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첫날, 자유는 어색했다

특별하지 않아도 돼

by 움직이는케이

“나, 이제 진짜 끝난 거야?”


휴대폰 알람은 울리지 않았는데, 7시도 안 돼 눈이 떠졌다.

그런데 이상하게, 다시 잠들 수가 없었다.


어안이 벙벙했다.


무거웠던 발목 족쇄가 풀렸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노비 같았다.

출근 준비가 필요 없어진 건 좋은데 솔직히, 뭘 해야 할지 몰랐다.


허무했다.


부랴부랴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돌아오자, 집은 너무 조용했다. 커피를 내리고 식탁에 앉아, 여유롭게 한 모금 마셨다.


매일 아침 정신 차리려고 입에 털어 넣던 커피가 아니라,‘내가 끓이고, 내가 마시는 커피 한 잔’이었다는 게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딱 그 정도였다.


회사 동료들의 카톡으로 이야기는 계속됐고,

전 직장의 소식은 여전히 내 관심사였다.


아직 회사와 이어진 느낌이었다.




그러다 문득, 움직이자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서는 퇴사 후 한 달은 푹 쉬라고 했지만

가만히 있으려니 더 초조했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쉬는 거지?”


내가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집 청소를 하고, 잠들었던 모임 카톡방에 인사를 남기고, 미뤄둔 약속을 닥치는 대로 잡았다.


계속 생산적이고 싶고,

게을러지기 싫었다.


‘퇴사했다고 해서 세상과 끊기면 안 돼.’

이 조급함이 나를 움직였다.


퇴사 전엔 회사가 전부였고, 그 텐션으로 하루하루를 살았다. 그 텐션이 끊기면 내가 무너질까 봐 두려웠다.


나는 ‘사회 속 내 모습’을 잃고 싶지 않았다.



I 그렇게 14일,


딱 2주가 지나서야 내 숨이 가라앉았다.

애달프던 마음이 차분해졌다.


이제는 내 알람으로, 내 리듬으로,

내 하루를 살아도 된다는 걸 몸이 조금씩 알아갔다.


하루는 음악을 켜고, 노트북을 열어

내가 쓰고 싶었던 글을 썼다.


글을 쓰는 내내, 가슴이 이상하게 벅찼다.


예전엔 분노와 억울함으로 가득했는데,

마음 한편에 작은 환희가 자리 잡았다.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해방감.

원하는 방향으로 시간을 채운다는 행복.


그게, 이렇게 빠르게 찾아올 줄 몰랐다.




I 특별하지 않아도 괜찮아


퇴사 전엔 회사를 나가면 ‘나의 가치’가 떨어질까 두려웠다.

퇴사 후엔 하루하루가 특별해야만 할 것 같았다.


하지만 퇴사 후 현실은 너무나 똑같았다. 내 가치 또한 말이다. 그리고 난 보통의 일상 속에서 미처 보지 못했던 소중함을 찾았다. 내 인생의 조각들이었다.


회사 다닐 때 새로운 시작이 두려웠다면, 지금은 이 순간을 버티며 내 자리를 찾아가려는 의욕이 생겼다.


예전부터 관심 있던 브런치도 다시 시작했고, 투자 공부도 시작했다.

눈팅용 인스타그램에 저장해 두었던 영상과 릴스도 하나씩 꺼내 보며 머릿속에 입력하기 시작했다.


관심은 있지만, 내 것으로 만들 기력 없던 지난날을 뒤로한 채 조금씩,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I 긴 호흡으로 나를 찾아가는 일


나는 이제 내 시간을, 내 삶을, 나답게 채워가기로 했다.


우물 밖의 세상은 생각보다 무섭지 않았다.

그리고, 생각보다 훨씬 기회가 많아 보인다.


시야를 넓히고, 관점을 바꾸면

내 세상은 달라질 수 있다.


직장에서 버티며 살 땐

세상 밖으로 나오는 게 왜 그렇게 두려웠을까.


무언의 불안함이 해소되고,

'나'라는 사람을 정리하는 시간을 보내며

그렇게, 나는 나를 들여다보고 있다.


족쇄가 풀려도 갈 곳 없이 방황하던 노비는

이제 한숨 크게 고르고,

세상을 향해 한 걸음 내딛기 시작한다.


퇴사 후의 하루,

그것은 내 인생의 리셋 버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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