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는 유교와 함께 중국과 한국, 일본을 비롯한 동아시아 문화를 이끌어 온 정신적 기둥이자 동양 사상의 양대 산맥이다. 유교가 통치자의 학문이자 지배층을 위한 출세의 학문이라면, 소외 계급과 하층민을 대변하는 도가는 자연을 벗삼았던 학자들의 관조적 태도, 민중의 정서에 녹아 있는 삶의 지혜라고 볼 수 있다.
유가에서 생겨난 ‘유교’는 윤리를 다루는 ‘유학’을 가리키는 학문적 의미, 공자와 조상을 섬기는 종교라는 의미를 모두 가지고 있다. 반면에 도가와 도교는 다르다. 내세에 무심했던 도가와 달리, 도교는 노자, 장자를 신격화하고 신선 사상, 불로장생을 추구한다. 즉 자연을 강조하는 도가 사상과 신선 사상, 민간 신앙이 결합하여 ‘도교’라는 새로운 종교가 등장한 것이다.
도가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마치 씨실과 날실처럼 유교와 긴밀하게 엮여서 사회를 지탱해 주는 원동력이 되어 왔다. 사회가 혼란을 겪을 때마다 유교의 빈틈을 메워 주는 대안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것이다. ‘참된 지식인의 역할’을 고민하던 학자들에게 도가는 현실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했다. 그런가 하면 도교는 고단한 삶에 지쳐 있던 민중에게 위안을 주었고, 과감하게 개혁에 앞장서도록 이끌었다.
유학자들은 왕을 섬기는 신하로서 신분 차별을 정당화하여 지배층을 옹호했다. 그리고 소모적인 이론 논쟁에 치중하다 보니 민중의 삶은 뒷전이 되곤 했다. 이런 이유에서 유교는 주류 정치 사상이면서도 현실 속 혼란을 수습할 해결책은 제시하지 못했다.
도가와 도교는 역사의 주류로서 전면에 부각된 적이 거의 없다. 하지만 민간의 풍습과 신앙뿐만 아니라 문학, 회화를 비롯한 예술, 의학, 천문학 등의 학문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다.
벼슬길에 나아가지 못한 지식인들은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노장 사상, 경치 좋은 곳에서 심신을 수련하는 도교에 매력을 느꼈다. 때로는 자연과 하나가 되는 삶을 예찬하거나 도술, 은자가 등장하는 문학 작품들을 창작하기도 했다. 도가는 유교와 함께 동아시아 역사에 깊이 스며들어 문화로 뿌리내렸고,
그 영향은 지금까지도 우리 삶에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다.
[6과] 동양 사상의 양대 산맥, 도가와 유교
역사의 주류였던 유교의 대안 역할을 하면서 유교와 함께 동양 사상의 큰 줄기를 이루어 온 도가
[1] 도가는 유교와 함께 중국과 한국, 일본을 비롯한 동아시아 문화를 이끌어 온 정신적 기둥이자 동양 사상의 양대 산맥이다.
[2] 유교가 통치자의 학문이자 지배층을 위한 출세의 학문이라면, 소외 계급과 하층민을 대변하는 도가는 자연을 벗삼았던 학자들의 관조적 태도, 민중의 정서에 녹아 있는 삶의 지혜라 볼 수 있다.
[3] 유교가 학문적 의미와 종교적 의미를 모두 가진 반면, 도교는 자연을 강조하는 도가 사상과 신선 사상, 민간 신앙의 결합에서 탄생한 종교를 가리키는 말로 도가와는 구분된다.
[4] 도가는 학자들에게 현실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했고, 도교는 민중에게 위안과 용기를 주는 등, 혼란기에 유교의 대안 역할을 수행했다.
[5] 지배층을 옹호하고, 이론 논쟁에만 몰두했던 유학자들로 인해 유교는 주류 정치 사상이면서도 혼란을 수습할 해결책은 제시하지 못했던 것이다.
[6] 풍습과 신앙, 예술, 학문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도가와 도교의 영향은 유교와 함께 동아시아 역사에 깊이 스며들어 문화로 뿌리내렸고, 지금까지도 우리 삶에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