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나만 멀어졌다

달라진 건 사람들일까, 나일까

by 움직이는케이

퇴사 후, 천천히 자리 잡고 있는 일상과 달리 사람들과의 거리는 생각보다 빨리 멀어졌다.


회사 밖으로 나온 순간, 내 흔적은 사라졌다.

더 이상, 그 조직의 중심에 나는 없었다.


그걸 알면서도, 동료들이 힘든 상황에 놓일 때면 마치 내가 여전히 그 팀의 책임인 것처럼 마음을 졸였다.


참 모순적인 행동이다. 그 역할을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전가하고선 손은 놓지 못하고 있다니.


아꼈던 사람들이었다.

막판까지 퇴사를 고민하게 하던 사람들이었다.

함께 울고 함께 버티고, 함께 웃던 관계였다.


그런데 그들의 미묘한 언행이 어느 순간 내게 상처가 되기 시작했다.

의도한 건 아니라는 걸 안다. 힘에 부쳐서 그랬다는 것도 안다.


그럼에도, 괜찮지 않았다.

나도 상처를 받는 사람이니까.



나는 더 이상 화자가 아니었다


퇴사 전날까지도 건네받았던 말들은 따뜻했다.

그 말의 유효기간을 알면서도, 나는 괜찮을 줄 알았다.


그러나 관계는 내가 아니라 그들이 결정하는 것이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걱정하는 나를 향해 보이지 않는 벽이 세워졌음을 느꼈다.

이미 '지나간 사람'이라는 무언의 날 섬이었다.


“신경 쓰지 마, 내가 알아서 할게. 근데 문제가 생기면 네 탓으로 돌리고 싶어”


상대의 의중이 담긴 마음의 소리가 가슴을 후볐다.

당연한 직장인의 순리라지만, 말 못 할 허탈함과 서운함이 스쳐갔다.


필요할 때만 나를 찾는 관계로 변했지만,

희한하게 무게와 책임은 여전히 내가 지고 있었다.


퇴사 후 자유가 어색했던 것처럼

퇴사 후의 인간관계도 어색해져 갔다.


하지만 난 곧 깨달았다.


관계를 이어가려고 애쓰는 것도, 그 관계 속에서 내가 ‘쓸모 있는 사람’으로 남고 싶어 했던 것도, 결국은 외로움 때문이었다.


내 선택이었지만, 함께 하던 관계에서 정리된다는 것은 생각보다 고독했다.




퇴사 후, 관계의 거리두기


회사의 일상은 언제나처럼 돌아갔고, 그들은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현재진행형(ing)으로 살고 있다.

동행을 끝내고 회사의 '과거'가 되기로 한 것은 나였다.


회사원의 이야기는 회사로 시작해서 회사로 끝난다.

나는 시작할 얘기가 더 이상 없으면서 왜 자꾸 공감을 자처하고 있었을까.


왜 나는 퇴사 후에도, 필요로 할 때만 찾는 그들의 연락에 칼같이 답장하고, 조언하고, 진심으로 걱정했을까.


그들이 힘들어도 이제는 대신 싸워줄 수 없고,

떠난 자리를 다시 메워줄 수도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이미 답은 정해져 있었다.


멀어져야 하는 건, 나였다.

외로움에 익숙해져야 하는 것도 나였다.




쓸모없는 사람이어도 괜찮다


회사를 떠난 나는 일을 해결해 주는 해결사도,

화자(話者)도 청자(聽者)도 아니었다.


내가 과거에 팀장으로 알려주던 말들은 이제 잔소리란 이름의 오만에 불과했다. 그들에게 필요한 답만 내뱉는 게 허락됐다.


나는 내가 쓸모없는 사람이 되는 게 두려웠던 것 같다. 관계가 끊어지고, 잊히고, ‘이제는 필요 없는 사람’이 될까 봐 겁이 났다.


하지만 그 두려움의 밑바닥에는 ‘계속 인정받고 싶었던 욕심’이 숨어 있었다는 걸, 조용한 시간 속에서 깨달았다.


그래, 인정하자.

거기서의 내 쓰임은 다 했다. 지금은 쓸모없는 사람이어도 괜찮다.




나를 위한 관계의 재정비


이제는 안다.


퇴사 후 진짜 자유는 시간이 많아진 데서 오는 게 이니라, 관계를 정리할 용기가 생길 때 찾아온다는 것을.


바보 같은 소리일지 몰라도, 퇴사를 위해 포기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인간관계’였다.


회사라는 공감대가 빠지고 나면, 관계가 변할 거라는 건 어느 정도 예상했다. 알면서도 참 쓰렸다.


회사에는 미련이 없었지만, 좋아하던 사람들과 멀어지는 현실을 받아들이기까지 두 달쯤 걸렸다.


회사 사람들과의 관계도,

소중했지만 이제는 멀어져야 했다.


그리고 그 관계 속에서, 괜찮은 척하지 않아도 되는 나로 살아야 했다.


‘퇴사 후에도 여전히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 스스로를 지치게 하던 시간은 끝났다.


이제는 필요할 때만, 가능한 만큼만,

그것도 내가 원할 때만 마음을 열기로 했다.


그게 나를 지키는 방법이었다.




사실, 나를 되찾기 위해선

스스로 멀어질 용기가 필요했다.


퇴사 후, 나만 멀어진 줄 알았는데,

결국 멀어져야 했던 건 나였다.


외로움에 익숙해지고, 스스로 거리를 두는 연습을 해야 했다.


언젠가 이 시간을 웃으며 추억할 날이 온다면,

그때 관계를 다시 시작해도 늦지 않을 테니까.


그러니, 이제는 여기서 놓기로 한다.


그리고 비로소,

퇴사 후 진짜 자유가 시작되었다.


이제야 나는 깨달았다.


나는 누군가의 필요가 아닌,

‘나의 필요’를 위해 존재해야만 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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