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 혹은 간절한 기도

앨범 ‘THUNDERBIRD MOTEL’ (지올팍, 2020)

by 권등대

THUNDERBIRD 모텔의 청소부는 너무 오래도록 나오지 않는 한 투숙객의 방을 찾아간다. 아무리 문을 두드려 봐도 대답이 없자 문고리를 돌려 본다. 뜻밖에도 문고리는 쉽게 돌아간다. 인기척 없는 방 안을 휘 둘러보던 청소부는 테이블 위에 놓인 작은 일기장을 발견한다. ‘THUNDERBIRD MOEL’은 이 일기장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앨범이다. 물론 THUNDERBIRD 모텔은 가상의 장소이고 일기장은 지올팍 본인의 일기장일 것이다. 앨범을 듣는 내내 천둥소리가 귀를 울린다. 눈앞에 번개가 번쩍이는 듯하다. 그렇기에 이 앨범의 가장 중심에 있는 노래는 ‘CAN’T STOP THIS THUNDER​’가 아닐까 한다.


THUNDER’s inside 내 안에 번개가 치고

THUNDER’s outside 바깥에도 번개가 치고 있어


번개란 갑작스레 번쩍이는 불꽃이다. 보통 번개는 한 번으로 그치지 않는다. 지나갔다고 안심하는 순간 눈앞에 다시 번쩍 나타나고 천둥까지 몰고 와 한 번 더 우리를 놀라게 한다. 이러한 속성을 가진 번개가 내 안에서 내리친다면 어떻게 될까. 예고도 없이 찾아오는 번쩍임과 폭탄 같은 울림을 안고 사는 것, 이것의 다른 이름은 불안일 것이다. 화자는 매 순간이 불안하다는 말을 내 안에 번개가 치고 있다는 말로 대신한다. 가사로서의 기교인가, 아니면 사람들에게 불안이라는 것을 이해시키기 위함인가를 고민하다가 이는 잘못된 고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후로 이어지는 가사들 때문이다.


Turn off that light for me 날 위해 불을 꺼줘

Leave me to feel grief 내가 슬픔을 느끼게 내버려 둬

I’m sick of being chosen one 난 이제 선택받은 척하기 지쳤어

But I can’t stop this THUNDER 하지만 난 이 번개를 멈출 수 없어


우리가 슬픔을 겪고 있을 때 가장 힘든 순간은 마음껏 슬퍼할 수 없는 상황 속에 있을 때일 것이다. 울 수 있는 자리조차 허락되지 않을 때 말이다. 화자는 그 순간 가운데 있는 듯하다. 화자는 저가 울기에는 세상이 너무 환하니 잠깐 불을 꺼달라고 부탁-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애원에 가깝다-한다. 어둠 속에 몸을 뉘일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말한다. 이어서 그는 이제 더 이상 선택받은 척하기 지쳤다고 덧붙인다. 아마 화자는 번개와도 같은 불안이, 천둥과도 같은 슬픔이 ‘선택받은 자’로서의 불가피함이라고 애써 받아들여왔지도 모르겠다. 나는 예술을 하는 사람으로, 혹은 앞으로 더 좋은 삶을 살기로 선택받은 자이니 이 정도 시련은 당연한 수순이라고 힘겹게 고개를 끄덕여 왔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애쓰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화자는 계속해서 이어지는 슬픔들로 인해 애써 유지해온 ‘선택받은 자’라는 수식어를 내팽개친다. 이러한 가사를 쓰는 사람이 ‘내 안에 번개가 친다’라는 표현을 그저 기교로써 사용하거나 불안이라는 것을 남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사용했을 리 없다. 그는 그저 있는 그대로를 전달하고 있을 뿐이고 그럴 힘밖에는 남아있지 않은 상태인 것이다.


They say it like a unicorn 그들은 그걸 유니콘인 것처럼 말해

Denying what I'm looking for 내가 찾고 있는 것을 부정하지

(‘Unicorn’ 가사 중)


They think it filled with greed 저들은 내 잔이 욕심으로 가득 찬 줄 알아

(‘CAN’T STOP THIS THUNDER’ 가사 중)


People love my fake face 사람들은 내 가면을 좋아해

All in contacts they all snakes 연락처에는 전부 뱀들뿐이야

(‘Sleepwalk’ 가사 중)


화자가 겪고 있는 슬픔은 어떤 것일까. 앨범에서 반복적으로 표현되는 이야기들을 추려 어설프게나마 알아보았다. 화자는 새로움을 추구하는 사람이지만 그런 화자를 바라보는 주변 시선은 곱지 않다. 그들은 화자를 ‘유니콘’, ‘몽상가’, ‘환상 속에 사는 사람’으로 지칭하며 그의 계획들은 모두 ‘욕심’에 불과하다고 결론짓는다. 화자는 “그래, 나 몽상가야. 존 레논과 같지.”라며 그들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말이라는 것은 그리 쉽게 흘려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반복적으로 들려올수록 더더욱. 그러나 화자는 항상 웃는 가면을 쓰고 그들을 대한다. 그런 자신의 모습이 거짓됨을 알면서도 그들을 웃으며 맞이한다. 화자는 마음껏 울 수 없는 상황이자 마음껏 화낼 수도 없는 상황 안에 놓여 있는 것이리라.


Imma fly like a pilot 나는 파일럿처럼 날 거야

I’m tired of this land 난 이 땅이 지긋지긋해

Imma die in another new planet 나는 다른 새 행성에서 죽을 거야

Imma go find some place where I could be honest 내가 솔직해질 수 있는 곳을 찾으러 갈 거야

I wanna take mask off 나는 가면을 벗고 싶어

(‘LAND’ 가사 중)


그리하여 앨범의 마지막 곡인 ‘LAND’에서 화자는 파일럿처럼 날아 이 땅을 벗어나는 상상을 한다. 가면을 벗을 수 있는 곳에서 마음껏 새로움을 펼치다가 죽는 상상을. 아름다운 상상을 이어가던 그때 익숙한 소리가 들려온다. 앨범의 첫 곡 ‘Tomorrow’의 기이한 전주가 다시 들려오는 것이다. 이는 상상의 끝과 현실의 시작을 알린다. 지올팍은 첫 곡의 전주와 마지막 곡의 후주의 연결이 우울의 반복을 상징한다고 말한다. 잠깐 괜찮아졌다가도 우울과 불안은 다시 찾아온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고 한다. 다시 한번 앨범의 주제인 번개가 떠오른다. 예고 없이 찾아오고 멎었다 생각하는 순간 번쩍 내리치는 번개말이다.

‘THUNDERBIRD MOTEL’은 지올팍이 유독 힘들었던 시절에 만든 앨범으로 모든 가사들이 자신의 기도의 내용이라고 한다. 간절한 그의 기도는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이 아프게 하는 동시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는 아름다움도 느끼게 만든다. 자신의 고통을 이렇게 멋진 결과물로 만들어 주어서 감사하다. 그러나 나는 이 아티스트가 더는 아프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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