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적 기둥이 되었고, 동양 사상사에서 서로 대칭을 이루는 양대 산맥이다. 유교는 윤리와 실용을 강조
하는 가르침을 '仁義禮知'로 설명한다면, 도교는
우주의 생성 원리와 그 실천을'道와 德'으로 전개
하고 있다.
유교와 도교는 세상을 대하는 방법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으나, 이 둘은 서로 배척하는 관계라기
보다는 보완하는 관계로 이해하여야 한다.
사마천이 <사기>에 공자가 노자를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공자가 주나라에 가서 노자를 만나 '禮'에 대해 묻자
노자는 다음과 같이 공자에게 말한다.
"그대가 하는 말은 그 말을 했던 사람과 뼈는 이미
썩었고 그 말만 남아 있는 것이오. 게다가 군자는
때를 얻으면 수레를 타고 때를 얻지 못하면 남루한
모습으로 다니는 법이오. 내가 듣기로는 좋은 장사치는
깊게 감추어 마치 아무것도 없는 듯이 해야 하고,
군자는 큰 덕을 갖추고 있으나, 용모는 마치 어리석은
듯이 해야 하오. 그대의 교만한 기운과 많은 욕심,
태를 내려는 기색과 넘쳐흐르는 뜻을 버리시오.
이들은 모두 그대 자신에게 무익할 뿐이오.
내가 그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이것뿐이오."
이를 듣고 돌아온 공자는 화를 내기는 커녕,
제자들에게 "나는 오늘 노자를 만났는데 그는 마치 하늘을 나는 용과 같았다."라고 감탄했다고 한다.
여기서 공자가 노자에게 질문한 '禮'는 단순한 예의범절이 아니라 어지러운 천하를 구할 수 있는
사회 시스템으로서의 '禮'다.
공자는 이를 옛 성현들의 말과 기록에서 찾으려 한
것이고, 노자는 공자가 찾으려는 그 禮는 이미 죽은
사람의 말에 불과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道를 道라 말하면 이미 道가 아니다."고 주장하는
노자의 입장에서는 이미 죽은 사람들의 말을 기록한
경전은 세상의 근본 이치를 밝히는 道가 될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공자는 노자와는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옛 성현들의 말과 기록이 설령 껍질만 남아 있다고
해도 거기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면 천하를 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여겼다.
그리하여 평생을 예를 탐구하면서 창조적 계승을
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이다.
노자와 공자는 나아가고 물러날 때에 대해서도
그 관점을 달리하고 있다.
노자의 도덕경 56장에 나오는 '화굉동진' 구절이다.
화할 화, 빛 광, 한 가지 동, 티클 진,
화광동진(和光同塵)은 "빛을 부드럽게 하여 속세의 티끌에 같이 한다."는 뜻으로 노자 56장 구절이다.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
그 이목구비를 막고 그 문을 닫아서, 날카로운 기운을
꺾고, 혼란함을 풀고, 지혜의 빛을 늦추고, 속세의
티클과 함께하니 이것을 현동(玄同)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친해질 수도 없고, 소원해지지도 않는다.
이롭게 하지도 않으며, 해롭게도 하지 못한다.
귀하게도 할 수 없으며, 천하게도 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천하에 귀하게 된다."
노자는 자신이 살고 있던 그 시대를 물러나야 할 때
라고 여겨 결국 은둔했지만 공자는 그 시대야말로 나아가야 할 때라고 보고 평생을 자신의 뜻을 펼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공자도 나아가고 물러남의 道자체에 대해서는 공감했다. 맹자의 글에 "군자는 영달할 때에는 온 천하를 두루 구제해야 하고, 궁할 때에는 자신의 몸이라도 닦아야 한다."는 말은
노자의 입장과 태도를 같이 한다.
공자와 노자는 예수나 석가처럼 태어나면서부터
앎을 타고난 생이지지(生而知之)가 아니라, 스스로
학문에 뜻을 두고 앎을 갈고닦은 학이지지( 學而知之)
한 대 사상가이자 철학자다.
공자가 얼마나 배움을 즐겼는가는 논어의
첫머리 학이편에도 나온다.
"배우고 익히면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공자의 배움은 단순한 지식 쌓기가 아니라 배움을
익혀 어지러운 세상을 구원하고자 하는 실천적
배움이었지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배움이 아니었다.
동양철학의 거대한 두 산맥인 공자를 대표로 하는
유가 사상과 노자를 대표로 하는 도가 사상은 세상을
대하는 관점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으나
내면으로 들어가면 다른 듯 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말하지 않고 드러내지 않는 道를 통해 행하지 않는
것을 최고의 적극적 행함으로 보는 도가 사상이나, 禮로서 적극적으로 행함으로 어지러운 세상을 구하고자 하는 유교 사상이나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행복한 삶을 추구하고자 하는 인간의 영원한 염원을 담고 있는 삶의 지혜서라는 공통점에서는 정확히 일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