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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등대 Mar 22. 2023

시에 대한 애매한 사랑

김종삼의 「라산스카」와 황현산의 글

2014년 문예중앙 겨울호를 사고 읽게 된 것은 오롯이 밴드 Mot의 보컬 이이언 덕이었다. 어쩌다 이이언의 (그 당시 미공개 곡) 가사와 그에 대한 짤막한 글이 이 문예지에 실린다는 소식을 듣고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이 문예지를 사버렸더랬다. 오직 이이언의 가사와 글을 읽기 위해 산 것이었기에 해당 챕터만 읽고 다른 글들은 쳐다도 보지 않고 책을 덮어버렸는데 어느 날 불현듯 돈이 좀 아까워졌는지 그래도 이왕 산 김에 다른 글도 좀 읽어 보자, 싶은 생각이 들어 문예지를 처음부터 다시 찬찬히 읽기 시작했다. 당시 열여덟이었던 나에게  이 문예지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글은 ‘현대시 산고’라는 제목 아래 쓰인 황현산 선생의 연재글 「김종삼의 ‘베르가마스크‘와 라산스카 2」였다. 더 정확히 말하면 김종삼 시인의 「라산스카」들과 그 시들을 인용하고 있는 활자들의 청회색빛깔, 그리고 그 「라산스카」들을 설명하는 황현산 선생의 문장이었다. 나는 청회색으로 인쇄된 김종삼 시인의 「라산스카」들을 황현산 선생의 설명을 읽고 나서야 오롯이 청회색으로 느낄 수 있었다.


미구에 이른
아침

하늘을
파헤치는
스콥소리

(『시인학교』 버전 「라산스카」)


이 시를 오래도록 곱씹으면서 맑은 청회색빛 새벽 아래 깨끗한 속눈썹을 가진 누군가가 눈을 살풋 삼은 채 하늘을 파헤치는 스콥-삽-의 소리 같은 라산스카의 소프라노를 들으며 가지런히 누워 있는 모습을 떠올렸다. 여태 껏의 그 어떤 상상보다도 평온한 상상이었다. 그리하여 김종삼 시인의 「라산스카」는 나에게 깨끗한 청회색빛으로 남아 있었다.


이후 몇 년이 흐른 뒤 황현산 선생의 산문집을 읽으면서도 이 분이 그때 그 글을 썼던 분과 같은 분이라는 사실을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그러다가 더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작은 책방에서 황현산 선생의 이름이 붙은 책을 무심코 꺼내어 목차를 살피다가 이 글을 다시 발견했다. 홀린 듯이 그 책을 구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의 나는 이 글을 다시 읽으며 모든 문장에 밑줄을 긋고만 싶다. 황인숙 시인은 팔레스트리나를 들으며 「라산스카」를 읽다가 한 곡을 채 못 들었다고 한다. 팔레스트리나를 들으면 본인의 죄가 끝없이 환기되고 주위의 공기들이 습한 죄의 입자들로 채워진다고. 열여덟의 나는 황현산 선생이 인용한 황인숙 시인의 말이 너무 과장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이제 황인숙 시인처럼 팔레스트리나를 듣다가 한 곡을 채 못 듣고 꺼버린다. 그의 말대로 정말 ‘숨통이 죈다’. ‘훅 끼치는 내 죄의 기세에 속이 메슥거린다’. 그리고 「라산스카」의 마지막 구절이 사무친다.


(…)
라산스카
나 지은 죄 많아
죽어서도
영혼이
없으리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버전 「라산스카」)


여기서 「돌각담」을 다시 읽는다. 김종삼 시인이 육이오가 발발한 당시 노숙을 하며 피난 다니던 중에 생각했다는 시. ‘걷고 걷던 7월 초순경’에 어떤 밭이랑에 쓰러졌다가 캄캄한 밤에 겨우 다시 깨어났을 때 생각했다는 시. 돌각담의 저쪽 편은 다른 세상이다. 즉 돌각담은 백수광부의 아내가 백수광부에게 제발 건너지 말라고 소리쳤던 그 강이다. 그러나 결국 건너간 사람들의 흰 옷 포기가 돌각담 위에 포개어져 있고 돌각담은 자꾸 무너지려고 한다. 시인은 무너지려는 돌각담을 쌓고 쌓고 또 쌓는다. ‘죽음과 절망적인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어느새 돌각담이 다시 쌓이고 바람이 잦아든다. 그리하여 시인은 벗어 놓았던 흰 옷을 다시 입을 수 있다. 그는 이쪽 세상을 향해 다시 비척비척 걸어간다. ‘죽음은 유예되었’다. 그러나 말 그대로 ‘유예’ 일뿐이다. 돌각담을 다시 만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이런 시를 쓰는 사람이 무슨 죄가 그리 많다고 노래한 것일까. 죽기 일보 직전의 상황에서도 시를 생각하는 사람이 대체 무슨 그리도 큰 죄를 지을 수 있을까. 하긴 팔레스트리나를 들으면 없던 죄도 나를 옥죄는 것 같긴 하더라만은 나는 그래도 이 시인이 ‘죽어서도 영혼이 없’기를 바랄 정도로 큰 죄를 지었을 만한 사람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때, 황현산 선생은 이 마지막 구절이 그저 자신이 받게 될 징벌을 두려워하는 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순결한 지우기’로서의 말이기도 할 것이라고 말한다. 죽어서도 영혼은 남는다지만 이 시인은 그 영혼마저 지우는 일이 가장 순결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미구에 이른 아침
하늘을 파헤치는
스콥 소리

하늘 속
맑은
변두리
새 소리 하나
물방울 소리 하나

마음 한 줄기 비추이는
라산스카

(『본적지』 버전 「라산스카」)


그리하여 「라산스카」 (특히나 『본적지』와 『시인학교』 버전)를 다시 읽으면, 열여덟에 느꼈던 평온보다도 더한 감정을 느낀다. 평온을 넘어선 평온의 감정, 깨끗함과 순결의 감정. 김종삼 시인에게 라산스카의 노래는 자신의 죄를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팔레스트리나와 달리 ‘인간 되었던 모진 시련 모든 추함’(『평화롭게』 버전 「라산스카」)을 다 지워주는, 그리하여 자신을 구원해 줄 수 있는 단 하나의 노래였고 그 노래를 노래한 「라산스카」들은 내게 맑은 청회색빛으로 빛난다. 비록 내가 경험해 온 시의 양은 너무 적지만, 어쨌든, 「라산스카」는 내가 여태껏 경험해 온 시들 중 가장 깨끗한, 너무 깨끗한 나머지 성스러운 시다. 청회색빛 새벽, 깨끗한 속눈썹을 살풋 감고 누워 있는 하얀 얼굴이 눈앞에 일렁인다. 이 일렁임의 경험이 너무도 뜻깊어 다른 많은 시들 역시 사랑하고 싶어 졌던 것이다. 시를 어려워하면서도 무의식적으로 갈망하는 나의 심리에 「라산스카」들의 경험이 큰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지금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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