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lato Won Oct 04. 2018

제국의 숭고한 사랑

사랑이 이토록 숭고한 것인가? 사라예보 총성으로 사라진 비운의 사랑

"조피, 내 사랑 죽지 마오"

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에서 두 방의 총성이 울린다.


한 방은 유럽 문명 전체를 몰락시키는 장송곡이요
또 다른 한 방은 오스트리아ㆍ헝가리 제국

차기 황제 프란츠 페르디난트 황태자의

숭고한 사랑에 대한 슬픈 이별을 노래하는

서곡이였다.


세계 1차 대전을
발발하게 한

세르비아 청년의 사라예보 총성은

정확히 프란츠 페르디난트 황태자와

그의 부인 조피를 관통했다.


세르비아는

보스니아ㆍ헤르체고비나의 수도로
이 지역은

당시 오스트리아 ㆍ헝가리 제국의 일부였다.


세르비아는
이 지역을 차지해서 슬라브인을

중심으로 한, 대 세르비아 국가를 건설하고자 했는데 오스트리아 제국이
이 지역을

합병함으로써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들의

반감은 극에 달해 있었던 상태였다.


그런 위험한 대치 상황에서

오스트리아 제국의 차기 황제

프란츠 페르디난트 황태자 부부가

세르비아 방문을 감행했고

총 성 두 방으로

유럽 왕족과 왕실 유럽 문명 천 년의 역사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 총성을 빌미로
세계 1차 대전이 발발함으로써

세계 지도는 근대 유럽이 몰락하고

세계 질서는

미국을 중심으로 급속히 재편되어 간다.


그리고

왕위 계승권과 맞바꾼
프란츠 페르디난트 공작의 숭고한 사랑도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다.


프란츠 페르디난트는

1863년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의 조카로 태어나

탁월한 사낭꾼이자 열정적 여행가로

관조하는 삶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나

운명의 신은 그를 오스트리아제국의

황제로 낙점한 것인가?

1889년 황제의 외아들 이자 사촌형이였던

황태자 루돌프는 아버지와의 불화로

자살을 하고 만다.


이제 제국의 황위 계승권은

황제의 동생인 카를 루트비히에게

돌아왔으나 그는 정치에 담을 쌓고 사는
자유로운 영혼이였다.


그의 아들이 프란츠 페르디난트,

프란츠 페르디난트는
 미래에 닥쳐올 불행을 알았을까?

담담히 그의 운명을 받아 들인다.


오스트리아제국의 차기 황제로

낙점된 프란츠 페르디난트는 업무차

지금의 체코인 보헤미아의 수도 프라하를

방문하면서 합스부르크 왕가의

방계인 대공녀 이사벨의 초대를

받아 그의 집을 방문한다.


이사벨은
자신의  딸이 8명으로

누군가는 차기 황제의 눈에 들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프란츠 페르디난트를

맞이 하지만 정작
운명의 신은

프란츠 페르디난트의 시선을

이사벨의 시녀인 조피 코테크로 끌어 들인다.


합스부르크 황실의
규율을 어기고 이어진 사랑,

황실은 어쩔 수 없이 차기 황제의

자녀들에게는 왕위계승권을 박탈한다는

조건을 붙여 그 결혼을 허락한다.

또한 사후에 황비와 자손들은

황실의 무덤에 묻힐 수 없다는 조건도 내건다.


그러나 프란츠 페르디난트 공작은

이 조건을 받아들이면서까지

조피와의 사랑을 선택하고 결혼에 이른다.


 그들의 사랑을

신이 시기한 것인가?


그들의 짧은 사랑은

합스부르크 황실과 유럽문명 전체를 감싸안고
 단 총성 두 방으로

허무하게 사라진다.


피를 흘리며 쓰러진 프란츠 페르디난트,
자신의 죽음과 사랑하는 조피의 죽음을
직감한 그의 가슴 속에는


란한 제국의 미래도,왕조의 운명도,신민의 행복도

안중에 없었다.


"아! 내 사랑 조피 죽지 마오,아이들과

평생을 살아주오"


죽음을 앞둔 그의 마음은
제국의 미래도
왕조나 신민의 운명도 아니였다.


사랑하는 조피에 대한

숭고한 사랑의 메세지뿐이였다.


아, 사랑이 이토록

숭고한 것이거늘

세상 사람들은 왜 사랑에 혼탁한 욕망을

들어내는가?


그들의 숭고한 사랑은

합스부르크 황실의 무덤이 아닌

자신의 여름 별장에 묻혔다.

세상 사람들이 외면하고 있지만

그것이 무엇이 문제가 되겠는가?


그들은 함께 있는데

그토록 애절한 사랑과 함께


모든 것을 버리기로 각오한 사람을

누가 이기겠는가?


신은

프란츠 페르디난트 공작에게서

오스트리아제국을, 합스부르크 황실을,

유럽중심의 문명을 쓸어가버렸지만

숭고한 사랑만큼은

빼앗아 가지 못했던 것 같다.


숭고한 사랑이기에


Plato Won

작가의 이전글 진리는 다수결이 아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