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리 제비가 왔다고 봄이 오지 않고, 하루 따뜻했다고 봄이 되는 것도 아닌 것처럼, 한 번의 선행으로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아는 것 못지않게 실천을 강조했던 아리스토텔레스는 덕을 실천하고 유지하려면 지나침이나 모자람이 없는 ‘중용’이 필요하다고 보았습니다. 인간의 육체는 지나침과 모자람에 의해서 파괴되는 본성을 지니고 있는데, 이는 영혼의 상태인 덕도 마찬가지입니다.
양 극단의 한쪽에는 모자란 악덕이, 다른 쪽에는
지나친 악덕이 존재합니다. 그 사이의 덕을 취하는
것이 중용인데, 덕이란 한마디로 ‘습관화된 중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중용이 습관이 될 때까지 규칙적으로 반복하여 얻는 인격적 특성이 ‘덕’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어로 윤리를 뜻하는 ‘에티케(ethike)’는
품성을 뜻하는 에토스(ethos)에서 파생된 단어로, 윤리는 품성을 통해 길러진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그런데 중용은 어느 경우에나,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되는 산술적인 중간점이 아니므로, 상황에 맞게 각자 이성의 판단에 따라 결정해야 합니다. 예컨대 용기라는 덕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무모하게 싸우거나 비겁하게 도망 다니는 대신, 적절한 방법으로 용기
있게 싸워야 합니다.
그때그때 올바른 판단을 내리고 올바른 행동을 하려면 ‘실천적 지혜’가 필요합니다. 실천적 지혜는 우리가 감정과 행위에서 중용을 찾고 이를 실행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이보다 수준 높은 지혜로 인간에게 꼭 필요한 것이 ‘철학적 지혜’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적 지혜를 발휘하여 사유하고 관조하며 살아가는 삶을 최고의 행복으로 꼽습니다.
행복해지려면 중용의 덕을 실현해야 하며, 중용의 덕은 매일매일 실천하여 습관적으로 자연스럽게 우러나와야 합니다.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는 데 그쳐서는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진정한 행복은 지식이나 마음가짐이 아니라 평생에 걸친 인간의 활동, 즉 실천이 뒷받침될 때에만 얻을 수 있습니다.
<추상화 해석>
위 <人文ART 추상화 스케치>는 중용과 실천적 지혜를 은유적 표현으로 스케치한 그림이다.
지긋한 눈동자가 사유와 관조하는 철학적 삶을 의미하는 듯하다. 한 사람이 걸어가는 길은 인생길을 의미하는듯하고,손에 든 막대 한쪽에는 가득 찬 바구니와텅 비어있는 바구니가 걸려있다. 중용은 지나침과 모자람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어야 하는
삶을 의미한다. 스케치 하단에 걸음을 걷는 발은
올바른 판단과올바른 행동을 하려면 아는 것에 멈추어서는 안 되고실천적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상징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