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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구와 인간 Jul 22. 2023

담배의 추억

당구장에서 ~ 9

큰 도로에서 미성년들이 담배 연기를 연신 뿜어댄다. 지네들도 옳지 못한 행동이라는 것을 인식한 듯 주위를 곁눈질하기 바빠 보인다. 어른들은 못 본 척 가던 길을 재촉해 버린다. 뭐라 하다간 낭패당할 수 있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예전처럼 사명감으로 훈육하던 시절은 이미 지나버렸다. 요즘은 아예 학교 옥상을 암묵적 흡연 구역으로 지정할 정도라고 한다. 나를 돌이켜보니 방황과 반항의 퍼포먼스였던 것 같다. 눈앞의 아이들도 그렇지 않을까.


꼬나문 담배 연기에 눈시울을 찌푸리며 볼의 두께를 조준하던 때가 있었다. 어른들의 “뼈 녹는다.”라는 충고는 약이 되지 못했다. 집중력이 순간적으로 높아지는 착각마저 일으켰으니 말이다. 주머니 사정에 따라 담배 한 개 피를 나눠주는 행위는 서로 간의 미덕일 정도였다. 가끔 당구장에서 비흡연자를 만나기라도 한다면 동물원의 원숭이를 보는듯했다. 구석진 곳에 앉아 도넛 만드는 연습을 해 보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한 친구가 큼지막한 도넛을 성공시키자 모두 손뼉 치느라 난리다.


아버지의 묵직한 유리 재떨이가 생각난다. 찌그러져 있는 할머니의 팔각 성냥 통도 떠오른다. 한 방에서 식사와 흡연이 동시에 행해지는가 하면 식당에서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열차와 버스 안에서도 감히 뭐라 하는 사람 없을 정도로 흡연은 일상의 다반사였다. 거스른 시간 속에, 코흘리개 자식 놈과 곰방대를 물고서 호랑이와 맞담배를 피우던 시절이 조선의 시골 풍경 아니었던가. 그 시절에도 사회문제로 대두될 정도였으니 필요악임에는 분명한 것 같다.


일제강점기가 시작되자 문명의 합류는 영화관이라는 괴물을 탄생시켰다. 그 속에서 사람들이 움직이며 관객들을 울고 웃긴다. 새파랗게 젊은 친구가 지팡이를 짚고서 “찰리 채플린” 행세를 하고 있다. 서울 시내를 활보하고 다녔다니 웃고픈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아울러 담배 파이프가 등장했으며 곰방대는 박물관의 한 자리를 차지해 버렸다. 괴물은 한국전쟁 이후 또 한 차례의 유행을 선도해 나갔다. 영화 *“허슬러”였다. 주인공이 담배를 입에 물고 당구를 치자 그 모습에 반해 너도나도 따라쟁이가 된 듯하다.



이렇게 시작된 문명화 놀이 덕분이었을까, 학생들은 몰래몰래 피워야만 했다. 당구 자본은 이를 놓칠세라 코 묻은 돈을 뺏어 먹기 위해 **가정집에 불법으로 당구대를 설치하여 낱개비 담배까지 팔았다. 청소년들은 흡연과 공놀이의 목적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담배 피우며 ‘삼치기’ 노름도 하였다. 이후 불법 당구대는 사라졌지만 달콤한 유혹은 합법적 당구장에서 배턴을 이어받고 말았다. “미성년자 출입금지”라는 팻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지게미 역할을 해왔던 것이었다.


출입문을 염과 동시에 코를 실룩하게 만드는 쿰쿰한 냄새는 당구장 특유의 향수와도 같았다. 제대로 가동되지 않은 환기 시설은 당구장의 담배 연기를 담뱃가루로 만드는 공장이었던 셈이다. 가루가 굳어서 누렇게 변신하여 찌든 내음을 풍긴다. 당구대도 담배로 몸살을 앓는다. ****나사 지(羅紗 紙)의 파임 자국은 꼭 *****맛세이 때문만은 아니다. 입에 물고 치다가 불똥이 떨어져 발생했던 것이다. “300 이하 맛세이 금지”라는 팻말처럼 ‘300 이하 담배 물고 금지’라고 써 붙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쿰쿰함 속에서 담배 연기가 남성들의 정력을 퇴보시켰을까. 예부터 지금까지 당구장은 총각들이 넘쳐난다. 나 또한 연기 속 주인공임에는 말할 필요도 없다. 눈뜨자마자 당구장을 향하는 발걸음은 준비물(담배)을 챙겼나 안 챙겼나 주머니를 뒤적거리면서 총총거렸다. 온종일 찌든 내음을 맡는 게 그리도 좋았을까. 집으로 돌아와서 샤워한 후 입었던 옷은 다시 입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담배 내기도 심심찮게 했다. 커피 내기로 목을 축이고서  담배 내기로 승부를 갈랐다. 그러다 일 대 일로 한판씩 주고받는다면 결국 숨죽이는 똘똘 말이로(멍석말이) 이어지게 된다. 담배로 탑 쌓기 놀이할 때면 주인은 골치 아파한다. 한 갑씩 가져다주랴 정산하랴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가끔 돈내기라도 하는 날이면 당구대 밑에서 너구리 한 마리가 불쑥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주위는 불이라도 난 것처럼 희뿌연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사람들의 얼굴은 붉으락 홍조를 띤다.


덕분에 애연가가 되었지만 늦게나마 당구장 금연법이 통과되어서 다행이다. 아직도 구장 내에 흡연실이 의아하지만 어쨌든 조금이라도 덜 피울 수 있는 조건을 갖추게 되었다. 이렇게 좋은 당구 환경에서 아직도 담배 피우는 모습이 부끄러울 뿐이다. 담배의 기억을 지우고 싶지만 자욱한 연기 꽃 속의 희비가 씁쓸하고도 아련한 추억임에는 부인하지 못한다.




* 허슬러 : 1961년 폴 뉴먼 주연. 포켓과 캐롬(3구 or 4구) 당구를 이용하여 사기 당구를 소재로 한 영화다. 양복과 넥타이, 고급저택에서의 파티가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 모았을 것이다.

** 입장식 요금제도에서 10분당 요금제로 바뀌는 시발점이다.

*** 찌끼. 찌끼 미. 지킴의 방언(경남)

**** 나사 지(羅紗紙) : 당구대 천

***** 맛세이(masse) : 프랑스어 masse 큐를 세워서 찍듯이 공을 내려 맞히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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