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단과 혼란을 지나, 나로 돌아가는 시간
“난 절대 퇴사를 후회하지 않을 거야.” 이미 내 감정에 답은 내렸지만,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된 자기최면으로 내 선택에서 불안을 지워내려 애썼다.
한 달, 두 달이 지나도 똑같은 일상은 내게 조바심만 안겼다. 아무런 변화 없이 흘러가는 시간이 무서워졌다. 그리고 절박하게 움직이지 않는 내가 싫었다.
사회에서 떨어져 나왔다는 불안이 나를 조용히, 그러나 서서히 잠식해 왔다.
도태될 수 있다는 두려움, 나에 대한 불확신, 초조함.
스스로 선택한 퇴사이지만, 그 안에는 나조차 몰랐던 온갖 감정의 잔해들이 잔뜩 웅크리고 있었다.
만약 내 월급이 내 삶의 발목을 잡을 만큼 높았다면, 나는 아마 퇴사를 선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연차에 비해 월급이 터무니없이 낮았고, 그만큼 잃을 것이 없었다. 주변 사람들은 내 연봉에 적잖이 놀라며 '네게 책임만을 맡기고, 가치를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 애쓰며 버티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라며 내 선택을 응원했다.
그래서일까. 잃을 것이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나를 더 자유롭게 만들었다. 인생 2막을 기대하며 사표를 던졌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할 용기도 충분했다. 회사에 쏟았던 열정을 내 인생에 투자한다면 더 가치 있고, 더 성공적인 결과를 만들 수 있으리라는 자신도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실체 없는 불안과 숨 쉬듯 싸워야 했다. 줄어드는 통장 잔고에서조차 자유롭지 못했다. 새로운 삶을 구상하면서도, 구직사이트 눈치를 보며 높아진 자격 기준과 나이의 장벽에 좌절하기를 반복했다. ‘단군 이래 가장 돈 벌기 쉽다’는 온라인과 ‘얼어붙은 구직 시장‘인 오프라인 삶의 온도차는 간극이 컸다. 그 속에서 괴리를 느꼈다.
내 삶의 ‘안정’이란 틀이 무너지면서, 그 틀을 의지해왔던 나도 무너질 것만 같았다. '소속'이란 울타리 없이 세상 밖에 홀로 선다는 건, 넓은 평야에 나 혼자 남겨진 듯한 공허한 기분이 들었다. 갑자기 사회적 부모가 사라진 느낌이었다. 해야 할 것은 많은데, 무엇부터 손대야 할지 몰라 멈춰 섰다. 내 삶의 중심이 ‘회사‘에서 ’나‘로 바뀌는 과정에, 생각보다 많은 감정이 동반됐다. 그중 ‘훅’ 치고 들어온 감정은 불확실이 가진 불안이었다. 그 감정은 나를 쥐고 흔들었다.
감정의 소용돌이는 생각보다 거셌다. 상황에 따라 예상치 못한 감정들이 각기 다른 이름표를 달고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이직 없이 나오는 퇴사,
번아웃으로 인한 퇴사,
자발적 퇴사.
내게 퇴사는 분명 정답이었다. 허나 공통적으로, '다음 행선지'를 정하지 않은 유형의 퇴사에는 항상 불안이라는 감정이 따라붙는다. 필수옵션인 것은 알았지만 감정의 크기는 간과했다.
흔들리기 싫었지만, 내가 의도했던 대로 일상이 흐르지는 않았다. 나 역시 하고 싶은 건 많았지만, 정작 무엇을 선택할지 구체화시키지 못한 상태였다.
의연한 척 매 순간 나를 다잡으면, 육아라는 또 하나의 일상이 나를 흔들어 놓았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날이 반복되자, 기다렸다는 듯 불안함과 초조함이 틈을 타고 스며들기 시작했다.
