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비선형(Non-Linear)’(Mot, 2007)
밴드 Mot의 1집 앨범 《비선형(Non-Linear)》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수록곡 <날개>라는 곡을 통해서였다. 연인과의 헤어짐을 노래한 곡인데 연애는커녕 이성과 손 한 번 잡아본 적도 없었던 중학생의 나는 이 노래를 들으며 부단히도 슬퍼했다. 가사를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면서도 그토록 슬퍼했던 이유는 가사를 내뱉는 보컬 이이언의 목소리가 지독히도 쓸쓸했고 그의 목소리를 닮은 기타 소리 위에 얹힌 멜로디는 너무도 우울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사 역시 아주 슬픈 내용일 거라 대충 짐작하며 슬픔에 젖어 <날개>를 듣고 또 들었다. 이제 연애도 겪어보고 생도 더 겪어본 지금의 나는 이제 <날개>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중학생의 나는 맛이 쓰고 이상하다면서도 아메리카노를 들이켰다면 지금의 나는 아메리카노가 원래 쓰지 뭐, 하면서 아메리카노의 씁쓸함을 음미한다. ‘원래 그렇다’는 말만큼 사람을 슬픈 의미에서 무장해제시키는 말은 없을 것이다. ‘원래 그렇다’라는 말은 어떤 움직임도 불가능하게 만든다. 그저 순응하고 그 자리에 머물 수밖에 없다. 연못처럼. 《비선형》은 이런 에너지의 노래들로 가득 찬 앨범이다. 나아가지 못하고 고여 있는 연못의 정적 에너지를 닮은 이야기들의 연속이다.
<Cold Blood>의 전반부는 화자가 그녀와 연인이 되는 설레는 과정을 노래하다가 후렴구 부분에서 곡의 분위기가 비극적으로 바뀌고 화자는 돌연 그녀와의 이별을 노래한다. 그리고 이후 한 구절을 반복한다. ‘나의 차가운 피를 용서해’. 이 구절을 통해 연애를 끝낸 장본인은 화자임이 드러난다. 즉 이 곡은 이별을 고한 입장에서의 노래인 것이다. 그런데 ‘나의 차가운 피를 용서해’라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는 왜 이리도 슬플까. 본인이 먼저를 이별을 고했으면서 왜 외려 이별을 당한 사람보다 더 상처받은 목소리를 하고 있을까. 그녀와의 행복했던 때를 노래하는 목소리는 왜 또 그리 애절할까. 그 이유는 죄책감에 있을 것이다. 이별을 통보받는 사람은 상대방이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버림받았다는 느낌으로 인해 고통받는다면, 이별을 통보하는 사람은 자신의 손으로 소중한 인연을 끊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것으로 한때 사랑했던 이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사실에서 오는 죄책감으로 인해 고통받는다. 이렇듯 <Cold Blood>는 이별을 당한 사람의 아픔을 노래하는 여느 이별곡과 달리 이별을 선고한 사람의 고통을 노래한다. 칼자루를 쥔 사람이라고 항상 칼에 베이지 않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한다.
늘 깨어 있고만 싶어 모든 중력을 거슬러
날 더 괴롭히고 싶어 더 많은 허전함을 내게
- <카페인>
화자는 자기 자신을 더 괴롭히고 싶다고 말한다. 그리고 더 많은 허전함을 달라 외친다. 이 자학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늘 깨어 있고만 싶어 - 날 더 괴롭히고 싶어’라는 가사로 알 수 있듯이 그는 깨어있는 것이 고통인 사람이다. 그런데 그는 오히려 카페인을 들이키며 늘 깨어 있고 싶다 말한다. 아마도 그는 기쁨과 충만함이라는 감정에 익숙지 않은 사람일 것이다. 그래서 차라리 익숙한 쪽을 택한 것이다. 그에게 익숙한 것은 ‘괴로움’과 ‘고통’일 것이다. 그는 차라리 자신을 더욱 고통 속으로 밀어 넣고 싶은 것이다. 충만함으로 충만할 수 없는 운명이라면 허전함으로라도 충만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더 많은 허전함을 달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익숙한 슬픔보다 낯선 행복이 더 싫’은 때가 있는 법이다.(타블로의 <집>) 차라리 내내 슬픈 게 나을 때가 있다. 슬픔 가운데 간간이 찾아오는 기쁨은 외려 그 뒤에 찾아오는 슬픔을 더 크게 와닿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쁨이란 그저 희망고문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화자도 그러했으리라. 고통 가운데 깨어 있는 일과 잠듦으로써 잠시 안정을 찾는 일을 반복하는 것보다 차라리 깨어 있으며 쭉 고통스러운 게 낫다고 생각했으리라. 그리하여 화자는 내내 깨어있다. 카페인의 늪에 빠진 채.
