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비대칭의 차이에 대한 충실성이다.

by Plato Won
Plato Won
Plato Won作,꽃과 버들 강아지는 사랑이 기능한가?둘이 둘로 존재하는 것이 사랑이니 가능도 할듯 하다.
사랑은 둘이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둘이 둘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장 많이 말하고 듣는

단어가 아마 '사랑' 일 것이다.


사랑이라는 개념이

직접적으로는 이성 간의 관심에서부터

지구 반대편 아이들에 대한 동정애도 포함되고

가족들에 대한 배타적인 관심에도,

신과 같은 초월자에 대한 헌신에도,

모두 사랑이라는 용어가 동일하게 사용된다.


'사랑'이란 단어가 얼핏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고

헌신적으로 너에게 애정을 기울이겠다는 서약처럼

보일 수 있다.


착각이다. 그런 사랑은 반드시 타자의 자유를

구속하겠다는 폭력적 억압을 내포하고 있다.


"내가 너를 죽도록 사랑할 테니

너도 나를 죽도록 사랑해야 해."


이런 구조의 사랑이라면 필연코 타자의 자유의지

를 구속하게 되고 타자가 언제든지 나를 버리고

떠날 수 있는 자유를 속박한다.


그것이 사랑을 유지시키기는커녕

질리게 만들고 사랑을 단절시키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사랑의 사유체계를 공고히 할 때 사랑은

사랑으로 영원히 존속시킬 수 있다.


그래서 철학적으로 '사랑'에 대한

두 철학자의 사유체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헤겔의 사유체계는 '둘이 만나 하나가 되는 것'

이 사랑이다. 사랑이 깃드는 이유는 타자 속에서

내가 가지지 못한 결핍을 발견했을 때 불꽃이

튀긴다. 홀로 살아가면서 완전해질 수 없다는

것을 직감하는 순간, 자신의 삶이 불완전함에

빠질 것이라는 느낌이 밀려올 때 곧 타자와의

사랑이 시작된다.


'자신을 타자 안에서 발견한다.'

그러므로 타자도 내 속에 들어와야 한다.


이것이 '둘이 하나가 된다'는

헤겔의 사랑에 대한 사유체계다.


둘이 하나가 되는 사랑은

타자가 언제든 떠날 수 있다는

자유의 가능성을 막고 그것이 사랑을

단절시키는 아이러니를 발생시킨다.


반면 프랑스 철학자 바디우의 사유체계는

"둘이 둘로서 존재하는 비대칭적 차이에 대한

충실성"으로 정의된다.

혈연, 지연, 학연, 민족이라는 관계마저도

벗어나서 둘은 둘로서 존재하고,사랑을 유지

하고 지속해나가는 동력이 '둘'의 자유에 의해

서만 가능하다. 당연히 상대방에 대한 일방적인

헌신이나 희생은 자신을 부정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부정된다.


나아가 상대방의 속내를 고려하지 않고 그에게

자신의 삶을 헌신하거나 희생하는 것은 오히려

상대방에 대한 폭력으로 인식되는 것이 바디우의

사랑에 대한 사유체계다.


'사랑은 둘이 있다는 후사건적인 조건 아래

이루어지는 세계의 경험 또는 상황의 경험'

이라는 것이 바디우의 사랑에 대한 정의다.


'후사건적'이라는 것은 둘의 사랑으로 자신과

상대방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나와 타자를

제외한 일체의 사람들은 모두 조연들로서 배경

의 자리로 물러나게 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따라서 '후사건적'이라는 것은 사랑이라는 사건이 일어나고 난 후에 느껴지는 감정이라는 의미에서

後事件的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사랑이란 우리에게 비대칭적 차이를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더라도 끈덕지게 견뎌내야만 하는

것이다.그래야 사랑의 연속성이 보장된다.


헌신적인 사랑이 얼마나 위험한지

바디우의 사유체계에서 우리는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사랑이란 서로 간의 비대칭적 차이를 충분히

인정할 때 비로소 사랑이라 말할 수 있다.



Plato 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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