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불멸의 영혼,불굴의 의지,그녀를 따라다니는 찬사
by
Plato Won
Jul 5. 2020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화려한 드레스
"한 시대를 통치했던 여왕이
평생 처녀로 살다 生을 마감했다는
비석을 세울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헨리 8세의 딸로 여왕에 올라 영국 절대주의
전성기를 이룬 엘리자베스 1세가
25세의 당당한 모습으로 매섭게 추운
겨울 거행된 대관식에서 여왕으로
첫발을 내디디며 한 말이다.
"짐은 국가와 결혼했다."
영국 튜터 왕조의 마지막 군주이자 대영제국의
기틀을 확립한 엘리자베스 1세 여왕,
그러나 그녀의 어머니 앤 불린의 삶은
기구했다.
영화 <1000일의 앤>으로 잘 알려진 앤 불린은
영국 헨리 8세의 두 번째 왕비였으나
아들을 얻지 못하여 왕가가 단절될 것을
염려한 헨리 8세에 의해 간통으로 누명을
쓰고 런던탑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기구한 운명을 맞는다.
검게 빛나는 아름다운 눈과 붉은색 금발의
수려한 외모를 지닌 여성 앤 불린은
헨리 8세의 구애를 받게 된다.
헨리 8세는 그녀와 결혼을 결심하고 아기를
갖지 못하는 왕비 캐서린과의 결혼을 무효로
만들기 위해 이혼을 반대하는 교황 클레멘스 7세
와 대립하면서까지 결혼을 강행한다.
이로 인해 헨리 8세는 교황과 대립하여
이는 영국 종교개혁의 발단이 되고,결국
헨리 8세는 로마 가톨릭과
결별하고
영국 국교회를 만든다.
패럴랙스 인문아트 시리즈 3편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는 이런 시대적 배경
속에서 탄생된 인문고전이다.
앤 불린과 결혼 후 헨리 8세는 왕자를 열망했으나
앤 불린은
왕자를 사산하고 엘리자베스 1세를 낳고
처형되는 기구한 신세가 된다.
이를 영화로 만든 것이 영화 <1000일의 앤>이다.
헨리 8세가 그토록 원했던 왕자는 낳지 못했으나
후일 대영제국의 기틀을 확립한 엘리자베스 1세
를 탄생시킴으로써 앤 불린은 그녀의 기구한
삶과는 달리 대영제국의 역사에 중요한 때
,
중요한 역할을 다 했다
.
만약 앤 불린 이 왕자를 낳았다면 우리가 아는
엘리자베스 1세는 역사에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며, 그렇다면 대영제국도 없었을 것이고
청교도 혁명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을
건설한 개척자들도 없었을지 모른다
역사의 물줄기는 인간의 바람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의 의지가 위대하다면
인간이 꿈꾸는 역사 이상으로 신은 인간에게
새로운 시대를 선사하는 것이 또한 역사다.
영웅의 등장이 순탄할 리 없다.
엘리자베스 1세의 운명도 우연이 필연으로
점철된 역사다. 엘리자베스 1세의 대영제국은
우연한 運과 엘리자베스 여왕의 意志의
조합이다.
어머니가 처형된 엘리자베스의 인생은
거칠었다.
헨리 8세가 죽자 캐서린 왕비의 딸인
메리 여왕이 영국의 여왕으로 오르자, 엘리자베스
1세도 어머니 앤 불린 과 함께 런던탑에 갇혀
위험한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다.
메리 여왕은 어머니 캐서린의 복수를
위해서라도
로마 가톨릭을 배제한 정책을 전환하여
다시금
가톨릭을 국교로 정하여야 했다.
이에 그녀의 정책에 반대하는 다른 개신교도들을
잔인하고 무자비하게 처형하여 '피의 메리'라
불릴 정도였다.
그러나 역사는 그녀의 시대를 허락하지 않았다
.
갑자기 병에 걸린 메리는 자녀도 남기지 못하고
눈을 감자,감옥에 갇혀있던 엘리자베스에게
왕권이
넘어오게 된다.
"때로는 인내와 시간이 힘과 분노보다
더 효과적이다."
절치부심의 시간을 보낸 엘리자베스 1세는
아버지 선왕 헨리 8세 이후의 빈곤했던 나라의
재정을 튼튼히 하기 위해 왕궁 살림을 최소화하고
검약을 실천했다.
"내가 사자는 아닐지라도 사자 새끼임에는
분명하다."
엘리자베스 1세가 신하들에게 즐겨하던
말이다. 실제는 그녀는 당찼다.
1588년 에스파냐와 잉글랜드의 칼레해전 장면,이 전투는 세계 4대 해전으로 불린다.에스파냐의 대패로 에스퍄냐 시대는 저물고 대영제국 시대의 토대가 마련된 중요한 전투다.
당시 영국은 小國이었으나 무적 스페인 함대를
어렵게 무찌르고 해양 지배권을 획득한다.
그녀는 국력이 프랑스나 스페인에 한참
못 미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표면적으로는
세력 균형 정책을 폈지만 뒤로는 드레이크 등
해적들을 지원하며 장차 일어날 스페인과의
해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내가 연약한 여자의 몸을 가졌다는 것을
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나의 심장과 위장은 영국 왕으로서의 심장과
위장을 가지고 있음을 밝힌다."
