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불지 않으면 노를 저어서라도 너를 인도하리니

by Plato Won
세계 2차 대전을 연합군의 승리로 이끈 처칠과 루스벨트 청동상


"비관로자는 수많은 모든 기회에서 어려움을 찾고,

낙관론자는 모든 어려움 속에서 기회를 찾아낸다."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영국의 수상,

윈스턴 처칠이 한 말이다.


난세가 영웅을 낳고,그 영웅이 시대의 진로를

이끈다.처칠이 그러했다.그의 불굴의 용기와

리더십이 아니었다면,오늘날 세상은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처칠은 영국 명문가 출신이었으나 어린시절

공부를 엄청나게 못해,샌드허스트 육군사관학교도

3수 끝에 겨우 들어갔다.


"윈스턴 같이 막돼먹은 놈에게 공작위를

줄 수는 없어!"


사고뭉치 처칠을 두고 그의 할머니이자

7대 말보로 공작부인은 이렇게 질태했다고

한다.


그러나 처칠은 어릴 때부터 책읽기만은

좋아해서 독서광이었고 그의 글쓰기 재주가

그를 위대한 정치가로 만들어, 세계 2차 대전을

연합군의 승리로 이끌며 세상을 구할 줄은 아무도

몰랐다.


1899년 처칠은 어릴적 글쓰기 재주를 살려서

육군사관학교 졸업후 종군기자로 보어 전쟁에

참전하여 당시 처참한 전황을 생생히 본국에

전달하는 등 활약하였으나 포로로 잡힌다.


그러나 처칠은 기지를 발휘해 구사일생으로

탈출하였고,영국으로 귀환한 처칠은 당시 탈출

상황을 신문에 기고하면서 국민적 영웅이

되었고 이는 향후 그가 정치인으로 성장하는

기반이 되었다.


"성공이 마지막이 아니며 실패 또한 치명적이

될 수 없다.가장 중요한 것은 계속 끌고 갈 수

있는 용기이다."


처칠의 유명한 격언이다.


처칠은 제 1차 세계대전 당시 해군장관을

맡아 갈리폴리 전투에서 오스만 제국의 무력을

약화시키기 위해서 영국군을 파병한 작전이

실패하면서 문책으로 장관직에서 사퇴하고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린다.

처칠의 그린 수채화,처칠은 그리으로 우울증을 극복했다.

"하늘에 나는 연은 순풍이 아니라

역풍에 가장 높이 날아오른다."


"바람이 불지 않으면 직접 노를 저으면 된다."


시골에서 수채화를 그리며 우울증을 극복한

처칠은 "천국에 가서 첫 백만 년 동안은 그림만

그리고 싶다."했을 정도로 뛰어난 그림실력으로

우울증을 극복하기도 했다.


1차 세계대전 종전 후 정치인으로 변신한

처칠은 베르사유 조약에서 패잔국 독일에 대해

부과한 천문학적 전후배상금 징수에 반대하며,

이것이 새로운 전쟁을 불러올 것을 경고했다.


"나중에 독일과의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자체 의용대를 만들어야 한다."


처칠은 아돌프 히틀러가 독일에서 집권하자

히틀러의 야망을 경고하며 전쟁에 대비할 것을

주장했으나 정치판에서 외면 당한다.


더군다나 인도의 독립을 인정하는 영국 의회에서

처질은 결사적으로 인도의 독립을 반대하였기

때문에 영국의 나치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우리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열쇠는

결코 힘이나 지혜가 아니다.

바로 끊임없는 노력뿐이다."


마침내 나치 독일이 영국을 공격해오자,

처칠의 견해가 옳다는 것이 입증되어 처칠은

총리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곧이어 벌어진 프랑스에서의 전투도

프랑스군의 무능함과 독일군의 빠른 작전에

영국군은 대패하고 영국은 유럽에서 고립된

채 홀로 맞서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만약 내가 죽는다면

독일군은 내 시체를 집무실 의자에서

끌어내려야 할 것이다."


처칠은 자신의 말대로 독일군의 공습이

가해져도 끝까지 런던에 머물렀다.


