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바이오쇼크 인피니트’(2013)
‘바이오쇼크 인피니트’는 주인공 ‘부커 드윗’이 ‘엘리자베스 콤스톡’이라는 소녀를 데리고 오면 빚을 청산해주겠다는 빚쟁이의 말에 그녀를 데리고 나오려 고군분투하는 내용이다. 엘리자베스는 한 도시의 탑에 갇혀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도시의 창시자이자 엘리자베스의 아버지인 ‘재커리 콤스톡’의 짓이다. 재커리가 엘리자베스를 가둬놓은 것은 그녀의 특별한 능력을 두려워했기 때문인데 바로 우주와 우주 사이의 ‘균열’을 열 수 있는 능력이다. 그녀는 다른 평행우주를 엿볼 수 있다. 한편 이 게임의 배경이 되는 도시는 ‘콜롬비아’라는 이름의 공중도시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모습의 콜롬비아는 어두운 이면을 가지고 있다. 콜롬비아는 백인-흑인 커플에게 폭력을 가하는 축제 행사를 진행하는 그런 곳이다. 즉 콜롬비아는 인종차별주의, 배타주의, 우월주의에 찌든 도시로 콜롬비아의 아름다운 풍경과 축제를 즐길 수 있는 사람은 백인뿐이다. 흑인과 동양인은 도시의 어두운 구석에서 힘들고 더러운 일을 맡아하며 겨우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백인과 흑인, 동양인이 쓰는 화장실도 따로다. 콜롬비아는 공중도시라는 점에서 매우 상상적이지만 도시에 만연한 문제점들은 매우 현실적이다. 백인과 흑인이 버스 좌석에서도 함께 앉을 수 없었던 실제 역사가 있었던 바, 콜롬비아는 결코 상상 속의 도시가 아니다.
여러 우여곡절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운디드 니 학살 사건’이 언급되는 박물관 전투이다. ‘운디드 니 학살 사건’은 실제 있었던 역사로 1890년, 미국의 운디드 니라는 곳에서 미 제7기병연대가 그곳에 있던 원주민들을 무차별 학살한 사건이다. 하지만 미국은 이 사건을 운디드 니 ‘학살’ 사건이 아니라 운디드 니 ‘전투’라고 공식 명명했고 그 명칭은 아직까지도 고쳐지지 않은 채이며 심지어 미 7기병연대의 군인들은 훈장까지 받은 상태이다. 게임 내 박물관 역시 운디드 니 ‘전투’ 기념관을 만들어 놓고 인디언들을 잔인하고 우스꽝스러운 인물들로 묘사해놓으며 그들을 야만인이라 설명한다. 그리고 부커는 당시 미 7기병연대 소속 군인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혈통이 섞인 백인이었던 탓에 다른 동료 백인들로부터 비웃음을 샀다. 이에 부커는 그 누구보다 잔인하게 원주민을 학살했고 그 절정이 바로 '운디드 니 학살 사건'이었다. 운디드 니 학살 사건은 미국의 잔인한 배타주의, 우월주의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이고 이 게임의 시발점이다.
이후 재커리 콤스톡의 죽음으로 능력을 완전히 되찾은 엘리자베스는 다른 우주를 엿보는 일뿐만 아니라 우주와 우주를 자유롭게 이동하는 일까지 가능해졌으며 전 우주를 꿰뚫는 초월적 존재가 된다. 그녀는 부커에게 진실을 알려주겠다며 그와 ‘문들의 바다’로 향한다. 별처럼 반짝이는 것들은 별이 아니라 문이다. 문 뒤에는 각각의 우주가 있다. 즉 수백 수천만 개의 평행 우주(세계)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 세계들은 서로 다르면서도 어느 정도 비슷하다. 엘리자베스는 이를 ‘상수와 변수’라는 단어로 설명한다. 항상 등대가 있고 부커가 있고 엘리자베스가 있다.(이들은 ‘상수’이다) 거기서 각 세계마다 조금씩 다른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그 상수에서 시작되는 조금씩 다른 이야기들은 ‘변수’에 해당한다) 한 문을 열고 들어간 부커는 강가에서 진행 중인 세례식을 마주한다. 그는 익숙함을 느끼고 자신이 아주 오래전 이곳에 와본 적이 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진실을 기억해낸다. 이전에 밝혔듯 부커는 ‘운디드 니 학살’에 참여한 군인이었다. 그는 그 사건 이후 엄청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렸다. 그래서 자신이 저지른 죄를 씻어내고 속죄하고자 전도사로부터 세례를 받기로 하고 강가로 갔다. 그러나 부커는 끝까지 갈등했다. 세례식 따위로 자신의 끔찍한 죄가 씻길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 때문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우주가 갈라졌다. 그리하여 [우주 1]에는 세례를 받은 부커가, [우주 2]에는 세례식을 거부한 부커가 존재하게 되었다.