이 연설은 1588년 8월 엘리자베스 1세가
스페인 무적함대 아르마다와 일전을 앞두고
있는 영국 병사들을 격려하기 위해 틸버리를
방문했을 때 남긴 말이다.
이 연설은 엘리자베스 연설 중 가장 유명할 뿐
아니라 엘리자베스 1세를 함축해서 표현한
연설로 그녀의 이미지를 각인시키기에
충분했다.
1588년 펠리페 2세나 에스파냐가 자랑하는
무적함대를 이끌고, 나약한 여성으로 엘리자베스를
얕잡아 보고 영국을 격파하려 하였으나,
엘리자베스는 펠리페가 아는 그런 나약한 여성이
아니라 사자 새끼도 아니고 용맹하고 위엄 있는
싸움 사자였던 것이다.
영국 해변에서 벌어진 스페인과의 해상전투는
해적 두목 드레이크의 지휘 아래 교묘한 전술 작전을
펼친 영국 함대와 마침 불어닥친 폭풍우를 잘
이용한 영국 함대의 대승으로 끝났다.
이 전투의 결과는 실로 엄청났다.
패하면 영국은 지도에서 사라지는 일생일대의
전투에서 절대 열세의 영국 함대는 힘겹게
승리하고 드디어 유럽의 주도권은
스페인에서 영국으로 넘어오게 된다.
대영제국의 시작은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시련을 조롱하고 운명에 맞서 싸운 의지의
승리였다.
거기에 신의 가호가 더해진 결과다.
엘레자베스 1세는 나약한 여성 군주가 아니라
런던탑에서 갇혀있음에도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시련을 조롱하는 현명함 군주였고,
빈곤한 영국의 재정을
검약으로 절약하고
장차 해상전투에 대비해서
약탈을 일삼던 해적 두목 드레이크에게 국가적
사명감을 불어넣어 국가에 충성할 수 있게 하는
용병술을 지닌 영왕이었으며
,
절대 포기하지 않고 대영제국을
꿈꾸고 그 꿈을 단계적으로 실천해 나갈 수
있는 전략가이자 행동하는 위대한 여왕이였다.
곱게 자라 보석만 치장하며,
물러준 여왕 자리에
안주한 무늬만 여왕이 아니었던 것이다.
"멋있다. 참 멋진 여성이다. 참 멋들어진
여왕이자 군주이다."
그래서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인 것이다.
그녀는 검약을 실천하면서도 보석 컬렉션과
화려한 드레스에는 돈을 아끼지 않아서 생전
수천 벌의 가운을 갖고 있었으며 방대한 보석
컬렉션은 교황마저도 탐을 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녀가 통치기간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겠는가.
이 정도는 봐줄 수 있지 않겠는가.
보석과 드레스를 좋아했다니 그녀도 천상
군주이기 이전에 美를 가꾸는 여자이긴
여자였던가 보다.
엘리자베스 1세는 그녀가 가진 보석만큼이나
빛나는 위대한 군주였고 화려한 드레스만큼이나
위엄있는 여왕이었으며 美를 가꿀 줄 아는
섬세한 여성이었다.
지앤비에도 여전사들이 많다.
사자가 될 사자 새끼들도
많다.
영국에는 대영제국을 일군 엘리자베스 여왕이
있다면 지앤비에도 大지앤비제국을 일굴 예비
후보군들이 많다.
"나는 그대들에게 나보다 국민을 더 사랑한
왕은 없었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내가 재임한 기간 동안 일어났던 영광스러순 일은
모두 다 그대들의 사랑 덕분이었다.
왕이 되고 왕관을 쓴다는 것은 당사자에게는
보기보다 훨씬 고통스러운 일이다.나는 왕이나
여왕의 권위와 영광스러운 이름을 이용해
유혹에 빠진 적은 없었다.
고맙게도 하느님이 믿음과 영광을 이루고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한 도구로 나를 만드셨기
때문이다.
지금보다 더 나라를 걱정하는 왕은 이전에도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은 이 말을 남기고
70세인 1603년 3월 평화롭게 하늘나라로
떠났다.
그녀 앞에는 항상 이 말이 따라 붙는다.
"불멸의 영혼,불굴의 의지 그리고 보석과 드레스^^ "
여성들의 전성시대다.
엘리자베스 1세의 탄생을 기대해 본다.
지앤비에서도,대한민국에서도
Plato Won
keyword
글쓰기
엘리자베스
영국
9
댓글
댓글
0
작성된 댓글이 없습니다.
작가에게 첫 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브런치에 로그인하고 댓글을 입력해보세요!
Plato Won
인문・교양 분야 크리에이터
소속
지앤비패럴랙스교육
직업
CEO
글은 작가에 의해 쓰여지지만 그 글을 사유하고 질문하는 누군가에 의해 서서히 완성되어 간다. 지식이 범생이의 모범답안지에 기여하기보다는 야성적 충동가의 혁신도구이기를 바라며 ~~
팔로워
898
제안하기
팔로우
작가의 이전글
경영을 예술처럼 하면 예술이 된다.
글은 내면의 깊이를 형식의 옷으로 格을 갖춰야
작가의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