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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구와 인간 Jul 24. 2023

당구장에서 ~ 23

‘대한당구연맹’이 주관하는 국가대항전이 끝났다. “세계캐롬연맹” 공식 마케팅 업체가 주최하여 일등 상금이 일억이나 되는 시합이었다. 결승전에서 *신계의 네덜란드 선수와 인간계의 한국 선수가 맞붙었다. 신들의 실력답게 내리 삼승으로 우승이 확정되자 한국 선수는 앉은자리에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려버린다. 대한민국을 대표함에 대한 부끄러움인지, 내게로의 자괴감인지, 눈물의 의미가 어찌 되었든 국가의 후진성을 드러내는 행위임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신계의 선수는 작전승리였다. 치고 잠그고를(견제) 반복하자 난구를 풀어내려다 허우적거리면서 볼 장 다 본 결과였다. 실력보다는 파이팅으로 무장한 인간계 선수의 기세를 초반부터 꺾으려는 눈치를 엿볼 수 있었다. 인간계는 경험이 부족해서인지 초반부터 말려들기 시작했다. 견제구를 풀어내는 과정에서 수구가 적구를 터무니없이 벗어난다면 상대에게 기운을 북돋게 해주는 행위와도 같다. 이런 장면이 제법 연출되었으니 결과는 이미 예견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를 본 네티즌들은 난리다. 비겁하게 견제한다는 둥, 하수하고 치는데 꼭 그래야 하냐는 둥, 그렇게 이기고 싶으냐는 둥, 팔이 얼었다는 둥, 정신없는 비난의 연속이다. 해설자는 세이프티라는 용어를 유럽에서 사용한다면서 견제가 관용적이라고 다독이고 있다. 인정하자며 겸허히 받아들이자는 당연함으로 이해했다.


**이 땅에 스리쿠션 대회가 처음 열렸을 때 규칙이 아주 흥미롭다. 큐 미스는 득점 시 유효지만 훈수가 있을 때 무효로 간주했으며 견제구를 날려도 무효였다고 한다. 견제구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판단했는지는 모른다. 아마도 암묵적 강제성을 부여하지 않았을까. 무효임을 명시했던 당구문화의 흐름이 지금까지 이어져서일까, 동호인들끼리도 견제구를 밥상에 두고서 결론 없는 구차함을 두를 때가 허다하다.


난구가 닥치면 딱 두 가지 선택만 주어진다. 이 포지션을 어떻게 풀어내야 할까?라는 도전적 정신의 파이팅과 상대에게도 힘든 난구를 건네주기 위한 수비를 시도하게 된다. 난구를 풀어내고 싶은 맘 누구나 굴뚝같지만 만만한 일이 아니다. 설사 실력으로 풀어낼 포지션이 닥치더라도 긴장의 끈을 쉽게 놓지 못할 정도로 어렵다.

 

때에 따라서는 역으로 견제구를 시도하기도 하지만 주로 파이팅이 우선이다. 나 또한 역 견제구는 생각할 겨를 없이 눈앞의 것을 풀어내기에 급급하다. 뚝심과 실력이 뒷받침된다면야 주저 없이 역으로 견제구를 던져놓겠지만 인간계의 한계점은 딱 거기까지인 것 같다. 어떤 때는 의도치 않은 역 견제구에 안도감의 표정을 감추기도 한다. 그럴 땐 내 몸에 무게감을 싣고 표정 관리하기 바쁘다. 이 또한 기세를 뺏어오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견제당한 포지션을 두고서 편안한 스트로크로 풀어냈다면 상대의 기세를 당장 뺏어올 수 있다. 상황에 따라 강력한 힘이 되기도 한다. 적구를 아슬아슬하게 비켜나가더라도 아쉽지만 풀어낸 것이나 진배없다. 맞을 듯 말 듯 조마조마함을 공유했다는 자체만으로도 서로 간의 팽팽한 긴장감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물론 다음 포지션이 쉽게 펼쳐진다면 어찌할 도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시합에서는 실력 이전에 기싸움의 신경전도 중요하다. 멈추거나 빼앗길 틈 없이 동등하게 유지시키는 것도 내 기량의 한 부분이다. 기세가 넘어가는 순간부터 감춰왔던 약점들이 하나둘씩 드러날 수밖에 없다. 약점이 상대에게 읽힌다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당구공도 너무 쉽게 날 배신해 버린다. 그런 면에서라도 수비를 정당한 공격으로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실력의 우위는 자세와 스트로크에서 판가름 나지만 파이팅으로 무장하여 죽자고 덤벼들면 당해내기가 쉽지 않다. 아무리 신계의 선수라도 매번 견제를 완벽하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견제구를 풀어내는 것도 마냥 쉽지만은 않다. 그날따라 운 좋은 선수를 만난다면 해법 없을 정도로 게임 운영이 어려울 때도 있다. 황당한 키스에 행운의 득점이라도 터져버린다면 머릿속은 물론 뼛속까지도 띵 해오니 말이다.

 

이렇게 주고받는 과정은 마치 권투시합에서 잽을 넣는 행위와도 유사하다. 열심히 잽을 날리는 것은 상대 선수의 공격을 저지하는 목적과 허점을 파악하거나 유도하기 위함이다. 당구도 똑같다. 잽은 공격을 위한 방어 즉 견제구인 것이다.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 ‘신계와 인간계’ 우수한 선수가 하이런과 난구를 풀어내는 모습에서 신계라 일컫는 우리끼리의 예기다.

** 1969년 6월 조선일보. ‘대한빌리아드협회’ 주관으로 ‘제1회 쓰리쿠션 대회’가 개최. 전국에서 150여 명 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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