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수능 1등급의 시작은 사탐부터 끝내야
by
Plato Won
Apr 15. 2020
선글리스를 멋을 위해서 기능만을 보고 디자인만으로 선택한다면 본래의 목적인 자외선 차단이 안 돼 백내장이 빨리 온다.공부의 이치도 이와 같다.
영어 ,수학 교육회사 대표가 공부의 핵심이
영,수가 아니고 사회탐구영역이라고 하니
의아하시죠?
이 글이 끝나면 충분히 이해가 되실 것이니
걱정 마시고 따라와 보세요.
초중고 공부는 최종 목적인 수능을 위해
달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점에 가면 공부 잘하는 방법이 넘쳐난다.
수만 가지의 방법이 넘쳐나지만 핵심은 일관적이다.
핵심만 정리한다.
공부는 문해력이 핵심이다.
스스로 글을 읽고 문장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문장 해석 능력이 되어 있어야 공부를 잘할 수 있다.
문해력이 되면 논리력, 추론 능력이 향상된다.
문해력은 수능 핵심 과목의 수능 국어와 논술,
영어 지문 해석의 배경지식에서 핵심 역할을 한다.
아무리 공부해도 1등급이 안 된다면 초중 때
문해력이 안 갖춰져있다고 보면 된다.
문해력 중에서도 단순 독서는 아니다
.
인문고전 중 윤리와 사상철학을 독서하게 되면
논리력, 추론 능력이 일취월장한다.
수능 수학의 핵심인 논리, 추론 능력이 갖춰진다.
수능 준비 때 국, 영, 수 핵심과목은 초중 내내
준비하지만 인문고전 독서가 안 되어 있다면
사회탐구영역에서 고생하고 시간도 엄청 잡아
먹는다.
독서가 안된 상태에서 소크라테스, 플라톤, 베이컨,
데카르트, 흄, 칸트, 니체 등의 어려운 철학 사상들이
마구 쏟아진다. 개념 없이 암기하니 시간도 많이 잡아
먹고 1등급 학생들도 만점이 잘 안 나오는 과목이
된다.
대부분의 학생, 학부모님들은
영어, 수학, 국어, 사회탐구로 초중고등 학원에
순차적으로 자녀를 보내고 수능 대비를 한다.
반대다. 반대로 가야 한다.
사회탐구 영역의 윤리와 사상부터 준비한다고
생각하고 그냥 독서가 아니라 인문고전 독서를
시작하면 수능 사탐은 초중 때 완벽 완성된다.
인문고전 독서로 문해력이 생기고 그 문해력은
수능 국어, 논술에 기본기를 제공하고 수능 영어
긴 영어 지문 속독 직해가 가능해 진다.
인문고전 독서는 논리적 추론적 기술로 쓰인
문장이 가득하고 은유와 도치, 반어법적 문장이
주를 이루므로 수학의 논리적 추론적 능력이
완성된다. 수능 수학의 핵심 능력이다.
수능 1등급에 도전하고자 한다면, 공부에 한이
맺힌다면 시작은 수능의 사회탐구 영역을 준비
한다는 심정으로 초등 때부터 인문고전 독서에
심취해야 한다.
그것이 공부 잘하는 천기 비법이다
ᆢ ᆢ ᆢ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수능 대비 사회탐구영역
9개 과목 중 2과목을 선택해야 한다.
생활과 윤리, 윤리와 사상, 사회문화를 가장 많이
선택한다. 세계사, 한국지리, 법과 정치, 경제보다
는
윤리가 쉽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공부를 시작하면 초등학교에서 배웠던 생활 도덕
과는 차원이 다르고 알쏭달쏭한 문제들이 많고
공부를 아주 힘들게 해도 만점이 잘 안 나온다.
왜 그럴까?
윤리적인 문제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내가 어떤 행위를 하는 것이 옳은가의 문제다
흄은 동정심의 윤리학을 이야기했고,
셸러는 동정심에
사랑이라는 감정을 포함시켰다.
