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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간 길이 미끄러운 길이었으나 낭떠러지는 아니었다.
by
Plato Won
Jun 18. 2020
링컨이1863년 게티즈버그 연설문이 2020년 6월 18일 새벽 3시 Plato Won의 판교 상현재로 소환 되다.
"나는 천천히 걸어가는 사람이다.
그러나 결코 뒤로는 가지 않는다."
미국 남북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흑인 노예를
해방시킨 에이브러햄 링컨의 이야기다.
링컨은 구두 수선공의 아들로 태어나
어린 시절
정규 교육을 9개월 밖에 받지
못했다.
그러나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앞으로 나아갔지만 평생에 걸쳐
실패와 마주쳐야
했다.
그는 무려 8번이나 선거에 패배했고,
두 번이나 사업에 실패했다. 링컨은 돈을
벌 겸 독립하려는 생각으로 집을 나와 미시시피
강을 따라 루이지애나로 간 뒤 그 후 우체국장,
뱃사공, 측량기사, 프로레슬러 등을 전전하다가
사업에 실패하고 1832년 치른 일리노이 주 의원
선거에서도 13명 중 8위로 낙선했다.
이듬해 그는 또 사업에 실패해, 이 두 번의 사업
실패의 빚을 갚는 데만도 17년이 걸렸다.
그러나 독학으로 간신히 변호사 자격증을 따고
1834년 주 의원 선거에 다시 출마해 당선하며
서서히 정치생활을 시작하였으나 계속해서 주
의장 선거, 연방상원의원 선거에 연거푸 낙선
하였고, 1856년 부통령 후보 경선에서도 낙선
하였다.
그러나 선거에서는 낙선하였으나 노예문제에
대해 단호히 반대 입장을 밝혀 노예제 반대 입장
을 대표하는 정치인으로 우뚝 서게 된다.
"악어와 흑인이 함께 한다면 나는 흑인을
도울 것이다. 하지만 백인과 흑인이 함께
있다면 백인을 돕겠다."
대선 연설에서 상대편 후보인 스티븐 더글러스
가 행한 연설이다.
"노예 정책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이 세상에 잘못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A가 B보다 크거나 같고, B가 A보다 크거나
같다면 A와 B는 같아야 한다.
같은 논리로 백인이 흑인을 피부색이
검었다는 이유로 노예로 삼을 수 있다면,
흑인은 백인을 피부색이 하얗다는 이유로
노예로 삼을 수 있다. 따라서 흑인과 백인은
동등한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
그 유명한
1863년에서
행한 게티즈버그 연설이다.
링컨은 지금도 미국인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이다. 그가 이토록 추앙받는 이유는
그의 일생이 영웅적이고 인도주의적 행보
,
그리고 거룩한 희생정신이기도 했지만
하나의 미국을 완성했기 때문이다.
조지 워싱턴이 물려준 미국은 주끼리 이해관계
가 맞지 않으면 언제든지 해체할 수 있는 연맹
이었다면, 링컨이 물려준 미국은 하나의 나라이자
운명을 같이하는, 진정한 '미합중국, The United
States'였던 것이다.
"내가 걷는 길은 험하고 미끄러웠다.
그래서 나는 자꾸만 미끄러져 길바닥 위에
넘어지곤 했다. 그러나 나는 곧 기운을 차리고
나 자신에게 말했다.
'괜찮아, 길이
약간 미끄럽긴 하지만
낭떠러지는 아니야'."
링컨이 내디딘 앞길은 꽃길이 아닌 미끄러운
길이었다.
우리의 길도 항상 꽃길이 아니라 미끄러운 길일 수
있지만 낭떠러지는 아니다.
"
GnB가 Parallax를 옥색이 아니라고
무시할 수 없듯, Parallax도 GnB를 붉은색이
아니라고 무시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GnB와 Parallax를 동격으로 존중해서
억압적 공부방법으로
핍박 받는 대한민국
교육을 해방시켜야 할 역사적 소명을 타고
났다. 우리의 인생이 유의미한 인생이라면
우리는 이 임무를 완수한 이유 때문이다."
이것이 그 유명한 새벽 3시 판교에서
행해진 Plato Won의 자뻑 독백이다.^^
"힘내라 대한민국,
힘난다 'GnB'& 'Parallax' "
Plato 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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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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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to 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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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작가에 의해 쓰여지지만 그 글을 사유하고 질문하는 누군가에 의해 서서히 완성되어 간다. 지식이 범생이의 모범답안지에 기여하기보다는 야성적 충동가의 혁신도구이기를 바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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