나는 감정과 직면해야 했다. 내가 단순히 감정의 도피처로 ‘이직'을 선택하지 않고, 사회활동을 회피하게 하는 무기력함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내 근본적 불안감을 해소하고, 내 감정을 손에 쥐고 싶었다.
불확실성은 언제나 사람을 초조하게 만든다. 난 불확실한 내 미래에 투자했다. 그렇기에 그 선택을 한 나를 믿고 싶었다. 그 믿음을 위해, 내 감정을 마주하고 내 본질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내 삶 위에 나를 세울 수 있다는 작은 확신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내 감정을 더듬었다. 타인의 기준으로 평가받는 삶이 사라지자, 꺼림칙하게 남아있던 내 안의 감정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나는 꽤 오랜 시간 스스로에게 물었다.
"내가 회사로부터 채웠던 감정은 뭐였지?"
"나는 나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있나?"
"지금 내 감정 덩어리는 대체 뭐지?”
이전 원고를 발행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나에게 계속 되물었다.
답은 ‘인정욕구’에 대한 강박이었다.
다만, 욕구의 형태는 좀 달랐다.
나는 타인의 인정을 통해 끊임없이 ‘내가 잘하고 있다는 확신’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타인에게 존재를 인정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단지 내 자기효능감을 확인하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다.
그 반복된 과정 속에서 내가 얻은 건 ‘자기확신’과 ‘존재의 안정성’이었다. 그 안식은 중독처럼 나를 옭아맸고, 결국 오랜 시간 회사를 떠나지 못하게 했다. 그렇게 나는 비로소 회사를 떠나지 못했던 내 감정의 뿌리를 마주했다.
내 감정에 이름표를 붙이고 난 후, 나는 마침내 알게 됐다. 타인을 거울삼아 나를 증명하고 싶었던 건, 결국 스스로에게 “이만하면 괜찮다”라고 전하기 위한 내면의 확신이었다.
그래서 내 정서적 버팀이었던 제3자의 인정이 사라진 지금, 그 빈자리에 불안이란 감정이 마치 ‘회사 금단증상’처럼 찾아온 것이었다. 채워지지 않던 갈증의 원인은 결국 나였다.
난 더 이상 내 감정의 뿌리를 외면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 인정욕구의 형태는 '사랑받고 싶었던 내가 나를 사랑하려 애쓴 방식'이었다는 걸 이해하게 됐다. 누군가의 인정 속에서, 나는 결국 나 자신을 끌어안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제, 그 갈증을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했다. 그건 내가 나를 놓치지 않기 위해 만든 나만의 생존방식이었으니까.
감정을 직시하고 나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이 모든 감정들은 지금껏 내가 나로 살아내기 위한 과정이었고, 본질로 향하는 힌트였다.
이제는 스스로에게 높이 세운 평가의 잣대를 낮추고, ‘그렇게 하지 않아도, 성과 없이도 존재 자체로 괜찮은 나'로 나를 바라봐야 했다.
드디어, 나는 이제 오래된 자기 방어와 작별하고, 내 감정을 수용할 준비를 마친 거 같다.
퇴사는 끝이 아니었다. 오히려, 나라는 사람을 진짜로 만나는 첫 장면이었다.
지금도 나는 여전히 흔들린다. 완벽하게 나를 믿는다고 말할 순 없다. 하지만 이제는 그 흔들림조차 나라고, 그런 나조차 괜찮다고 받아들인다.
타인의 인정을 완전히 내려놓았다는 뜻은 아니다.
그건 인간이라면 누구나 품는 욕망일 테니까.
다만, 그것이 더는 나를 증명하는 방식이 되진 않는다는 것. 그 진실을 나는 이제 안다.
그리고 불안의 실체를 마주하고, 그 감정을 수용하기로 한 순간부터 나는 조금씩, 내가 되어갔다. 그렇게 난 감정 너머에 있는 나를 매일 조금씩 회복해 가는 중이다.
불안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
그리고 그건, 내 생각보다 훨씬 괜찮은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