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불안, 세상의 종말

영화 ‘테이크 쉘터’(제프 니콜스,2011)

by 권등대


드라마 <빅 리틀 라이즈>의 에피소드 중에서 ‘The end of the world’라는 제목의 회차가 있다. 레나타의 딸 아마벨라는 수업시간 도중 쓰러져 응급실 신세를 지게 되는데 몸이 아니라 마음의 문제 때문이었다. 아동상담사는 아마벨라와 상담을 진행한 후 아마벨라가 수업 시간에 기후변화의 심각성에 대한 내용을 듣고 세상이 종말 할까 봐 두려웠던 것 같다고 말한다. 레나타와 남편은 학교 수업에 대해 분노를 표한다. 그때 상담사는 뜻밖의 다른 소견도 밝힌다. 아마벨라는 아빠가 감옥에 갈까 봐, 엄마가 요즘 들어 이상해서 많이 걱정하고 있다고. (레나타의 남편은 이상한 사업에 손을 댔고 잘 나가는 커리어 우먼인 레나타는 그로 인해 파산 위기에 처해 예민하던 참이었다.) “So, The end of the world.(그러니까, 세상이 끝난 셈이죠.)” 상담사가 덧붙이자 레나타와 남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가족 공동체가 불안한 상태에 있을 때 우리는 세상에 종말이 오는 것과도 같은 불안에 시달린다. 커티스의 불안은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커티스는 가족 공동체가 불안한 상태였던 것을 넘어 와해되다시피 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 불안의 깊이가 더하다. 그러나 지금 커티스의 일상은 평화로워 보인다. 친구 듀워크는 그를 보고 부럽다고까지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일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구질구질한데 커티스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고 말한다. 실제로 커티스는 일상에서 불안을 느낄만한 지점이 없는 편이다. 딸이 청각장애를 앓고 있지만 밝은 모습으로 열심히 치료 중이며 엄마가 정신적 치료를 위해 장기 입원 중이나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고 둘의 사이도 좋아 보인다. 가정에는 사랑이 넘치고 안정된 직장도 있다. 다 괜찮아 보인다. 그런 커티스가 불안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거의 상처로부터 많이 멀어졌고 그 상처를 채워줄 가족이 옆에 든든히 있는데. 사실 불안이라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다. 불안은 언제나 웃어보려 할 때, 그때 나타난다. 편안한 일상 속에서 아주 작은 구김을 발견할 때 나타난다. 무엇보다 커티스는 자기 자신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가족을 지키고자 하는 일념이 강한 사람이라서 불안의 크기가 더 클 수밖에 없다.


영화에서 커티스가 형을 불러 세워 안아달라고 조용히 손짓할 때,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옆모습이 한껏 주눅 들어 보일 때, 가족들을 걱정시킬까 봐 또 그 걱정이 가족의 평화를 깨버릴까 봐 혼자 책을 찾아 읽고 의사를 찾아갈 때, 막상 찾아가서는 자기 증상도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얼버무릴 때, 딸은 직장 보험의 적용으로 수술비를 지원받지만 정작 자신은 정신과 약 구매에 아무런 보험 혜택을 받지 못할 때, ‘극복할 수 있겠어?’라는 아내 사만다의 물음에 자신 없으면서 ‘할 수 있어’라고 답할 때 커티스에게서 내가 스쳤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커티스에게서 자신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영화의 결말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형철 문학평론가의 글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의 해석이 너무 슬퍼서 나는 일부러 그의 설명과 반대되는 결말을 믿기로 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오로지, 가족과 함께 있을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문제다. 그러므로 그가 며칠 뒤에 장기입원을 해야 한다는 통보를 받은 일은 며칠 뒤에 세상이 멸망할 것이라는 예고와 다르지 않다. 아니, 어쩌면 전자가 더 끔찍한 것일지도 모른다. 종말의 순간에는 헤어지지 않을 수 있으니까. 그렇다면 차라리 세상이 멸망하는 편이 낫다! 그리고 이 영화는 바로 그 길을 간다. 결말의 반전은 커티스의 이런 바람을 실현시켜주기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이 폭풍우는 이 영화의 유일한 실제 재앙이 아니라 역시 커티스의 마지막 망상이라고 해야 하리라.’ (신형철, ‘정확한 사랑의 실험’ 117쪽)

그리하여 결말의 폭풍우가 여전히 커티스의 망상이라면 커티스는 결국 곧 가족들과 헤어져 장기입원을 하게 될 것이고 그것은 그가 그토록 막으려 했던 가족과의 헤어짐이다. 그러면 커티스가 너무 안쓰러워진다. 그래서 나는 마지막 폭풍우가 차라리 실제라고 믿고 싶었으나 그래도 결국 망상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르게 생각하려고 한다. 커티스의 폭풍우를 이제 사만다도, 딸도 볼 수 있게 되었고 그래서 가족들은 앞으로 커티스와 함께 불안의 폭풍우를 이겨내기 위해 더욱 노력하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불안의 공유는 분명 힘든 것이나 신형철 문학평론가의 글대로 ‘가족에 대한’ 불안은 ‘가족에 의해’ 극복할 수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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