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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구와 인간 Jul 22. 2023

순수함과 야릇함 사이

당구장에서 ~ 8

단지 큐를 쥐었을 뿐인데 왜 내 가슴을 끌어당기는 것일까. 여성들이 당구 치는 모습을 바라보면 아름답다 못해 황홀할 정도다. 각을 재기 위해 요리조리 움직이는 율동적인 자태와 섬세함을 준비하는 초크 칠에서 오묘한 매력이 발산하고 있다. 분명 그 속에 남자들의 예민함을 자극해 보려는 기교도 숨어있을 터다. 엎드리는 순간부터 황홀함이 몰려오고 야릇한 상상과 함께 순수함이 교차되는 시간, 탁! 큐를 내뿜는다. 매체는 이를 놓치지 않고, 눈치챈 향기는 기량 못지않은 청순미를 마구마구 뽐내고 있다.


지금에야 스스럼없는 자연스러움이지만 담배 피우던 시절은 구경하기 힘든 장면이었다. 아주 드물게 여성들을 보긴 했지만 워낙 소수이다 보니 당구장에 있다는 것 자체로도 흉이 될 수 있는 여지를 남기곤 했었다. 그녀들도 주위를 의식해서인지 자세며 행동거지가 왠지 부자연스러울 정도였다. 하물며 남자들도 안 좋은 시각으로 바라보던 사회였는데 여자들이라고 오죽했을까 싶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호기심의 끈을 놓지 않았나 보다.


여성 당구는 일제강점기 *이 왕비가 즐긴 기록을 첫 페이지로 써내려 졌다. 전국으로 당구장이 퍼질 무렵 재료 홍보 차 일본여성 당구선수 **카츠라 자매가 내한했던 적이 있었다. 실력을 보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로 전차로가 막혀버렸단다. 기마경찰이 출동하는 소동도 일어날 정도였다니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실감 나게 한다. 호리호리한 처자들이 예술 당구를 거리낌 없이 쳐버렸으니 기절초풍할 노릇이었을 것이다. 남성들뿐이랴, 여성들도 당연한 호기심을 보이지 않았을까.



당구는 남녀에게 공평한 기회를 건네줬건만 당구환경이 여성들을 차별로 내몬 것 같다. ***‘겜돌이’(빌리아드 걸)의 등장 때문이다. 일본의 당구문화도 게이샤가 먼저 큐를 쥐었듯이, 이를 흉내 낸 상술로 보인다. 점수판을 헤아리는 일이 전부였지만 손님들과 당구 치기도 했단다. 당구장업의 성패가 겜돌이의 외모에 달렸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으니 그 비중을 미뤄 짐작해 볼 수 있겠다. 성희롱도 불 보듯 뻔했던 것 같다. 시대의 지성들도 퇴폐의 이미지를 공공연하게 다룰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화염병이 제조되는 와중에도 당구공은 구르고 있었다. 나라를 빼앗겼어도 제 갈 길을 찾아 나섰던 당구는 언제나처럼 묵묵히 영역을 확보해 나갔다. ****“우리는(여성) 당구를 칠 수 있다.”라는 구호에 힘입었을까, 종로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여성 전용 당구장’도 생겨났다. 애인 자격으로만 남성들의 출입이 가능했으며 직장여성과 여대생의 비율을 반반으로 수백 명의 회원이 즐겼다고 한다. 이슈를 모는듯했지만 최루탄소리에 세상이 떠들썩해지자 이내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잊히나 했더니 거센 물결이 밀어닥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둑이 터지자 포켓볼이 와르르 쏟아진 것이다. ‘포켓 전용구장’을 비롯하여 ‘스포츠 바’가 대 유행처럼 번졌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물결 위에 어디 이리 아리따운 여인들이 나타나는지. 아슬아슬한 자태에 눈 감출 곳 없어 설레던 시절의 추억들. 연이어 한국계 미국 포켓 선수 ******‘자넷 리’도 합세하여 유행을 모는듯했지만 그 열기는 이내 식어버렸다. 여성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엔 왠지 모를 아쉬움이 남아있었나 보다.


결국에는 금연이 정답이었다. *******당구장 금연정책으로 여성들이 최고의 덕을 보게 된 것 같다. 기껏해야 남자 손에 이끌려 호기심을 채우던 시절에서 스스로 문을 두드리는 계기가 되었다. 여성 동호인들은 계속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부모들이 바라보는 시각도 긍정적이어서 직업으로 삼아도 얼마든지 희망이 보이는 것 같다. 물론 수입 부분에서는 미약함이 없잖아 있지만 실력과 인기도가 비례한다고 보았을 때 좀 더 노력해야 할 부분이지 싶다.




* 매일신보와(1914.7.4.) 조선일보(1922.12.21.) 기사 내용이다. “왕비께서도 더위를 물리치기 위한 방편으로 매일 오전 10시에 내인들을 대동해 인정전에서 옥돌로 소요하시다가 오후 5시가 되면 돌아가셨다” “오후 4시쯤 간단한 다과를 들고 목욕을 한 뒤, 옥돌장으로 가서 공을 치신다.”

** 일본의 당구명가 가츠라 집안의 두 자매 마사코(1914년생, 당시 21세)와 노리코(18세)가 1930년에 내한했다. 훗날 언니 마사코는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대관식에 초청했을 정도로 유명 인사가 되었다. 당구의 영부인으로도 명성이 자자하며 유튜브에 영상이 남아 있다. 오늘날 구글에서 카츠라마사코 기념날( 2021.3.7.)이라며 캐릭터를 대문에 실을 정도다.

*** 1939.4.27. 조선일보에서 겜돌이 박경숙과의 인터뷰 내용 일부다. 한 게임당 팔 전이며, 제일 잘 치는 손님은 사오 백점. 여자 손님도 간혹 온다고 한다. “우리 껨도리의 일이란 이러케 손님들 치시는 다마의 끗수를 헤이기와 그것을 일일이전표에 쓰는 것뿐입니다. 그런데도 역시 직업이라 곤해요.”

**** 1974년 5.19 조선일보 “할 수 없는 것과 할 수 있는 것” 문화칼럼 내용 중 일부를 발췌했다.

****** 2021년 난소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2022년 그녀의 일대기가 미국에서 상영되었다. “Jeanette Lee VS”

******* 당구장 금연 법 : 2017년 12월 3일 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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