나는 너의 깨어진 거울 너의 화려한 몰락
나는 서랍 속의 파란 버섯 너의 비밀스런 희망
나는 너를 움직이는 슬픔 잊혀진 첫 번째 사랑
나는 너의 안전한 절망 너의 박제된 상처 (…)
나는 너의 숨겨놓은 칼 독을 위한 독
- <I AM>
여기서 ‘너’는 곧 화자다. 화자는 자신의 얼굴을 ‘깨어진 거울’처럼 화려하게 몰락한 얼굴이라 묘사한다. 그의 얼굴은 산산이 그리고 회복 불가능하게 망가졌다는 것이다. 이런 화자 가진 것은 ‘서랍 속의 파란 버섯’처럼 비밀스럽고 음험한 종류의 희망이다. 또한 파란 버섯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화자는 비밀스럽고 음험하며 이루어질 수 없는 희망을 품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 화자를 움직이는 것은 ‘잊혀진 첫 번째 사랑’ 같은 슬픔이다. 화자는 슬픔을 동력 삼는 사람인 것이다. 또한 화자는 자신이 ‘안전한 절망’ 속에 있다고 밝히는데 안전함과 절망이라는 단어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앞서 <카페인>에서 이야기했듯 <I AM> 속 화자 역시 행복보다 슬픔이 익숙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면 두 단어의 조합을 이해할 수 있다. 화자에게 있어 절망이란 안전한 것, 즉 편안하고 익숙한 것이다. 박제가 되어버린 상처처럼. 화자의 절망적인 자기 인식이 담긴 이 곡은 ‘독을 위한 독’이라는 가사로 요약할 수 있다. 화자의 우울함은 마치 독을 위한 독과 같다. 그저 우울만을 위한 우울인 것이다. 이 곡은 우울만을 위한 우울이라는 무한 루프 속에 갇힌 한 사람의 모습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빈 노트를 찢었지 오래된 다짐 인양
모험은 너무도 짧았지
난 이제 축제를 뒤로 그림자도 감추고
밟지 않은 길들로 그 높고 좁은 탑으로 (…)
아침은 밤보다 춥겠지
- <가장 높은 탑의 노래>
<가장 높은 탑의 노래>의 화자는 아무런 다짐도 계획도 적혀있지 않았던 빈 종이를 단호하게 찢었다. 무슨 중요한 것이라도 적혀 있었던 양. 그는 아무것도 없었으면서 무엇이라도 있었던 것처럼 다짐하고, 버릴 것도 없으면서 다 버려두고 모험을 떠나는 가난한 사람이다. 호기롭게 떠난 모험은 그러나 너무 짧았다. 축제와도 같이 짧았던 모험을 뒤로한 채 그는 높고 좁은 탑으로 돌아간다. 여러모로 가난한 한 사람이 겪은 모험의 뒷모습을 노래한 이 곡의 특징은 모험이 아닌 모험의 ‘뒷모습’을 노래한 점일 것이다. 짧았던 모험-일탈이 끝난 후 축 처진 모양새로 높고 좁은 탑으로 돌아가는 그의 모습이 허무한 것은 그가 모험을 통해 얻은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호기롭게 떠난 모험-일탈의 끝에 항상 무언가 의미 있는 것을 손에 쥐고 돌아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그는 아침이 밤보다 추울 것이라고 말한다. 왜 그는 해 없는 밤보다 해가 떠오르는 아침이 더 추울 거라고 말할까. 벌거벗은 몸이 햇살 아래 적나라하게 드러날 때 더욱 헐벗는 느낌이 들기 마련이다. 아침이면 그의 빈 노트는 더욱 비어 보일 것이고 그의 가난한 몸과 마음은 더욱 헐벗어 보일 것임을 그는 아는 것이다. 슬픈 예감을 안고 그는 높고 좁은 탑에 자신을 다시 뉘인다.
