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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lato Won Sep 04. 2020

기업의 주인은 누구인가?

기업의 주인은 기업 자신이다.


기업의 주인은 누구인가?

이전 경영학 원론에서는

기업의 주인은 주주라고 가르쳤다.


아니다.

업의 주인은 기업 그 자신이다.


기업은

제품과 서비스를 창출하는 생산의 주체인

동시에 직원과 사회 구성원들이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하는 소득분배의 주체이다.


"기업은 누구인가?

기업은 무엇인가?"


기업은 자기 결정권과 인격권을 가진

사회적 실체다.


주주는 주식의 주인일 뿐이다.

주주나 이해관계자가 기업의 주인이 아니라

기업의 주인은 기업 자신이어야 한다.


그 논거로 법인 실체론을 제시한다.

기업이라는 법인은 껍데기가 아니라

'사회적 실체'이며

그 자체의 영속과 발전을 위해

자유로운 방법을 동원할 수 있는

 자기 결정권과 인격권을 가지고 있다.


경영학 전공자로

오랜 기간 동안 기업의 주인은 주주라고

이해하고 배워왔지만 현대 자본주의의  모든 폐단이

주주가 기업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주주 이익 극대화'에서 비롯되었다고 확신한다.


참으로 천박한 경영 논리다.

천박한 '주주이익 극대화'는

 미국식 경영 사고방식이다.


한국의 엘리트 지식인들이

미국으로 유학 가서 박사 학위로 중무장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으스대며

대학에서 강의하고 기업가들에게 조언하는 것이

앵무새처럼 내뱉는 '주주이익 극대화'였다.


기업은 주주이익 극대화를 위해 경영할 때

투자도 활성화되고 기업도 영속하고

사회도 덩달아 좋아진다는 논리다.


참으로 가소로운 경영이론이다.

모든 현대 자본주의의 문제의 출발이다.


기업은 그 자체로 인격권이 있고

자기 결정권이 있다.


이제 1789년 프랑스 대혁명으로

인간이 자유와 평등 박애의 장으로 접어들었듯

기업도 프랑스 대혁명에 준하는 혁명적 사고가

필요한 시점이다.


사람도 품격이 있듯

기업도 품격이 있다.


기품 있는 가치철학 , 절제된 이윤추구

사회를 위한 봉사정신,

약자를 위한 참기 힘든 연민을

 기업들은 지닐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


그런 기품 있는 기업에 소비자들은

열광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호랑이가 살려고 발버둥 치는

토끼를 잡아먹고

 살아서야  면이 서겠는가.


호랑이는 들판에 나가 시랑랑 싸워

이겨야 들판의 왕자가 된다.


한국 기업도 살려고 발버둥 치는 하도급업체

후려 잡아서 이익낼 생각은 버리고

들판에 나가 글로벌 기업과 경쟁해서

이겨야 왕자가 된다.


혁신적 사고로 성과를 창출하기 위한 출발은

기업들이 바라보는 저 북극성이

구성원 모두가 공감하고 이해되는

충분한 가치와 이유가 있어야

젊음을 받쳐 충성할 것 아닌가?


내가 젊음을 받쳐 충성한 기업이

오직 주주들의 배만 채우기 위한 노동이었다면

얼마나 허무할 것인가.

물론 주주의 이익을 간과하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이 오직 기업의

유일한 존속 이유는 아니고

우선 순위  최상단에 있어서도 안 된다.


기업은

스스로의 인격권과 자기 결정권을 지닌

품격 가득한, 기있는 인격체이어야 한다.


관점을 달리해서 혁신하는 기업,

사회에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사회적 기업,

경제적 약자들에게 연민을 가지는 배려심 있는 기업,

불의를 행하는 것을 안 하는 것에서 나아가

불의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정의로운 기업이

품격 있는 기업이고 위대한 기업이다.


지앤비가

추구하는 기업상과 그 결이 같다.


기업의 주인은 기업 자신이다.

지앤비의 주인은 지앤비 그 자신이다

지앤비 구성원 스스로

 "자신이 지앤비다" 라고 생각하면

지앤비가 곧 자신 것이다. 


Pkato Won


송원중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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