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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lato Won Aug 23. 2018

큰 결핍은 큰 부에서 비롯된다

다 가졌으나 외로웠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650년 역사는 정략결혼


"큰 결핍은 큰 부에서 온다.

다 버림으로써 행복을 얻는다"


프랑스 천재 사상가 장 자크 루소는 말한다.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로 태어났지만,

어디에서나 쇠사슬에 묶여 있다. 자기가 다른 사람들의 주인이라고 믿는 사람은 사실 그들보다 더 노예가 되어 있다."


루소의 사회 인식이다.

무엇이 우리의 쇠사슬인가?
권력욕인가, 소유욕인가,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인가, 사랑인가?

루소가 말하는 쇠사슬은 복잡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다.

인간은 홀로 살 수 없다는 것,
다른 사람에 의존해서 살 수밖에 없다는 운명이 곧
쇠사슬인 것이다.

진정으로 자유로운 인간은 오로지 자연에만 의존하여
자신의 의지로 살아간다. 그러나 사회가 탄생하고
누군가에게 무엇을 의지하는 순간 인간은 쇠사슬에
얽매이게 된다.

다 가졌지만 외로웠다.

오스트리아가 사랑하는 세기의 미인 황후 Sissi,

합스부르크 600년 왕조사에
황제도 아닌 황후가 합스부르크 왕궁인 호프부르크
궁전에 박물관을 가진 최초의 인물 시씨는 외친다.

"자유! 너를 잃어버린 이 우매함이여,

자유와 맞바꾼 황제와의 이 거래를 어찌할 것인가?

아! 그립고 그리운 자유여ᆢ"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제 프란츠 요제프

원래 시씨의 친언니 헬레네와 결혼할 계획이었다.
언니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여동생 시씨가 황제와
언니의 여행에 동행했는 데, 황제가 시씨에게 첫눈에
반해 전격적으로 결혼 상대자가 언니에서 동생으로
바뀐다.

"어떻게 그런 분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어머니가 시씨에게 황제와의 결혼 의사를 묻자

시씨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보인 첫 반응이었다.

루소의 쇠사슬이 시씨에게 얽히는 순간이다.


텔스바흐의 시골 촌뜨기 시씨는 

합스부르크 왕조가의 황후 자리를 얻고 자유를

쇠사슬에 묶어버리는 거래에 기쁜 마음으로 응했다.

오스트리아 제국의 수도 빈은

문화. 예술, 역사의  도시다. 음악의 거장, 모차르트,

베토벤, 브람스, 슈베르트도 미술의 구스타프 클림트도, 

그 유명한 프로이트도, 철학자 비트겐슈타인도 

빈에서  나고 자라고 활동했다.

빈은 합스부르크 왕조 600년 수도였으니

역사에 이름을 남긴 사람은 끝도 없이 많다.

그중 Sissi, 시씨라는 여인이 있다.


합스부르크 왕조의 본궁 호프부르크 내에

그녀만의 박물관이 있다.

어긋난 황제의 사랑ᆢ

시씨는 애칭, 본명은 엘리자베스 폰 비텔스바흐다.
바이에른 왕국의 수도 뮌헨에서 비텔스바흐의 왕가
일원으로 태어난 시씨는 자연을 사랑하고 목가적인
삶을 즐기는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적어도 황후가 되기 전까지는ᆢ

황제는 그녀를 사랑했지만 엄격한 궁중생활에

가둬놓고 사랑을 보여주지 못하였다. 아니 사랑은

했으나 시간이 없었다. 제국은 넓고 할 일은 많아

감수성 예민한 황후를 사랑할 시간이 없었다.


스스로에게 엄격한 황제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국사에 매진하였으니 비정한 궁정은 창살 없는

감옥이었다. 황제에게나, 황후에게나.

합스부르크 대귀족들의 보이지 않는 멸시,

바이에른에서 온 촌뜨기 시씨는 우상 황제를 앗아간

연적일 뿐 대귀족들에게는 황비가 아니었다.

황후는 점점  빈에서 외로운 이방인으로 살아가고
그녀를 닮은 외아들이자 제위 계승자 루돌프는 빈
근교에서 자살하는 비극까지 벌어진다.


외아들도 엄마를 닮아 궁정생활과 왕위 계승자의 중압감에서 헤어나지 못하였던 것이다.

이후 그녀의 삶은 급속히 망가져 간다.
병 치료 차 유럽을 유령처럼 여행하며 떠돌다

1896년 스위스 제네바 호숫가에서 무정부주의자에게

칼에 맞고 숨지는 또 다른 비극이 발생한다.

황제는 충격받고 그녀를 최고 예우로 대우
합스부르크 황실의 전용 묘에 묻었으나,

진정 그녀가 원한 것은 사후에라도 빈을 떠나

그리스 코루프 섬에 묻히는 것이었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일까?


권력일 수도, 재산일 수도, 명예일 수도,

아름다움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자유의지가 없는

그것들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루소의 쇠사슬은 사회가 얽매는 것인가?
스스로 얽매이는 것인가?

'큰 결핍은 큰 부에서 온다'는 것이

천재적인 사상가 루소가 20년 간 사색을 통해 얻은 성찰이었으니, 그 해결책도 무게감 있게 우리에게 

다가온다.


要는보태고 보태는 것이 아니라 

버리고 비우는 것이다.


결핍에서의 탈출도 가진 것을 버림으로써

행복이 온다는 것이 루소의 생각이다.


행복을 무한정 가지려고 하는 순간

행복은 불행으로 바뀐다.


설익은 지식과 헛된 지혜로 인해

우리는 죽음을 최대의 불행으로 인식하는 것이지만

만일 우리가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면

우리는 얼마나 불행할 것인가? 

버릴 수 있다면 무엇을 버려야 하는가?


조무래기 잡동사니를 버리고 버렸다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큰 결핍은 큰 부에서 온다.


너무 많이 가졌다면, 그래서 더 이상 가질 게

없다면 그때부터 결핍이 시작된다.

모든 것을 가지려고 자유를 잃으면 시씨처럼

모든 것을 잃게 된다.


다 가졌으니 다 잃은 것이다.

큰 결핍은 큰 부에서 비롯된다.




Plato 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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