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그리는 꿈을 꿨고 비로소 나는 내 꿈을 그렸다

by Plato Won
고흐의 귀에 붕대를 감은 자화상,고흐는 고갱과의 불화로 정신적 발작을 일으켰고 면도칼로 자신의 귀를 잘라버렸다.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이 작품은 고흐가 생레미 생폴 정신병원에서 그렸다.
고흐의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에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나는 다시 일어날

것이다. 깊은 절망 속에서 던져두었던 연필을

다시 쥐고 계속 그림을 그릴 것이다."


네덜란드 후기 인상주의 화가인

빈센트 반 고흐가 절망의 순간에 스스로에게

다짐하며 한 말이다.


고흐는 살아생전에 불운과 실패의 일생을

보냈지만 사후에 가장 빛나는 영에를 누린

화가이다.


고흐 생전에 판매한 그림은 <붉은 포도밭>

단 한 작품이었으며 동생 테오에게 생활비를

지원 받기도 하고 돈이 없어 물감을 먹기도

하였다.


고흐는 그의 전 작품, 900여 점의 그림과

1100여 점의 습작들은 정신질환을 앓고

자살을 감행하기 전의 단지 10년 동안 모두

만들어냈다.


"시작은 그 무엇보다 어렵지만 계속해

나간다면 모든 것이 잘될 것이다."


그는 생존기간 내내 성공을 거두지 못하다가

사후에 비로소 인정받았다.

고흐의 씨 뿌리는 능부,고흐의 초창기 작품으로 밀레의 씨 뿌리는 농부를 토대로 묘사하여 그린 작품

고흐는 1853년 네덜란드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마을학교에 입학했으나 기숙생활에 적응하지

못할 정도로 내성적이었다고 한다.


가난으로 15세 때 학교를 그만두었고 16세 때

삼촌의 권유로 헤이그에 있는 화랑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고흐가 영업 활동을 할 때,

손님들과 그림에 대한 관점 차이로 자주 언쟁을

벌인다는 이유로 해고를 당하자 실의에 빠진

고흐는 그동안 계속해 온 습작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리는 일에 몰두하며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나는 내 그림을 그리는 꿈을 꿨고

그리고 나는 내 꿈을 그린다."


고흐는 초반에 자신이 동경하던 화가들의

그림을 습작하며 그림 실력을 쌓았다. 고흐

자신이 경탄해 마지않았던 옛 화가들의 그림을

자세하게 살펴보고, 그중의 몇 개의 작품들을

모사함으로써 미술에 대한 지식과 재주를

독학으로 익혔다.


드로잉에 관한 기초 지식이 부족했던 그는

5세 아래의 미술학도에게 드로잉을 배웠고

유화를 그리게 되면서 본격적인 미술 수업을

받았다. 하지만 고흐는 과격한 성격으로 자신을

향한 어떤 비판도 받아들이지 않았고 작은 충고

에도 심각한 상처를 입곤 했다.


고흐는 언제나 그림을 그릴 때 노동자, 농민 등

하층민의 생활과 풍경을 그렸다. 고흐는 밀레처럼

농촌의 애환을 그리는 농민화가 되고 싶어 했다..

그래서 구차하고 조악한 농부들의 일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함으로써 그림에 진실을 담으려 했다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조악한 농부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농민 화가를 꿈꾼 고흐

고흐는 아를에서 화가 공동체를 만들자고 제안

했는데 이 제안에 유일하게 응했던 사람이

폴 고갱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성격 차이와

그림에 대한 관점 차이로 자주 다투었다.


고갱의 회고에 의하면 고흐는 면도칼을 들고

자신을 노려보며 나타나서 자신을 찌를 듯해

보였지만 노려보기만 하고서 나가버렸다고

한다. 그 뒤 귀를 잘라버린 모습으로 나타난

고흐가 잘라낸 귀를 창녀에게 건네주었고

창녀는 기겁하여 경찰에 신고했다고 한다.


"나는 삶에 어떠한 확신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별을 보는 것은 언제나 나를 꿈꾸게

한다."


아를 시립병원에서 입퇴원을 반복하다

고흐는 물감이나 석유를 먹으려 드는 발작

증세를 보였고 동생 테오는 형이 그림을

그릴 만한 생레미의 생폴 요양원에 고흐를

입원시켰다.


"나는 내 심장과 영혼을 그림에 쏟아부었고,

그러면서 미쳐갔다."


고흐는 생레미 요양원에서 퇴원하자 동생

테오는 형이 지낼만한 장소를 물색하여

파리에서 가까운 작고 조용한 시골 마을인

오베르를 추천받아 형을 보내게 된다.


1890년 7월 27일, 고흐는 결국 쇠약해진

몸과 정신을 이겨내지 못하고 권총으로

자살하여 생을 마감하였다.


"평범한 길은 포장도로와 같다.

걷기엔 편할지 몰라도 꽃을 피우진 못한다."


고흐의 일생은 포장도로가 아닌 비탈길

이었다. 어릴 때 가난으로 학업을 포기해야

했고 내성적인 성격으로 힘들게 사회생활

을 하며 미술도 거의 독학으로 마스터했다.

정신병원을 전전하며 살아생전 단 한 점의

그림만 팔렸을 정도로 궁핍한 생활을 이어

갔고 자신의 귀를 스스로 자르는 등 정신적

으로 불안했던 고흐는 결국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그러나 고흐의 비탈진 인생길은 그가 죽고

드디어 그가 죽은 지 11년 후인 1901년

파리에서 71점의 고흐의 그림 전시 후

그의 명성은 급속도로 올라갔다.


"대단한 업적은 충동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작은 일들이 모여 점점 이루어져 간다."


후기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화가 고흐는

이후 인상파, 야수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우리에게는 너무나 친숙한 화가이다.


고흐의 대단한 그림들은 충동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평범한 포장도로를

멀리하고 비탈진 산길을 걸으며

오로지 그림을 그리는 꿈을 꿨고 마침내

그 꿈을 그린 것이다.


고흐는 후기 인상파 화기이기 이전에

그림 그리는 한 가지 일에 미쳐 그림 그리는

꿈을 꾸었고 그 꿈을 그린 의지의 인간이었다.


누구나 다

별이 빛나는 꿈을 꾸고

그 꿈을 그리면 비로소 별이 반짝이는

꿈은 그릴 수 있다. 다만 꿈만 꾸면 안 되고

그 꿈에 미쳐있어야 한다.


Plato 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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