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동생이 젖 뗀 강아지를 업어왔다. 길 잃은 녀석을 동네사람들이 쳐다보며 된장 바른다나. 그 소릴 듣곤 얼른 낚아챘다고 한다. 심심할까 봐 데리고 살라 한다. 레트리버종이라며 영리하고 비싸다나. 워낙 강아지를 좋아하기에 두말 않고 품어버렸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아기 때는 마냥 이쁘다. 아장아장 뛰는 모습 귀엽다 못해 홅아주고 싶다.
사료도 어찌나 잘 먹던지 허겁지겁 숨 쉴 틈 없다. 밥 한 숟갈 남겨 비벼줘도 마다하지 않는다. 라면 먹다가도 윤기 나는 밥그릇이 떠올라 마저 먹지 못한다. 늦은 밤 족발 가게를 들러 버리는 고기를 한 움큼을 얻어온다. 녀석도 맛있는 부위를 아는지 살점을 기막히게 골라 먹는다. 뜯어 물려주자 냅다 손을 물어버린다. 피가 살짝 맺혔다.
사람 무는 개 키우지 말라며 주위에서 웅성거린다. 그러면서 잡종이라고 덧붙인다. 보낼 곳이라고는 딱 한 곳뿐인데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검색해 보니 생김새가 다르긴 했다. 동생들이 고상하게 지어준 이름도 살짝 거슬렸지만 교육을 잘 시켜보기로 했다. 수컷이라 별나 틈만 나면 논두렁에 빠져 온몸이 시커멓다. 그 모습에 냅다 “뚜렁이”라 이름 지었다. 맨날 논밭으로 산으로 정신없이 싸돌아다닌다.
커가면서 먼 산 쳐다보며 쓸쓸해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준다. 불러도 시큰둥. 안 되겠다 싶어 유기견보호소를 찾았다. 구석에 뚜렁이와 비슷한 녀석이 나를 힐끔 쳐다본다. 여쭤보니 같은 종에서 믹스된 아이였다. 다행히 암컷이다. 됐다 싶어 녀석을 데려오려 하자 관리자가 주저한다. 두 번이나 버림받았다며 여기서도 왕따라네. 살펴보니 고개 숙여 빙글빙글 도는 지적장애도 있는 것 같았다.
뚜렁이 집 옆에 나란히 집 하나를 더 만들었다. “또랑이”이가 살 곳이다. 결혼식을 치르고 합방 했지만 낯설어한다. 며칠을 먹지 않고 웅크리고 있다. 산책 가자며 끌어당겨도 꼼짝 않는다. 달래고 쓰다듬고를 반복했더니 조금씩 먹기 시작했다. 빙글빙글 돌더니 그제야 볼일을 본다. 무슨 병인지 모르겠지만 크던 작던 무조건 빙글 돌고서 해결한다. 아픈 곳 없으니 다행으로 생각해야겠지. 녀석은 뭐든지 느릿했다. 이름 부르자 그제야 살랑살랑 꼬리 친다.
아침이면 윗마을 “별이”가 총총걸음으로 내려온다. 암컷이라 뚜렁이만 바라본다. 주인 내외가 출근하면 홀로 심심해서 놀러 오는 것이다. 요크셔테리어 잡종인데 똑똑하다고 동네에서 유명세를 타는 녀석이다. 뚜렁이가 친구 왔다고 컹컹 짖는다. 또랑이는 질투심도 없는지 언제나 그러거나 말거나. 느릿느릿. 목줄을 풀어주자마자 세 녀석이 논밭으로 냅다 달린다. 고라니를 잡기 위해서다.
해 좁은 평야는 고라니 가족이 살고 있다. 해마다 새끼를 낳지만 올해도 세 마리 뿐이다. 멀리 정신없이 달리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별이가 고라니를 확인하면서 ‘멍멍’ 신호를 보낸다. 그 소리를 듣고서 뚜렁이는 쫓아가고 또랑이는 먼발치서 헥헥거린다. 내일도 세 녀석이 뭉쳐보지만 언제나 허탕이다. 그렇게 그해 겨울이 지나가고 콘크리트가 서서히 논밭을 메워버렸다.
도시에서는 피부에 와닿지 않는 예기들이다. 고라니 천적이 자동차라는 사실에 놀라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한 날 이곳 지역 커뮤니티에 언성 높은 댓글이 달렸다. 아파트 고층에서 내려다보니 아침마다 뭘 태운다며 공기 나빠 못 살겠다 한다. 시골은 마른 볏짐이나 들깨 단을 태워서 거름으로 사용한다. 노부부가 도시로 떠난 자식들을 생각하며 아침마다 거름을 만들었으리라. 자연 속에 내가 침입하여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면 그 생각이 달라지지 않을까.
강산이 변해 세상은 애완견 목줄 착용을 요구했다. 동네마다 애완용품점과 동물병원이 점포를 차지하고 놀이터에 화장터까지 사람 사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구색도 갖춰졌다. 길을 걸으며 만들어진 애완견을 보는 일은 이제 흔한 일상이다. 간혹 토종개가 보이지만 대부분 서유럽의 교배종들이다. 작게 더 작게. 이쁘게 더 이쁘게. 작고 이쁘다는 기준을 넘어 아름답고 우아함을 위해 달려가는 모습이다.
사람들은 성장사회에 합류하기 위해 도시로 · 해외로 떠난다지만 녀석들은 그럴 일 없다. 단지 달리고 싶을 뿐이다. 안쓰러워 목줄 메고 한 바퀴씩 돌아보지만 녀석들에게 허전함을 채워주지는 못한다. 보다 못해 자식을 키우기로 마음먹었다. 느릿느릿 또랑이가 대견스럽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포유류의 자식사랑은 본능인가 보다. 이 녀석 컸다고 또 엄마한테 대든다.
‘또또’ 네 이노~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