나의 절망을 바라는 당신에게
오늘은 축하한단 말해야겠군요
내가 받았던 친절한 그 경멸들은 오늘 더없이 내겐 어울려요 그렇죠
나를 비웃어요 나를 마음껏 (…)
나의 절망을 바라는 당신에게
오늘은 어떤 기념일도 되지 않을 겁니다
- <나의 절망을 바라는 당신에게>
화자는 자신의 절망을 바라는 ‘당신’에게 축하한다는 말을 전한다. ‘당신’에게서 받았던 경멸들이 자신에게 어울린다 말한다. 자신을 마음껏 비웃으라 말한다. 자포자기의 심정이다. 그렇게 그는 ‘비틀거리며 매일 부서져’ 간다. 그렇게 자포자기한 듯한 화자는 그러나 곡의 막바지에 이르면 돌연한 발언을 내뱉는다. ‘오늘은 어떤 기념일도 되지 않을 겁니다’. ‘당신’은 화자의 절망을 바라는 사람이므로 ‘당신’에게 있어 기념일이란 화자가 절망하여 완전히 무너져 내리는 날,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화자는 ‘당신’에게 그러한 기념일을 만들어주지 않을 것이라 단언한다. 적어도 오늘만큼은 완전히 부서지지는 않을 거라는 다짐인 것이다. 그러니 이 곡이 해피 엔딩이냐고 물으면 나는 고개를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가 없다. 절망할지언정 완전히 무릎 꿇지는 않을 것이라는 화자의 다짐이 너무 돌연하게 희망적이라는 느낌이 자꾸 드는 나는 화자의 그러한 다짐이 지속적인 짓밟힘 끝에 생긴 오기라기보다는 새해의 다짐과 비슷한 것이라 생각했다. 새해의 다짐은 호기롭지만 끝내 지켜지지 못한다는 속성을 가진다. 그리하여 나는 화자의 다짐의 말로를 벌써 본 것 같만 같다. 오늘은 어떤 기념일도 되지 않을 거라 말하는 목소리가 그의 의지와 달리 그리 결연하지 못한 것도 이 다짐의 말로를 보여주는 것만 같다.
우린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더 높은 곳으로만 날았지
처음 보는 세상은 너무 아름답고 슬펐지
우린 부서질 것을 알면서도 더 높은 곳으로만 날았지
함께 보낸 날들은 너무 행복해서 슬펐지
우린 서툰 날갯짓에 지친 어깨를 서로 기대고
깨지 않는 꿈속에서 영원히 꿈꾸기만 바랬어
- <날개>
부서지고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더욱 높은 곳으로만 날으는 이유는 무엇일까. 헤어짐을 예견하고 있으면서도 서로를 더 끌어안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다가 지나가듯 들은 드라마 속의 대사가 있다. 시한부인데 욕심 되게 많네, 라는 말에 한 인물이 답했다. ‘시한부니까 더 많죠.’ 생의 유한함을 깨달으면 촉박해지기 마련이고 양손이 모자라질 따름이다. <날개> 속 연인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어떤 이유에서인가 둘의 관계의 유한함을 깨달았고 그래서 되려 더욱 둘의 관계를 공고히 했다. 이카루스처럼 뜨거운 태양을 향해 더욱 높이 날갯짓을 하면서 관계의 온도를 높였다. 이러한 둘의 모습은 ‘꿈’에 가깝다. 곧 다 사라질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 ‘꿈’이 영원히 깨지지 않아서 ‘영원히’ 꿈꾸기만 바랐다.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함께 보낸 날들이 아름답고 행복한 것은 그날들이 유한하기 때문이다. 세상 모든 것들은 유한하기 때문에 더욱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함께 보낸 날들이 너무 아름답고 행복했던 동시에 슬펐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리라. 세상 모든 것들은 유한하기 때문에 소중하고 아름답고 또 유한하기 때문에 슬프다. 감질나고 애달프다.
앞서 밝혔듯 《비선형》 속 노래들은 나아가지 못하고 고여 있는 연못과 같은 정적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Cold Blood>는 죄책감에 머물러 있는 화자의 모습을, <카페인>은 카페인을 들이키며 내내 그 자리에 깨어 있는 화자의 모습을, <I AM>은 ‘우울을 위한 우울’이라는 무한 루프 속에 갇힌 자아의식을, <가장 높은 탑의 노래>는 짧고 허무한 모험 끝에 다시 제자리로 회귀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 이 곡들의 공통점은 바로 ‘머무름’ 혹은 ‘고여 있음’이다. 각 노래의 화자는 어딘가에 머물러있고 고여 있다. <나의 절망을 바라는 당신에게>와 <날개>도 마찬가지다. <나의 절망을 바라는 당신에게>의 화자가 이루어지지 못할 다짐을 가지고 있음을 통해 미래의 그도 결국 현재의 절망적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절망적 상황에 머무를 것이라 예견할 수 있고 <날개>는 한 연인이 결국 모든 것이 없어질 것을 알면서도 욕심으로 관계를 붙잡고 머물러 있는 모습을 노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각 곡의 화자들은 어떤 상황에, 관계에, 감정에, 계속 머물러 있다. 이들은 고여 있다는 점에서 앨범 커버와 밴드 명(못-池) 속 연못을 닮았고 직선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는 점에서 ‘비선형’적이다. 그러므로 내가 우울이라는 감정에 내내 고여있을 때마다 이 앨범을 찾는 것은 필연적이다. 아래가 다 썩도록 고여 있어 본 사람만이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있고 그런 노래만으로 위로받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 《비선형》은 그런 사람들을 위한 노래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