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슬픔에서 도망치는 신세

영화 ‘설행_눈길을 걷다’(김희정,2016)

by 권등대

“나는 아저씨가 너무 슬퍼요.”


교회를 다니던 시절에 누군가 나에게 나를 위해 기도한다는 말을, 혹은 기도하겠다는 말을 한 적이 꽤 많다. 그런데 단 한 번도 그 말들이 와닿은 적이 없었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은 그런 말을 조금은 인사치레로 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심지어 엄마가 나에게 그렇게 말해도 와닿지 않았다. 그런데 영화 속 마리아가 정우에게 아저씨를 위해 기도하겠다던 말은 진심으로 느껴졌다. 그 이유는 ‘나는 아저씨가 너무 슬프다’는 대사에 있을 것이다. 마리아가 정우를 위해 기도하는 이유는 정우가 불쌍해서, 혹은 자신은 종교인이니까, 혹은 정우와 아는 사이어서가 아니라 그저 슬퍼서다. 마리아는 타인의 슬픔을 순수하게 슬퍼할 줄 아는 사람이고 슬픔이 공유될 때의 힘을 아는 사람이다. 그 점에서 마리아의 기도 약속이 와닿은 것이리라.


“알코올 중독은 낫는 병이 아니라 ‘멈춘다’라고 표현하는 병이에요. 그래서 회복은 되지 않지만 도망은 다닐 수 있죠. 따라서 중요한 것은 힘을 얻어서 도망 다닐 몸을 만드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든 살아야 하고 살도록 염원해야 하는 것이죠.” (감독 김희정의 인터뷰 중)


희망은 희망이 있다고 믿는 일의 산물이라는 말을 떠올리게끔 하는 영화다. 생의 아픔은 잠깐 멈출 수는 있을 지 몰라도 결코 완전히 회복되지는 못한다. 계속해서 반복되기 때문에 우리는 내내 도망치는 신세이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 간절히 기도하고 염원하는 수밖에 없다. 아픔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어도 아픔으로부터 도망 다닐 수 있는 몸 정도는 되게 해 달라고. 눈발 날리는 겨울 길을 결국 홀로 걸어가는 정우의 모습이 낯설지 않은 것은 그런 사람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 세상에는 그런 사람 혹은 그랬던 사람(하지만 지금도 잠시 도망쳐 와 있는 상태인 사람)뿐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 사실이 너무 슬프지만 슬픔만이 슬픔을 위로할 수 있는 때가 있다. 정우의 쓸쓸한 걸음이 나를 위로하고 정우의 쓸쓸함을 슬퍼하며 간절히 기도하는 마리아가 나를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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