까스로 한 창고로 모인다. 경찰이 어떻게 그리 빠르게 출동할 수 있었는가에 대한 의문은 갱들 사이에 경찰 첩자가 숨어 있는 것으로 인함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그래서 이들은 여섯 명의 갱들 중 누가 경찰 첩자인가를 알아내려 한다. 스파이의 정체는 영화의 중후반쯤 밝혀지는데 스파이는 바로 배에 총을 맞아 창고 바닥에 기절해 있던, 그래서 영화가 진행되면서 존재감이 사라지는 중이던 미스터 오렌지다. 오프닝 이후의 첫 장면은 미스터 화이트가 운전하는 차 뒤에서 피범벅이 되어 고통에 몸부림치는 미스터 오렌지의 모습이다. 이 장면은 미스터 오렌지가 스파이임이 밝혀진 후 다시 한번 나오는데 미스터 오렌지가 자신의 배를 쏜 민간인 여성을 순간적으로 쏴 죽인 후 묘한 표정을 짓는 장면 이후에 배치된다. 이를 통해 사실 이때의 미스터 오렌지는 단순히 총상의 고통 때문에 몸부림친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그 여자가 나를 죽이다니”라는 그의 말은 사실 “내가 그 여자를 죽이다니”라는 말이었을 것이다. 경찰인 내가 민간인을 죽이다니. 죄책감이란 몸부림치게 될 만큼 고통스러운 것이다.


미스터 오렌지의 남모를 고통은 이전에도 존재했다. 미스터 오렌지가 보석 훔치기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첫날, 갱들의 차에 타는 장면을 유심히 보면 계속해서 미스터 오렌지는 카메라에 혼자 잡히고 미스터 오렌지를 제외한 나머지 셋은 한 컷에 함께 잡힌다. 카메라 구도에서부터 잠복 경찰인 미스터 오렌지와 갱인 나머지 멤버들 간의 묘한 벽이 느껴진다. 나머지 셋의 농담에 미스터 오렌지는 어색하게 미소만 지어 보인다. 한 번씩 말을 얹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분위기가 묘하게 가라앉는다. 완벽하게 잠복한 미스터 오렌지임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는 벽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렇잖아도 미스터 오렌지는 꽤 외로웠을 것이다. 갱들의 차로 내려가기 전 미스터 오렌지는 담담하게 집을 나서려다가 다시 뒤돌아서서 동전들 사이에 숨어 있던 결혼반지를 꺼내 낀다. 음악 소리도 멈춘 상태라 이 장면은 참 고요하다. 평소에도 혼자이고 잠입 수사라는 특수한 일에도 능수능란했던 그였지만 그 역시 온기가 필요한 한 명의 사람이라는 것이 드러나는 장면이다. 그는 이도 저도 아닌 언더커버의 운명 속에서 더욱 외로웠을 것이다. 이후 집을 나서 차에 올라타는 그를 멀리서 지켜보던 경찰들은 말한다. ‘머리에 지브롤터 만 한 바위가 들어있지 않는 한 위장 근무는 할 짓이 못돼.’ 이는 미스터 오렌지의 비극을 예견하는 말처럼 들린다.


결말에 이르면 창고 안에 미스터 오렌지, 미스터 화이트, 에디, 그리고 조가 모인다. 에디와 조는 미스터 오렌지가 스파이임을 눈치챘고 그래서 조가 미스터 오렌지에게 총을 겨눈다. 그러자 미스터 화이트는 미스터 오렌지가 스파이일 리 없다며 미스터 오렌지를 죽이려는 조를 향해 총을 겨눈다. 그러자 에디는 자신의 아버지인 조를 향해 총을 겨누는 미스터 화이트에게 미쳤냐며 총을 겨눈다.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힌 이 모양새를 정리하면 이렇다. ‘영리함-에디’—‘어리석음-미스터 화이트’—‘애먼 상대-조’—‘범인-미스터 화이트’의 순으로 총을 겨누고 있는 것이다. 미스터 오렌지는 갱들의 계획을 망친 ‘범인’(스파이)이고 에디는 범인을 알아본 ‘영리함’이며 미스터 화이트는 정에 눈이 멀어 범인을 알아보지 못한 채 범인을 감싸면서 ‘애먼 상대’인 조를 향해 총을 겨누는 ‘어리석음’이다. 이들은 결국 동시에 총을 발사했고 그 결과 ‘영리함-에디’과 ‘애먼 상대-조’가 죽는다. 끝끝내 ‘어리석음-미스터 화이트’와 ‘범인-미스터 오렌지’은 살아남은 것이다. 어쩐지 익숙하지 않은가. 우리 생에 문제를 일으키는 범인과 그것에 속수무책인 어리석음만이 우리와 끝끝내 함께하는 모습이.