먼저 [우주 1]의 부커는 세례를 받고 신실한 종교인이 되었다. 게다가 새로 태어났다며 자신의 이름을 ‘재커리 콤스톡’으로 개명했다. 이어 재커리는 이상한 이유를 대며 자신이 저지른 학살을 합리화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백인은 원래 다른 인종보다 우월하다든가 하는. 이러한 생각의 반복은 가치관으로 자리 잡아버렸고 재커리는 극단적 우월주의자이자 배타주의자가 되었다. 그는 이후 미국 정치계에 진출해 공중도시 콜롬비아를 건설했다. 이때 도시를 공중으로 띄우는 일에 기여한 물리학자가 있었는데 그녀는 우주와 우주 사이의 ‘균열’을 발견했고 균열을 이용해 우주를 넘나들 수 있는 장치까지 고안해냈다. 재커리는 이 장치를 통해 다른 우주를 내다보고 정보를 알아내어 자신을 예언자인 것처럼 꾸며냈다. 사람들은 그의 예언이 맞아가자 그를 선지자라 떠받들기 시작했다. 점점 선지자 행세에 심취하게 된 재커리는 급기야 콜롬비아가 타락한 지상 세계를 불꽃으로 정화시키는 심판자가 될 것이라 믿는다. 그는 긴 시간이 걸릴 이 일을 위해 후계자를 남겨야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재커리는 수없는 균열 노출의 부작용으로 생식 기능이 사라진 상태였다. 그리하여 재커리는 물리학자에게 균열 장치를 이용해 [우주 2]에 있는 자기 자신, 즉 ‘부커 드윗’의 자식을 데려오자고 제안하기에 이른다.
한편 세례를 거부한 [우주 2]의 부커는 전역 후 핑커톤 탐정 사무소에 취직했다. 그러나 부커는 변하지 않았다. 당시 기업가들은 노동자들의 파업을 막기 위해 탐정 사무소의 용역들을 고용하곤 했는데 부커는 이때에도 다른 용역들보다 더 심한 폭력을 휘두르며 파업을 진압했다. (‘핑커톤 탐정 사무소’의 노동자 탄압 역시 실재하는 미국의 역사다.) 부커가 자꾸 도를 넘은 폭력을 벌이자 탐정 사무소는 결국 그를 해고했다. 직장을 잃은 부커는 사설탐정으로 일하며 생계를 이어가던 중 한 여성과 결혼하지만 그녀는 딸을 출산하던 중에 사망한다. 이로 인해 또 한 번 큰 충격을 받은 그는 이후 술과 도박에 빠져 살았고 결국 돈이 바닥나 빚쟁이들에게 시달리는 신세가 되었다. 그때 [우주 1]의 물리학자가 찾아와 제안을 한 것이다. 딸을 이 세계로 넘기면 빚을 청산해주겠다고. 부커는 이 제안에 흔들렸고 결국 딸을 넘겼다. 하지만 부커는 곧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며 재커리 일당에게 달려가 딸을 돌려 달라며 균열 장치 틈에서 실랑이를 벌인다. 그 순간 균열이 닫혀버렸고 이로 인해 부커의 딸은 새끼손가락이 절단된 채 [우주 1]로 넘겨졌다. 재커리는 [우주 2]의 자신에게서 빼앗은 아이에게 새로운 이름을 붙여주었다. ‘엘리자베스 콤스톡’이라는.
