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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인연 말고 생성적 인연을 소중히 해야
by
Plato Won
Sep 4. 2020
Plato Won 作,아침 산책길에 만난 이슬도 한순간에 쉬이 바뀌지는 않는 인연이다.주변과의 인연을 소중히 할 때 인생도 소중해 진다.
어느 한쪽 견해에 빠지면
우리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모든 대상들에 대해,
영원하지도 순간적이지도 않은 바로 그 대상들과
제대로 관계할 수 없다.
연기(緣起)란
자기 본질이나 본성, 즉 자성으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들에
'의존하여(緣) 일어난다(起)는 의미다.
그렇다면
여기서 영원하지도 순간적이지도 않은
모든 대상들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인연들이다.
내가 아침 산책길에서 만난
'이슬'은 풍향이나 풍속, 기온이 갑자기 바뀐다고
곧바로 사라지지 않는다.
오케스트라 단원 중 바이올린 주자
한 명이 빠져도 베토벤 운명 교항곡은
청중들에게 별 무리 없이 들린다.
하지만 단원들이 계속 빠져나가면
어느 순간 더 이상 베토벤 운명 교향곡은
장송곡처럼 들릴 수 있다.
내가 아침에 만나는 이슬도 마찬가지다.
계속해서 기온이 변하고 풍량, 풍속이
변하면 수증기는 증발하여 수증기로
사라진다.
많은 인연들도 이와 같다.
어떠한 이유도 인연이
하나 둘 떨어져 나가면 변화가 없어 보이나
그것이 지속되면 나를 둘러싼 인연들은
다 사라지고 나라는 존재의 특성도
사라진다.
인연이란 그냥 맺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와 다른 모든 대상과 교류하면서
생겨나는 것인데
내 특성이 한두 개 없어지면 드러나지 않다가
이윽고 내 본질이 변질되면 그 변질된 특성에
맞는 악한 인연들이 자리 잡고 선한 인연들은
사라진다.
불행한 일이다.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나를 나 답게 가꾸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20세기 지성 화이트 헤드와 쌍벽을
이루는 유럽 최고의 형이상학자 들뢰즈는
<천 개의 고원>에서 '생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생성이란 창조와는 다른 개념이다.
기독교에서 창조는 無에서 有를 만들어내는
것이지만 생성은 有에서 有를 태어나게 하는 것이다.
있는 것들을 잘 배치하고 조합하고
Cheer up 해서 과거에 없던 것들을
만들어내는 생성,
그 생성이 새로운 인연을 만든다.
우리가 신이 아닌 이상
無에서 有를 창조하기에는 벅차고 불가능하고
스트레스를 받기 마련이다.
전혀 없던 인연을 필연으로 이어가는 것도
어렵고 불편하다.
내 주변에 나와 잘 관계하는 인연 중에서
잘 해석하고 재배치하고 Cheer up 하고
힘을 불어넣으면 새로운 인연이 생성된다.
창조적 인연보다 생성적 인연이 훨씬
의미 있고 실현 가능성도 높다.
일이든 사적 관계든
주변의 나랑 자주 교류하는 사람들과
새로운 생성적 인연들이 만들어지고
그것이 증폭될 때
우리의 운명도 바뀐다.
인생은 이런 생성적 인연의 조합이다.
인연을 소중히 하여야
인생도 소중해진다는 사실을
명심할 일이다.
Plato 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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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생성
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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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to 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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