그러나 이러한 감정들은
개인의 변덕 혹은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양상으로 드러나는 문제점이 있어
칸트는 윤리를 변덕에 노출되어 있는 수동적인
감정 차원이 아니라, 감정이 변할지라도
항상 그
보편성을 유지할 수
있는 도덕 법칙의 차원에서
정당화하려고 노력했다.
"너는 네 의지의 준칙에 의거하여 자기 자신을
동시에
보편적 입법자로서 간주할 수 있도록
그렇게 행동해야만 한다."
칸트의 <도덕 형이상학 원론>에 나오는 말이다.
이것은 우리가 선택한 결정과 행동들이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도 허용될 수 있는
그런
방식으로 이루어져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떠한 딜레마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할지 행동
준칙이 자기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도 통용
되는지 점검해서 실천하는 사람, 이를 칸트는
자율적 주체라 했다. 준칙을 만든 것도 자신이고
그것의 보편성을
점검하는 것도 자신이고, 마침내
그것을 행위로 옮기는
것도
바로 주체인 자신이기
때문이다.
칸트는 동정심에 근거한 윤리적 행동이 보편적일
수 없다는 결론으로 윤리적인 결단이 어떤 상황에서
나는 내가 아닌 다른 누구라도 선택할 수 있는 그런
보편적
법칙을 수립하고 바로 그 보편적인 법칙에
따라 행동해야만 한다고 보았다.
바로 이것이 칸트가 순수한 이성 법칙에 의해
행위들이
직접 규정된다고 말한 이유이고 이
때문에 칸트의
윤리학을 자율의 윤리학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내가 만든 도덕 법칙을 내가 따른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타율이 아닌 자율이라고 했다.
그러나 여기서 프로이트는 내가 만든 자율의 도덕
법칙이나 도덕 의지의 작용이 주체의 자유에 입각한
것이
아니라, 내면화된 검열 구도, 즉 초자아의
기능에
불과하고 이 초자아는 본질적으로 다른
이로부터
넘겨받은 과거의 영향을 대변할 뿐이라고
반론을
제기했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마음은 이드-자아-초자아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드가 인간의 신체에서 기원하는
본능의 힘을 상징한다면 초자아는 인간의 사회성
에서
기원하는 문명의 힘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의 자아는 이드라는 생물학적 과거와
초자아라는 문화적 과거에서 영향을 받으며,
동시에
현실에서는 실재의 요구를 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프로이트가 말한 실재의 요구는 자아가 현실에서
만나서 타인의 사건들이 우리에게 가하는 압력을
의미하는 것이다.
프로이트의 지적이 타당하다면,
주체의 내면에 도덕적 의지나 양심의 가책이 발생
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반드시 주체가 자율적으로
선택한 것이라고 볼 만한 증거가 거의 없다.
도덕적 의지나 양심의 가책은 초자아의 기능에
불과하며, 초자아란 부모, 가족, 선생님 등 과거
세대의 요구가 자신의 마음에 내면화되어 형성된
흔적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 내면에 생생히 울러 퍼지는 양심의 소리란
사실 단지 과거에서 흘러나오는 낡은 유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되고, 그렇게 되면 칸트가 자율적
으로 입법할 수 있다는 윤리 주체라는 주장은 매우
당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게 된다.
사례를 통해 요약한다.
거리에 걸인이 있다. 어떤 지성신이 지나가다
이를 불쌍히 여기는 동정심이 발생한다고 치자.
흄의 동정심 윤리학을 적용하면 이 지성인은
자연스럽게 동정심이 발현하고 이성이 작동해서
도와주려는 마음이 생겨서 돈을 놓고 간다고 하자
흄의 동정심 윤리학은 이 지성인이 돈을 놓고 가는
윤리적 행위의 출발은 지성인의 내면에 자연스럽게
발현되는 동정심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마침 이 걸인이 지성인의 집안과 원수
지간의
집안 자손이라고 가정하면 이 지성인은
걸인에게 동정심이 일으나 지 않을 수 있다.