"절대로 포기하지 마시오.절대로 포기하지

마시오.절대,절대,절대,절대로!


엄청난 일이건 작은 일이건,크건 하찮건

상관 말고,명예로움과 분별에 대한 강한 확신이

있는 경우들이 아니라면

절대 포기하지 마시오"


2차대전이 한창이던 1971년 처칠이 고교

졸업식에서 행한 연설내용이다.


"보시다시피 영국 수상은

미국 대통령 앞에서

숨길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처칠이 미국 원조를 받기 위해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미국에 가서 숙소에

머물 당시 숙소로 루즈벨트 대통령이 불쑥

나타나자 욕실에서 막 나온 처칠의 허리에

맨 수건이 흘러내렸다.이때 처칠이 태연스런

유머로 한 이 말에 박장대소한 루드벨트 대통령이

마음속으로 처칠의 솔직함에 신뢰하게 되었고

정상회담이 순조롭게 진행 되었다고 한다.


"장비를 주면,우리가 끝장내겠다."


1941년 영국 BBC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처칠의 연설이다.


처칠의 호소는, 피폐해진 영국은 전쟁 물자를

구입할 돈도,운송할 여력도 없으니 미국에서

전폭 지원을 해달라는 메세지였다.


당시 미국의 무기수출법은 대금 선불과 구입자

운송이 원칙이었으나 처칠에게 깊은 인상을

받은 루즈벨트는 의회를 설득해 미국 방위에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어떤 나라에도 무기를

대여할 수 있는 법안을 통과시킨다.


"그럼 우리가 이겼군"


미국의 참전이 확실해지자 처칠은 독일의 공격에

불안해하는 영국국민의 사기진작을 위해 확신에

찬 의지의 이 한 마디를 던진다.


이후 처칠은 영국 본토 항공전을 막아내고

연합군의 승리를 이끌며 제 2차 세계대전은

막을 내린다.


처칠은 위대한 지도자이기 이전에 지독한

독서광이었다.


"설령 책이 당신의 친구가 되지는 못할지라도

최소한 당신과 일면식의 관계로는 만들 수 있지

않는가,설혹 책이 당신의 친교 범위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다할지라도 아는 체 하며 가벼운 인사 정도는

반드시 하고 지낼 일이다."


처칠이 신문에 기고한 '취미'라는 글 내용이다.


해가지지 않는 빅토리아 시대에 태어나

대영제국의 최전성기에 청년시절을 보냈으며

세계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끌며 뉴턴과 세익스피어를

제치고 영국민에게 가장 사랑받는 100인 중

1위로 선정된 처칠이었지만,세계 패권이

대영제국 영국에서 미국으로 넘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아야했다.


어떤 의미에서 그의 삶이 곧 영국이었다.


195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할 정도로 탁월한

그의 연설 실력은 어릴적 역사와 인문고전에

심취한 그의 독서력 덕분이었다.


전시 연설도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아

노벨문학상까지 수상한 처칠의 글쓰기 실력은

학창시절 학습부진아를 영국의 수상의 자리까지

올라가게 한 원동력이었다.


그 글쓰기가 전시 불안에 떨던 영국민을 하나로

뭉치는 명연설문을 만들었고 미국의 참전을

이끌어냈으며 마침내 세계 2차 대전을 연합군

의 승리로 이끌었다.


"무기만 주면 우리가 끝장내겠다"한 마디로

미국 원조를 이끌어낸 처칠은

영군에 부는 시대적인 역풍에 가장 높이 나는

연이 되었고 바람이 불지 않는 영국에 국민들이

노를 저어 거친 역사의 파고를 헤쳐나가도록

리더쉽을 발휘한 영국의 자랑이다.


위대한 정치인 처칠을 만든 것은

그의 지독한 독서력이자 뛰어난 끌쓰기,

그리고 역풍에도 날아오르겠다는

불굴의 의지였다.


"바람이 불지 않으면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직접 노를 저어저라도 폭풍우의 위험한 강에서

너와 나의 평화로운 저 푸른 초원으로

너를 인도하리니.반드시 반드시 반드시 "


Plato 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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