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코마코스 윤리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대표작이자 체계적으로 정리된 최초의 윤리학 저술입니다. 고대 그리스 문명이 지닌 도덕적 세계관의 정점을 보여 주는 이 작품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리케이온 시절에 강의용으로 작성한 원고를 아들 니코마코스가 편집한 것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사후는 물론, 로마 시대에도 널리 읽혔던 서양 지성사의 고전이지요.
이 책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삶에서 궁극적인 목적인 무엇이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인간 본성에 대한 철학적 통찰에 바탕을 둔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유 방식은 이후 서양 윤리 사상의 근간을 이룹니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여는 첫 문장은 “인간이 하는 모든 행위, 모든 선택은 기예, 탐구와 마찬가지로 어떤 좋은 것을 목적으로 한다.”입니다. 이때 ‘좋은 것’이 바로 ‘선(善)’으로, ‘선이란 무엇인가?’는 윤리학의 출발점이자, 모든 윤리학이 던지는 근본적인 물음에 해당하지요.
현실주의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으로서 잘 사는 것, 즉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으로 논의의 가닥을 잡아 나갑니다. ‘선’의 의미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고, 여러 선 중에서 어떤 것은 다른 선을 위한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추구하는 최종적인 목적이자 궁극적인 선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행복’입니다. 우리는 행복을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서 원하지 않고, 그 자체로서 원합니다. 돈과 건강을 바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행복해지기 위해서일 뿐, 돈과 건강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습니다. 반면에 행복은 그 자체가 목적이며, 그 외의 다른 목적은 있을 수 없으므로 ‘최고선’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덕’이 필요합니다. 그리스어로 아레테(arete)인 ‘덕’은 탁월성, 즉 어떤 대상이 지닌 고유한 기능이 최상으로 발휘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나무는 나무의 기능을, 철은 철의 기능을 제대로 발휘할 때 가장 탁월하듯, 인간도 이성의 기능을 최대한 발휘할 때 최고의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때 누리는 행복이 그리스어로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인데, 우리가 아는 행복과는 그 의미가 다릅니다. 한 사람의 일평생에
걸쳐 비로소 평가되고 향유되는 것으로, 주관적인
심리 상태나 일시적 경험이 아니라 지속되는 품성이자 습관에 해당하지요.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어떤 것이 좋은 삶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고 주저없이 대답합니다. 그가 철학을 하는 이유는 인간의 삶을 이롭게 하는 것,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본성을 깨닫고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 그리고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아 실현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