[우주 1], [우주 2] 부커의 모습이 은유하는 것은 미국, 혹은 서구 백인 사회일 것이다. [우주 1]의 부커(재커리 콤스톡)는 너무 쉽게 속죄했고 타 인종에 대해 벌였던 무차별 학살을 백인이 타 인종보다 우월해서 그렇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합리화했다. 이는 미국이 운디드 니 학살을 벌인 군인들에 훈장을 주고 평등을 외치면서도 여전히 ‘운디드 니 학살’을 ‘운디드 니 전투’라 공식 명명하고 있는 모습을 거울에 비춘 모습이다. [우주 1]의 부커가 만든, 배타주의와 우월주의라는 엉터리 가치관의 소산인 ‘콜롬비아’는 곧 여전히 그 엉터리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이들로 가득한 현재의 백인 사회다. 이 게임은 그들의 우월감을 선지자 행세에 심취한 꼴이라고 꼬집는다. 재커리가 콜롬비아가 타락한 지상 세계를 불꽃으로 정화시키는 심판자가 될 것이라 예언하는 설정은 그렇게 계속 우월주의에 젖어 있다가는 ‘운디드 니 학살 사건’과 같이 타 인종을 폭력으로 억압하는 일이 또다시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강렬한 경고다. [우주 2]의 부커는 어떤가. 그는 [우주 1]의 자신처럼 쉽게 속죄하지 않았지만 어떻게 보면 아예 속죄라는 것을 시도하지도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 핑커톤 사무실에서 여전히 남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리라. 그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의미 없는 열병으로 지나갔을 뿐이다.
어느새 수많은 세계에 있던 엘리자베스들이 세례식에 있는 부커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이제 모든 걸 끝내야 해요. 애초에 시작조차 안 하도록. 단순히 이 세계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세계들까지. 선택을 하기 전에, 당신이 태어나기 전에.” 부커는 깨닫는다. 이 모든 것을 끝내는 방법은 우주가 갈라지기 시작했던 이 세례식에서 자신이 죽는 것, 즉 ‘상수’ 자체를 없애는 것임을. 그래야만 다른 우주에 있는 ‘재커리 콤스톡’도, ‘콜롬비아’도, ‘부커 드윗’도 사라질 수 있음을. 곧이어 엘리자베스들은 부커를 익사시킨다. 이 살해는 무엇을 보여주는가. 부커가 영향을 끼친 사람은 원주민과 노동자가 다가 아니다. 그는 다음 세대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재커리의 가치관은 콜롬비아의 아이들에게까지 미쳤을 것이다. 손가락이 잘린 사람은 죄인인 부커가 아니라 딸 엘리자베스였다. 게임에서 다음 세대를 대표하는 인물이 바로 엘리자베스다. 그러므로 엘리자베스의 부커 살해는 기성세대(부커)가 저지른 잘못의 고리를 끊고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음 세대의 의지다. 앞으로 어떤 세계에도 부커는 없을 것이라는. 또한 부커 드윗 당신을, 지긋지긋한 우월감이자 배타주의이자 인종차별주의인 당신을, 게임으로라도 완전히 죽이겠다는 의지다. 왜 ‘게임으로라도’인가. 슬프게도 이 엉터리 가치관들은 현실에서 바퀴벌레처럼 몇 세기가 지나도록 질기게 살아남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남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렇게나 절망적인 상황이지만 우리는 현실에서도 ‘부커 죽이기’를 계속 시도해야 한다. 시도조차 하지 않으면 이곳은 정말 바퀴벌레의 땅이 되어버릴 것이다. ‘바이오쇼크 인피니트’는 아름다운 시도 중 하나다.
https://m.ruliweb.com/news/board/17/read/68?
줄거리 요약 부분에 많은 참고가 된 감사한 글입니다. 마땅히 출처를 알려야 할 것 같았고 또한 게임의 방대한 세계관에 비해 저의 줄거리 요약은 많이 부족할 수 있기에 링크를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