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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구와 인간 Jul 23. 2023

결국엔 기본기

당구장에서 ~ 15

누구나 잘 치고 싶은 욕심을 품고 있다. 연구하며 연습을 거듭한다 해도 내 맘대로 채워지지 않는 앞선 욕심이기도 하다. 아무리 쳐다봐도 못 치는 이유가 차고 넘쳐나는데 내 잘못은 무시되고 주위 핑곗거리를 찾기 바쁜 것 같. 늦은 나이를 둘러댄다든지, 큐가 마음에 안 든다든지, 당구대가 내게 맞지 않다는 투정 같은 것 말이다. 이유를 하나로 압축해 보면 결국 기본기에서 문제점이 찾아진다. 총명한 시기든 늦은 나이 든 어쨌든 처음 배울 때 잘 배워보자. 첫 습관이라는 게 참 무섭기 때문이다.  


뒤늦게 잘못된 습관을 고쳐보려 용쓴다지만 소용없는 경우를 많이 봐왔다. 자신도 인지하며 잘못된 점 하나하나를 내게 지적해 보지만 이내 제자리로 돌아가는 굳어진 습관. 뻣뻣한 팔을 쳐다보니 소귀에 경 읽기라는 생각도 든다. 이 답답한 마음을 누구에게 달래보나. 돌이킬 수 없는 실수가 그릇된 욕심으로 변해가는 세월을 지켜볼 수밖에 없단 말인가.


쉽게 고쳐지기 힘들겠지만 희망 없는 것도 아니다. 의지력이 없는지 고민해 봐야 할 일이다. 행여 잘못된 습관이 몸에 배어버릴 수도 있으니 항상 조심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혼자보다는 둘이 좋듯 내 자세와 스트로크를 관찰하기 위해서라도 둘이 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요즘은 전자점수판에 내가 친 모습을 지켜볼 수 있으니 더 없는 친구가 된다. 물론 당구의 깊이를 다뤄주는 스승이면 두말할 나위 없다.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큼 좋은 가르침이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동네 형에게라도 배워야 한다. 요즘은 유튜브에 정보가 노출된 상태이기에 조금의 관심으로도 여러 기술과 요령들을 습득할 수 있다. 교본은 대부분 베끼고를 반복하는 책들이 주류를 이룬다. 주로 시스템 위주다 보니 요지를 간과해 버리는 것 같아 추천하기에는 머뭇거리고 싶다. 세월의 구력과 구전으로 내려오는 요령들을 모아서 한눈에 이해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런 책은 아직 눈에 띄지 않는다. 물론 기본기가 우선되어야 하는 전제조건하에 말이다. 거기에 최대한 많은 시간을 투자해 보자.


이렇게 절차와 방법을 알려줘도 욕심이 앞서 배움을 그르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강습료를 내고 교육받을 때면 기술을 가르쳐주지 않고 자세만 가르친다며 투정 부릴 때가 많다. 빈번한 일이다. 알고 보면 기본기가 전부인데 가르치는 사람도 답답해한다. 맞춰내는 방법은 나중 문제다. 시스템도 스트로크 훈련법을 거친 후 터득해도 늦지 않다. 자세며 스트로크도 안 되는 상황에서 시스템을 죄다 외우고 있으니 미치고 폴짝 뛸 노릇인 게다.


당구에서 기본기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잠깐 쉬더라도 그 감각을 찾기 수월하고 오랜 시간이 지나도 내가 꿈꿔왔던 그림을 얼마든지 그려나갈 수 있다. 늦은 나이래도 상관없다. 세상을 알고 당구를 배움으로써 인생 내공을 함께 쌓을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진정 사랑하는 마음까지 싹트니 자연스럽게 기량으로 보태진다. 그 그림은 챔피언일 수도 있고 하루의 피로를 해소할 수 있는 여유로움이 된다.


반평생 당구 치면서 챔피언 한번 못해보고 좌절한 이들은 셀 수 없을 정도다. 오늘도 선수들의 경기를 유심히 살펴보면 첫 습관을 버리지 못한다는 것. 그리고 춤추는 큐. 때로는 운이 좋아 승률이 높을 때도 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무너지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모두가 습관 때문이다. 이런 안타까움을 너무도 잘 알기에 충고의 한마디를 건네 보지만 아집으로 뭉친 그때뿐인 예의로 돌아올 뿐이다. 어쩌겠나, 아무리 쳐다봐도 아닌 건 아닌데.


가장 중요한 기본기를 제쳐두고 왜 엉뚱한 방향으로 욕심을 채우려 했는지. 시스템을 정답으로 여기며 사람들의 충고를 머릿속에 많이 저장시키는 것이 장땡인 줄 착각한 세월. 얻은 것은 난해한 용어만을 잔뜩 짊어진 채 제자리서 맴도는 내 모습이다. 백이면 백 후회하지만 실력이 정체되면서부터 조금씩 몸으로 느껴지기에 곧바로 와닿지 않는 안타까움이기도 하다. 기본기가 초심 잃지 말라며 내게 손짓하고 있다. 정도의 수준에 오르면 오를수록 시스템은 멀어지기에 하루라도 빨리 버려버리자. 그나마 당구라서 다행이다. 삶이었으면 어쩔 뻔했나.


신랑과 매일같이 스리쿠션에 빠져들던 여성이 있었다. 결혼도 초보 당구도 초보였다. 여가생활로 당구를 택했다는 것이 기특했다. 어깨너머로 지식을 습득하여 둘이서 주고받고를 반복하는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웠다. 다가가서 당구를 배워보려나? 의사를 물어보니 아주 좋아한다. 내건 조건은 단 하나. 남의 말을 절대로 듣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날부터 어쭙잖을지 모를 수업이 시작되었다. 웬걸 다음날 만나자마자 “저 사람들은 이걸 요렇게 친다.”라며 불필요한 상황을 드러내 버리고 만다. 할 말을 잃었다. 아무 말이라도 끌어와야 하는데 입이 열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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