이후 미스터 오렌지는 미스터 화이트에게 자신의 정체를 고백한다. 이에 미스터 화이트는 신음하며 총을 더듬어 쥐고는 미스터 오렌지의 관자놀이에 겨누고 망설이는데 그때 경찰들이 들이닥친다. 경찰들은 미스터 화이트에게 총을 겨누며 총을 버리라고 외친다. 미스터 화이트는 겨눈 총을 놓지 않은 채 괴로움에 떨며 그들을 쳐다볼 뿐이다. 그 순간 화면은 암전 되고 한 발의 총소리가 들리고는 이야기가 끝난다. 미스터 화이트가 미스터 오렌지를 죽인 것일까, 아니면 총을 내려놓지 않는 미스터 화이트를 경찰이 먼저 쏜 것일까. 그것에 대한 판단은 관객의 몫일 것이나 이러나저러나 비극임은 변하지 않는다. 전자는 정의의 편에 서서 어렵사리 잠입 수사를 벌여온 미스터 오렌지가 결국 죽음에 이르는 결말이고 후자는 ‘어리석음’이 결국 생의 ‘범인’을 죽이지 못하는 결말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포인트는 미스터 핑크의 존재다. 넷이 서로에게 총을 쏠 때 미스터 핑크는 구석에 숨어 있음으로써 목숨을 건졌다. 그리하여 미스터 핑크는 보석을 가지고 창고 밖으로 도망칠 수 있었다. 여기서 미스터 핑크는 이 복잡한 세상을 불현듯 헤쳐나가는 ‘행운’이나 ‘잔머리’일 것이다. 그러나 그가 밖에 대기하고 있던 경찰들에 의해 붙잡혔음을 예상할 수 있는 사이렌 소리가 뒤따라 온다. 작은 ‘행운’이나 ‘잔머리’마저도 쉽게 허락하지 않는 생이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시간적 배경이 내내 한낮인 것처럼 이 영화의 분위기는 그다지 어둡지 않다. 이것은 타란티노만의 마법이 아닐까. 타란티노는 언제나 피의 이야기를 쓰지만 한낮의 햇살을 유지한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은 미스터 블론드의 경찰 고문 장면일 것이다. 그가 라디오를 틀어 ‘Stuck in the middle with you’라는 노래를 흘려보내고 춤을 추며 경찰에게 다가가 잔인한 고문을 벌이는 끔찍한 장면이 묘하게 유쾌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노래 가사와 상황의 절묘함 때문이다. ‘Clowns to the left of me / Jokers to the right, here I am / Stuck in the middle with you (광대는 내 왼쪽에 있고 조커는 내 오른쪽에 있어요, 난 여기 있어요, 당신과 중간에 끼어서)’라는 가사가 반복되는데 이 가사는 고문을 당하는 경찰의 입장과 맞아떨어진다. 경찰의 왼쪽에는 광대(재미로 고문을 하는 미친 미스터 블론드)가 있고 오른쪽에는 조커(잠복 경찰인 미스터 오렌지는 도둑잡기에서의 조커-도둑을 상징한다)가 쓰러져 있다. 불쌍한 이 경찰은 그 사이에 끼어 있다. 게다가 노래는 리듬감 덕에 발랄하다. 타란티노는 이렇게 비극을 향락한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 그가 백치의 자리를 도맡았기 때문이다. 생은 백치의 이야기처럼 ‘소음과 분노가 가득하지만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것을 알고. 이 영화를 가득 채우는 담배연기처럼 매캐하고 의미 없음을 알고. 그리하여 이 영화에는 향락적 비극만이 가득하고 의미 따위는 없다. 그리고 그것이 이 영화의 대체 불가적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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