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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lato Won Nov 20. 2022

권리와 의무의 균등으로 아름다운 세상은 돌아간다

Plato Won 作,태양의 빛을 받았으면 세상을 아름답게 가꿀 의무가 꽃에게는 부여된다.
Plato Won 作



모두가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고 많은 말을 쏟아낸다.


우리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성숙한 시민으로서

자유와 정의, 공정에 대해서 폭포수 물줄기보다

더 많은 말(言)을 쏟아내며 자신의 권리를 적극

주장한다. 그러나 정작 권리에 따르는 의무에는

침묵한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될 리가 없다.


그래서 2500년 전 플라톤은 <국가론>에서

"한 나라의 정부의 수준은 시민 수준 이상이

될 수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 국가에 속한 개개인의 시민의 수준이 성숙

되지 않았는데 모든 시민들이 푸념한다고 국가의 수준이 올라갈 리가 있겠는가.


시민들은 자기들이 주권자라고 떠들며

푸념만 하지만 정작 자신들이 누리는 권리에

따르는 의무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는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 유명한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사회적인 존재이므로 든 작든 조직에

소속되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가정, 학교, 직장, 동호회, 국가 등 우리는 살면서

여러 조직에 자생적으로 또는 자발적으로

소속되어 그 조직의 일원으로서 권리도 누리고

의무도 행하며 살아간다.


너무 당연해서 느끼지는 못하지만 우리는

자연의 일원으로서 태양으로부터 햇볕을

받는 권리를 충분히 누리기도 한다.


자연은 태양으로부터 빛이라는 혜택을 누린다.

자연의 일부로서 누리는 권리다.


자연은 태양의 빛을 받아 강한 생명력으로

연신 푸르름을 뽐내며 자연을 푸르게 푸르게

만든다. 자연의 구성원들인 나무,풀,숲,동물,인간

들은 강한 생명력으로 의무를 행하는 것이다.


태양이 내리는 빛을 자연의 구성원들은 당연히

받을 권리가 있지만 응달진 곳, 습기 찬 곳은

온전히 받아들이질 못한다.

그런 곳은 자연히 생명력을 잃고 썩어 들어간다.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것이다.


응달이가 푸념한다.

"왜 나에게는 햇볕을 안 주냐고"

습기찬이가 옹알거린다.

"왜 나에게는 일조량이 적냐고"


태양이 대답한다.

"햇볕을 받을 조건을 만들어줘야

햇볕을 내려쬐게 해 줄 것 아니냐고"


수수방관하며 가만히 있던 키 작은

나무가 투덜댄다.

'왜 저 키 큰 나무만 햇볕을 많이 주냐고

왜 저 키 큰 나무만 햇볕을 먼저 주냐고"


태양이 대답한다.

"너 보다 더 강한 생명력으로 푸르름을

발산했으니 당연한 것 아니냐고"


우리가 사는 자연도 권리와 의무의 균등으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가듯,우리가 속한

조직도 구성원들의 권리와 의무의 균등이 

실현되어야 아름다운 조직이 된다.


따라서 조직의 일원이 되었다면 권리에 따르는

의무도 균등하게 실천할 책임감이 있다.

그래야만 성숙한 시민, 성숙한 구성원이고

성숙한 조직, 품격 있는 국가가 된다.


학창 시절 열심히 공부해서 지식인이 되었다면

그것은 자신의 노력에 더해 사회로부터 충분한

혜택을 받은 것이다. 따라서 지식인이 그 지식을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만 사용하면 인류의 칼이

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심이 없는  지식,

사회적 부조리에 침묵하는 지식은 이기적인 지식을 넘어 구성원들에 대한 죄악이자 중범죄다.


질풍노도의 시기에 다녔던 고등학교는

누구에게나 소중하고 그래서 동창회도 활발하다.

동창회 일원으로 이름을 올렸다면 그 학교 졸업생으로서 충분히 권리를 누리고 있고  따라서 최소한의 의무도 이행하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다.


말은 폭포수보다 더 많이 쏟아내면서

자신의 권리만 주장하고 그에 따르는 의무에는

소홀한 선배를 따를 후배는 없다. 말은 안 하지만

그런 선배는 후배들이 멀리하기 마련이다.


말을 폭포수보다 더 많이 쏟아내는 선배보다

더 고약한 선배는 수수방관 무관심으로 일관

하는 선배다. 불의를 저지르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은 불의에 침묵하는 것이라고 했다.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무관심은 무책임한 것이

아니라 그 조직의 몰락을 재촉하는 중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자신의 무관심한 행동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고 조직을 멍들게 하고

서서히 와해시키는 결과를 재촉하게 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자 정치적 동물이다.

두 사람만 모여도 조직은 결성되고 알게 모르게

상하가 결정되고 권리와 의무가 생겨난다.


우리 모두는 조직의 일원으로서 아름답고

건강한 조직에 속해 행복을 누리고 살길 소망한다.

가정이든, 학교든, 직장이든, 국가든, 인류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우리가 속한 조직이 품격 있길

원한다면 먼저 스스로 품격 있게 행동해야 한다.


모두들 내가 속한 조직에 나름의 불만을 품고

공정과 정의로워야 한다고 외치면서 의무에는 침묵한다.


내가 속한 조직이 아름다워지는 방법은 간단하다.


나부터 권리와 의무의 균형, 자유와 책임의

균등을 실천하면 된다. 조금 더 마음의 여유가

있다면 조직에 대한 배려심. 봉사정신이 더해지면

더 바랄 게 없다.전통 있는 조직은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전통 있는 조직은 그런 구성원이 보다 많은 조직이다.


아름다운 조직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 모두가 일반의지를 지니고 권리에 따르는

의무를 충실히 실천할 때 실현된다.


가장 이타적인 것이 가장 이기적인 것이다.


Plato Won



● 2022년 11월 20일 일요일 새벽녘 사유는

    관조를 품으며 '인간의 이기심과 무관심'

    에 대해 사유해 본다.


     고등학교 동창회 산악회장을 맡고 있는 선배가

     동창회 산악 회장을 하면서 구성원들의 무관심과

     이기적인 행동에  상처를 많이 받았다고 한다.

 

      세상 사람들은 잘 모른다.

      자기 이익을 위해 이기적인 행동을 행하는데

      길게 보면 이기적인 행동이 가장 위험하다는

       것을,


         "가장 이타적인 것이 가장 이기적인 것이다"

         

        이 말이 와닿고 실천하게 되면 그때가

        인생 철이 든 때이고,그때부터 인생 폼나게

         볕들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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