이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셸러는 흄의 동정심에
사랑이라는 정념을 추가시킨다. 사랑하는 감정이
더 있으면 동정심이 더 발현된다는 것이 셸러의
생각이다.
그러나 칸트의 입장에서 살펴보면 흄이나 셸러의
동정심 윤리학은 작위적이다. 이유는 지성인이
걸인에게 동정심이나 사랑의 감정이 들었다고
하더라도 이성이 돈을 놓고 가면 걸인은 나약해져
영원히 걸인이 될 수 있으므로 도와주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이 되면 이성은 동정심이라는 정념의
훼방꾼이 된다. 이를 이성은 정념의 노예일
뿐이라고
칸트가 공격하는 것이다.
따라서 칸트는 어떤 상황에서도 보편적인 나만의
내면의 도덕 법칙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식인의 내면에 도덕 법칙으로 걸인을 도와주는
조건은 열심히 살려다가 어쩔 수 없이 걸인이 된
사람으로 한정하고 알코올 중독자는 돈을 주면 다시
그 돈으로 술을 사서 마셔서 알코올 중독을 심화
시키므로
제외한다는 도덕 법칙을 정했다고
가정하자.
이 도덕 법칙은 자신의 행동 준칙이기도 하지만
보편적으로 타인도 받아들일 수 있는 행동 준칙이
될 수 있다. 이를 칸트는 스스로 주체가 되어 자율적
으로 정해졌다고 해서 자율의 윤리학이라 했다.
그러나 여기서 프로이트는 이는 자율의 윤리학이
될 수 없고 타인의 입김이 들어있다고 반론을 제기
한다.
프로이트가 봤을 때, 칸트의 자율의 윤리학에서
만들어진 내면의 도덕 법칙은 그 개인의 태어나
살아오면서 부모나 환경의 지배를 받아 형성된
특성이므로 엄밀히 말하면 타인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으므로 이는 타율의 윤리학이라고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철학은 정의를 주제로 다루는 학문이다.
정의는 개인 차원에서는 윤리이고 공동체 차원
에서는
정치의 영역이 된다.
윤리나 도덕심이 태초에 어디로부터 발현되는지
오로지 자신의 내면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지
타인의 간섭을 받는지, 내면에서 나온다면 내면
의 감정에 세 나오는지, 이성적 사고에서 나오는지
를 철학적으로 고찰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공동체 개개인의 도덕과 윤리적 행동이 모여야
공동체 전체가 행복해지기 때문이다.
법률은 우리 사회가 지켜야 한 최소한의 제약이다.
법률을 지켰다는 것이 도덕적이거나 양심적이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나의 내면의 양심과 도덕 준칙은 어떤 모습이고
어디서 발현되었을까?
고등학교 윤리 시간에 흄과 쇼펜하우어, 셸러,
칸트, 프로이트의 철학을 배우는 이유를 사유하고
질문해 볼 일이다. 이것을 수능에 윤리와 사상,
생활과 윤리, 사회문화에 문제로 다 녹여내야 하니
어렵고 힘든 것이다.
대치동 학원가에 일타강사가
이런 심오한 생각을
가르쳐주지는 않는다.
Plato Won
keyword
글쓰기
윤리학
인문학
6
댓글
댓글
0
작성된 댓글이 없습니다.
작가에게 첫 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브런치에 로그인하고 댓글을 입력해보세요!
Plato Won
인문・교양 분야 크리에이터
소속
지앤비패럴랙스교육
직업
CEO
글은 작가에 의해 쓰여지지만 그 글을 사유하고 질문하는 누군가에 의해 서서히 완성되어 간다. 지식이 범생이의 모범답안지에 기여하기보다는 야성적 충동가의 혁신도구이기를 바라며 ~~
팔로워
899
제안하기
팔로우
작가의 이전글
도덕과 양심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과학 혁명은 사변적인가? 혁명적 단절인가?
작가의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